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258화

김준호는 숨을 죽인 채 오래된 서랍장 앞에 섰다. 퀴퀴한 나무 향과 먼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지만, 그의 신경은 오직 눈앞의 작은 상자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서랍장 한 칸에 비스듬히 놓인 낡은 오르골.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딘 듯, 칠이 벗겨지고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우게 한 환영이, 이제 막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수진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이 오르골만큼은 특별했다. 어린 수진이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멍하니 바라보며 손잡이를 돌리던, 둘만의 비밀 상자였다. 그들은 약속했었다. 설령 세상의 끝에서 서로를 잃는다 해도, 이 오르골이 다시 함께 울리는 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찾으시는 물건이 맞으신가요, 손님?”

가게 주인인 고미영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준호가 이 낡은 골동품 가게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풍기는 그의 비범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토록 절박한 눈빛으로 오르골을 찾는 이는 처음이었다.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오르골을 들어 올렸다. 뚜껑을 여니 멜로디 인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르골 바닥에 새겨진 작은 칼집 자국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수진이 장난처럼 새겨 넣었던 ‘S + J’라는 이니셜. 그리고 그 옆에, 마치 고백처럼 적었던 ‘영원히’라는 서툰 글씨.

“맞습니다.” 준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 오르골… 제 것입니다.”

미영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보이네요. 이 물건이 이 가게에 온 이후로,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오르골이 주인을 기다린 게 틀림없어요.”

준호는 오르골을 가슴에 품고 심장이 터질 듯한 고동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1258번째의 실마리. 수천 번의 헛된 발걸음 끝에 찾아온 진실의 조각이었다. 그가 수진을 찾아 헤맨 수십 년의 세월이 이 작은 나무 상자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수진은 어디에 있을까. 이 오르골은 대체 누구의 손을 거쳐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이 오르골… 누가 가져왔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미영 할머니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음… 몇 달 전이었을 거예요. 비 오는 날이었는데, 꽤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가져오셨어요. 수진 씨 어머니라고 하더군요. 아주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이걸 처분하고 싶어 하셨어요.”

준호의 심장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수진의 어머니? 수진의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영문일까? 혹시 수진의 이모나 고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호는 다시 한번 집중했다.

“어머니요? 혹시 그분이… 이수진 씨 어머니라고 하셨나요?”

“네, 정확히 이수진 씨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죠. 당신 딸이 이젠 과거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이 물건도 처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셨어요.” 미영 할머니의 눈빛에 연민이 스쳤다. “꽤나 간절해 보이셨습니다. 딸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어머니의 마음은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준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진이 스스로 과거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 말은, 수진이 살아있으며, 어쩌면 어딘가에서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아주머니… 어디에 사시는지 혹시 아세요? 혹은 연락처라도…” 준호는 간절히 물었다.

미영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지나가다 들른 손님 같았습니다. 연락처를 남기지도 않으셨고, 그저… 딱히 흥정할 생각도 없이 오르골 값을 받아 가셨어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사람처럼요.”

준호의 어깨가 축 처졌다. 다시 벽에 부딪힌 듯했다. 1258화에 이르러 드디어 잡은 실마리였는데, 여전히 안개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수진의 어머니라고 자처한 그 여인. 그녀가 누구든, 수진에게 이토록 가까이 다가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박한 단서였다.

“혹시… 그분이 뭔가 다른 말씀을 하신 건 없나요? 아니면… 그분의 인상착의라도…”

미영 할머니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특별한 건 없었는데… 아, 한 가지 생각나는군요. 이 오르골을 건네주시면서 ‘이제 다 지워버리라고 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셨는데… 그 표정이 잊히질 않네요.”

‘다 지워버리라고 했다.’

그 말이 준호의 뇌리에 박혔다. 수진이 정말로 그 모든 것을 지우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의 주변에 그녀의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강요하는 존재가 있는 걸까? 수십 년간 수진을 찾아 헤맨 준호는, 이제 단순한 재회가 아닌 더 복잡한 그림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준호는 미영 할머니에게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오르골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채 가게를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희미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르골 속에서 멜로디 인형이 사라진 것처럼, 수진의 삶 속에서 자신 또한 지워진 것일까?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작은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지워버리라고 했다는 말은, 아직 지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수진의 어머니라고 자처한 여인의 흔적을 쫓아야 했다. 그 길이 또 얼마나 길고 험난할지 알 수 없지만, 준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김준호는, 1258번째의 단서를 가지고 다시 거친 길 위에 섰다. 포기란 없었다. 수진을 만나 그 모든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