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메마른 손으로 찻잔을 쥐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지만, 마음속의 냉기는 가시지 않았다. 몇 달째였다. 열여덟 살 아들 민준은 벽처럼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무단결석이 잦아졌고, 집에 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식사도 거부하기 일쑤였다. 지선은 아들의 눈에서 반항과 절망, 그리고 지선 자신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읽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민준은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잔소리를 하면 차가운 눈빛으로 응수했고, 걱정 어린 질문을 던지면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선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밤새 고민하고 울기를 반복한 탓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준이 영영 자신에게서 멀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멀어졌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때, 십여 년 전의 기억 하나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지선은 비슷한 절망감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되살아났던 그곳. 낡고 오래되었지만, 세월의 깊이를 품고 있던 그 작은 공간, ‘시간사진관’이었다.
지선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그곳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해결책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한 줄기 빛이라도 얻고 싶었다. 희망보다는 간절함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겉옷을 걸쳐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쳤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불안한 발걸음을 따라왔다.
시간사진관은 낡고 허름한 골목길 안쪽에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갈색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희미한 현상액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십 년 전 그대로였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들어서자, 안쪽 어두운 곳에서 옅은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사진사 김 선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깊고 지혜로워 보였다. 희끗한 머리는 더 희어졌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었지만, 온화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지선은 저절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김 선생님.”
김 선생은 지선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표면적인 모습을 뚫고 내면의 아픔을 읽어내는 듯했다.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때 그 손님이시군요.”
지선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네, 선생님. 그때… 아버님 사진 때문에 왔던 지선입니다. 그때 정말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선생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쌓아왔던 모든 감정의 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낡은 사진관의 고요함 속에서 지선의 흐느낌만이 울려 퍼졌다.
김 선생은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녀가 차를 받아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침묵을 지켰다. 재촉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선이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듯했다. 잠시 후, 지선은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민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의 변화, 자신의 무력감, 그리고 그를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김 선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지선은 그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떤 조언이나 꾸짖음이라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뻥 뚫리는 듯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김 선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또 다를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착각일 수도 있지요.”
지선은 고개를 들었다. 김 선생은 선반 위 낡은 앨범들 사이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두툼한 앨범 하나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앞표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갈색 가죽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제가 이 사진관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겁니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담고 있지요.”
김 선생은 앨범을 조심스럽게 넘기기 시작했다. 흑백사진들이 한 장 한 장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전 과거 속 인물들의 표정, 의상, 풍경들이 지선에게는 낯설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게 다가왔다. 사진 속 사람들은 웃고, 울고, 사랑하고, 때로는 고뇌하는 듯 보였다. 마치 그들의 삶이 사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러다 김 선생의 손길이 한 사진 위에서 멈췄다. 앨범의 가장자리가 닳고 색이 바랜 한 페이지였다. 사진 속에는 열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삐딱하게 서 있었다. 소년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눈빛은 반항적이었다.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양손은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지선의 아들 민준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지선은 숨을 들이켰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소년의 온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 세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고독감 같은 것들이 민준과 흡사했다.
“이 아이는…” 지선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 선생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는 아주 오래전, 이 사진관을 찾아왔던 손님의 아들입니다. 이 사진은 어머님이 억지로 끌고 와서 찍었던 거지요.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한사코 눈을 피하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어머님도 손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이가 왜 저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이지요.”
지선은 사진 속 소년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 소년의 눈빛에서 그녀는 민준의 감정을 겹쳐 보았다. 그 깊은 어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상처들. 사진 속 소년은 마치 지선에게 ‘엄마, 저는 괜찮지 않아요. 저를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순간, 사진 속 소년의 눈빛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흑백사진이 아닌,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촉촉하게 빛나는 듯했다.
“이 아이도 사실은… 굉장히 여리고 섬세한 아이였습니다.” 김 선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요. 그 어머님은 이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시더니, 결국 아들의 손을 잡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몇 년 뒤, 그 아이는 의젓한 청년이 되어 이 사진관을 다시 찾아왔더군요. 그때는 활짝 웃는 얼굴로 말이죠.”
지선은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소년의 굳은 표정 아래 숨겨진 여린 마음이, 오랜 세월을 넘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동안 그녀는 민준의 문제 행동에만 초점을 맞췄지, 그 행동 뒤에 숨겨진 아들의 진짜 감정에는 얼마나 귀를 기울였던가. ‘내가 민준이에게 강요만 했던 건 아닐까?’ ‘아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진 속 소년의 눈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있었다. 반항적이고 슬픔 가득한 눈빛은 이제 지선에게 거울처럼 그녀 자신의 무지를 비추는 듯했다. 어쩌면 민준이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나 잔소리가 아니라, 단지 ‘이해받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외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 선생은 조용히 앨범을 닫았다. 낡은 가죽이 탁한 소리를 냈다.
“사진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지만, 때로는 시간 너머의 진실을 비추기도 합니다.” 김 선생이 말했다.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제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지요.”
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은 말랐지만,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막막했던 상황이 단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제 어디로 시선을 돌려야 할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민준의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문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문 너머에 숨겨진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시작일 것이었다.
지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선생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관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지만, 그 짐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낡은 사진관의 문이 닫히고, 지선은 차가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어두워지는 골목길 속에서, 그녀는 아들 민준의 어깨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따뜻한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사진관의 오래된 유리창 너머로, 흑백사진 속 소년의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수많은 이야기가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