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389화

김민준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389번째 밤, 혹은 낮. 그가 잃어버린 첫사랑 한서연을 찾아 헤맨 시간은 이제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숫자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 화려했고, 그 불빛들은 그의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그리움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무심했다.

조수석에는 낡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끈질긴 추적 끝에 얻어낸 단 하나의 실마리. 흐릿한 사진 한 장과 주소, 그리고 이름. ‘정서연’. 그녀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결혼했을까? 아니면 그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것일까? 수많은 가설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의 불안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내비게이션은 차가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음을 알렸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감정은 공포일까, 아니면 오랜 갈증 끝에 찾아온 희망의 전율일까. 민준은 창문을 살짝 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지난 15년의 모든 것을 바쳤다. 탐정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조각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서연아…”

나지막이 중얼거린 이름은 입안에서 맴돌다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의 눈앞에는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햇살이 쏟아지던 도서관 창가, 수줍게 웃던 그녀의 얼굴. 그의 손을 잡고 밤늦도록 거리를 걷던 순간의 따뜻함.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저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이 완벽했던 시절. 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은, 그가 이 험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한 유일한 등불이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녀가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수많은 밤을 그녀의 흔적을 찾아 헤매었고, 수많은 좌절과 절망의 순간들을 겪었다. 가끔은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민준의 정신을 갉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너무나 선명한 증거들이 있었다. 그녀의 옛 친구들과의 끈질긴 재회,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어렵사리 건네준 오래된 인명록, 그리고 그 인명록을 바탕으로 전국을 뒤져 찾아낸 이름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의 조수석에 놓인 그 봉투.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파트 단지. 평범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민준은 차를 가장 구석진 곳에 세우고, 시동을 껐다. 주소는 201동 704호.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창문들은 모두 어둠 속에 잠겨 있거나, 희미한 생활의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한참을 그곳을 응시했다. 심장이 폭풍처럼 요동쳤다. 이제 정말 눈앞에 그녀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혹은, 자신을 잊고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면? 그때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평화로운 삶을 깨뜨릴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까? 이 질문은 수백 번도 더 되뇌었던 것이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 슈퍼마켓 봉투를 든 채 걸어오는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다. 민준의 눈은 그 여인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15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지만, 걸음걸이, 머리를 쓸어 올리는 습관적인 손짓,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 얼굴의 윤곽. 모든 것이 뇌리 속 깊이 박힌 그녀의 모습과 겹쳐졌다.

“서연아….”

그 여인이 201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으며, 민준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녀는 익숙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7층. 그의 모든 촉이 그녀임을 말하고 있었다. 드디어. 15년 만에. 그의 지독했던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여인은 7층에서 내렸고, 민준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 704호. 그녀는 주저 없이 704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민준은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작은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쿵.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순간, 15년간 그를 지탱해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아이. 그녀에게 아이가 있었다. 그의 첫사랑은,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는… 분명 자신이 아닐 터였다.

민준은 숨을 헐떡였다. 차가운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이 떨리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 발견은, 그에게 더 큰 상실감과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가 그리워했던 서연은, 더 이상 오직 그만의 서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왔고, 그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문득,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덧없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을 알기 위해 그는 15년을 바쳤던가? 이 아픔을 마주하기 위해, 그렇게 절망적인 추적을 계속했던가?

문이 열리고, 민준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밤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도 더 이상 어떤 등불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지금 막,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았지만 동시에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차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704호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민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밝게 빛나는 창문 안에서, 서연이 아이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의 오랜 꿈속에서처럼, 환하게.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의 탐정으로서의 임무는 끝났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여정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