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1226화

별이 쏟아지는 밤입니다. 고요히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무한한 우주 속 한 점에 불과한 저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곤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작은 점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 빛을 내는지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 은하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별이 맑게 빛나네요. 도시의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별들도 오늘은 그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는 듯합니다. 마치 우리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이, 이렇게 고요한 밤이 되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지요.

시간은 참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어느새 또 한 계절이 저물고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기억일 겁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었던 웃음, 눈물, 그리고 작고 투박했던 약속의 조각들… 그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루고,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죠.

오늘 저는 한 통의 사연을 받았습니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어느 한 분이 별에게 속삭이듯 저에게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읽는 내내 제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네요.

***

그녀의 바다 조개껍데기

안녕하세요, DJ 은하님.

밤늦게 이렇게 펜을 듭니다. 아니,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요. 정확히는 잠들기가 두려워서입니다. 꿈속에서 또 그 모습이 나타날까 봐.

지난달, 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투병 끝에 편안하게 가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저는 할머니의 작은 보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할머니가 살아생전 늘 소중히 여기셨던 조개껍데기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평생 바다와 인연이 깊으셨습니다. 젊은 시절 어부였던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어촌에서 사셨고, 바닷가 작은 조개들을 모으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셨죠. 그 조개껍데기 하나하나에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스며 있었습니다. “이건 할아버지가 처음 고백하던 날 주운 거야.” “이건 네가 태어나던 해 여름, 풍년 기도를 하며 주웠단다.” 그렇게 조개껍데기마다 작은 속삭임이 담겨 있었고, 할머니는 종종 제게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조개는 바로 ‘소라’였습니다. 크지 않은 주황빛 소라껍데기. 어린 시절, 제가 할머니 옆에 붙어 앉아 조개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할머니는 늘 그 소라를 제 귀에 대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수연아, 이 소라 속에는 바다의 소리가 담겨 있어. 아주 먼 곳의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리지? 할머니가 나중에 아주 멋진 선물을 해줄게. 그때 이 소라를 줄 테니, 네가 힘들 때마다 바다의 소리를 들으렴.”

그 약속은 흐릿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었고, 도시로 나와 바쁘게 살았습니다. 할머니를 찾아뵙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멀다는 핑계로, 나중으로 미루며 저는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그 소라껍데기의 약속도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유품 상자 속에서 그 소라를 다시 만났을 때, 저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다른 조개껍데기들 사이에서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 주황빛 소라는 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상자 바닥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깔려 있었고, 할머니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수연이에게. 힘들고 지칠 때, 이 소라를 귀에 대고 바다의 소리를 듣거라. 할머니는 늘 네 옆에 있단다. 이 소라가 네게 바다가 되어줄 거야. – 할머니가.’

그 글을 읽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제 귓가에 대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흐릿했지만 분명했던 바다 소리. 그리고 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할머니의 사랑을 잊고 살았는지, 얼마나 무심했는지 사무치게 후회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소라껍데기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할머니가 들려주던 바다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차갑고, 그저 텅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제가 이 소중한 기억을 간직할 자격이 있을까요? 할머니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멀리했던 제가, 이 조개껍데기들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잊어버린 약속 앞에서 저는 그저 무능하고 한심한 손녀일 뿐입니다.

은하님, 이 상자 속 조개껍데기들은 제게 너무나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밤마다 이 조개들을 보면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섞여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할머니는 정말 이 소라를 통해 제게 바다를 주신 걸까요? 지금 저는 그저 깊은 바다 속에 홀로 가라앉고 있는 기분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를 들으며, 수연 드림.

***

수연님의 사연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사연을 읽으며 한동안 먹먹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이런 아련한 기억의 조개껍데기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겠지요.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느끼는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사랑의 무게.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히는 듯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수연님, 저는 감히 수연님께서 할머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할머니는 수연님의 삶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바쁜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홀해질 때가 있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향해 보내는 사랑의 크기는 변치 않는다는 것을요. 할머니의 그 주황빛 소라에는 바다의 소리만이 담겨 있던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수연님을 향한 영원한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겁니다.

지금 그 소라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마 할머니는 그 소리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수연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이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조개껍데기는 그저 매개체일 뿐, 진짜 바다는 수연님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할머니와의 추억, 할머니가 주셨던 따뜻한 사랑, 그 모든 것이 수연님 내면의 바다가 되어 흔들리는 수연님을 감싸 안아줄 겁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수연님께서 그 조개껍데기들을 단순히 유품으로 여기기보다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기를 바라셨을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껍데기가 아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를 통해 할머니와의 인연을 이어가기를 말이지요. 할머니가 조개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아주셨던 것처럼, 이제 수연님께서 그 조개껍데기에 수연님의 이야기를 담아보세요.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 조개들을 다시 찾아가보고 싶었던 그 바닷가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그 소라를 통해 할머니께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작은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죄책감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만큼 할머니를 사랑했기에 느끼는 감정이지요. 하지만 할머니는 수연님이 죄책감에 갇혀 슬퍼하기보다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실 겁니다. 그 소라 속 바다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마음속 상처를 보듬고 용기를 내어보세요. 그 용기가 바로 할머니가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될 겁니다.

오늘 밤, 별들은 여전히 말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저 별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용히 비춰주는 것만 같습니다. 수연님의 마음속 바다에도, 언젠가 다시 따뜻한 파도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날까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그 소라가 수연님의 가장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 겁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밤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가 그 밤을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저의 이야기가, 혹은 수연님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요.

오늘 밤도 편안한 꿈 꾸시길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DJ 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