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1314화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갓 구운 빵들이 김을 내며 식힘망 위에서 존재감을 뽐냈고, 바게트는 바삭한 껍질을 자랑하며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러나 빵집 주인 수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며칠째 가시지 않는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최 여사님 때문이었다.

최 여사님은 빵집이 문을 연 이래 단 한 번도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시던 오랜 단골이셨다. 매일 아침 남편과 함께 드실 빵을 사러 오셨고,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도 하루의 시작처럼 빵집을 찾으셨다. 빵집 한편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고독을 달래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째, 최 여사님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자 수진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수진 씨, 오늘은 왠지 빵이 더 따뜻한 것 같아요.”

단골손님인 강 선생님이 갓 나온 호밀빵을 들고 미소 지었다. 수진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수진 씨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네요.”

“최 여사님께서요… 일주일째 발걸음이 없으세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 아닌지 걱정돼서요.”

강 선생님도 최 여사님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그러게요. 매일 아침 뵈던 분인데, 조용하시네요. 혼자 사시는데 혹시… 몸이라도 불편하신 건 아닌지.”

수진은 강 선생님의 말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최 여사님의 남편분이 돌아가신 후, 수진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존재는 고작 몇 년째 오가는 빵집의 어린 사장인 자신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최 여사님께는 자녀도 없었고, 이웃과의 교류도 그리 활발해 보이지 않았다. 수진은 빵을 굽는 내내 최 여사님의 창백한 얼굴과 쓸쓸한 눈빛이 아른거렸다.

점심시간이 지나 빵집이 잠시 한가해지자, 수진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앞치마를 벗고, 특별한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븐에서 막 나온 따뜻한 카스텔라 한 덩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최 여사님의 남편분이 살아계실 때, 매주 한 번은 꼭 최 여사님을 위해 주문하시던 ‘추억의 카스텔라’였다. 부드러운 달걀 향과 꿀의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진, 최 여사님 부부에게는 단순한 빵 이상의 의미를 지닌 카스텔라였다. 수진은 카스텔라를 정성껏 포장하며, 마음속으로 최 여사님이 무사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다.

빵집 문을 닫을 수는 없었기에, 옆집 슈퍼 아주머니에게 잠시 빵집을 맡기고 최 여사님의 집으로 향했다. 최 여사님의 집은 빵집에서 언덕을 넘어 조금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늦가을 바람이 제법 차가웠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스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최 여사님의 집은 어두운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낡은 벽돌집은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수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최 여사님! 계세요?”

수진은 조심스럽게 대문을 두드렸다. 여러 번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혹시 외출하신 걸까? 아니면… 불길한 예감에 수진의 손이 떨려왔다. 그때, 낡은 대문 틈새로 아주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어둠이 가득한 거실, 냉기가 가득한 집 안에는 최 여사님이 작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앉아 계셨다. 창밖은 아직 환했지만, 집 안은 마치 밤이 온 것처럼 어두웠다. 텔레비전도 꺼져 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 여사님의 얼굴은 초췌했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수진의 발소리에 최 여사님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체념한 듯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최 여사님! 괜찮으세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수진은 달려가 최 여사님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최 여사님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최 여사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수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삶에 대한 지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진 씨…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최 여사님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마치 오랜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메말라 있었다.

“여사님께서 빵집에 안 오셔서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 해서… 제가 왔어요. 이거… 여사님 좋아하시는 카스텔라예요. 따뜻할 때 드셔야 할 텐데…”

수진은 조심스럽게 카스텔라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최 여사님은 상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고이는가 싶더니, 이내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슬픔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남편이… 남편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구나… 밥도 넘어가질 않고… 햇빛도 싫고…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남편 곁으로 가고 싶었어…”

최 여사님의 가슴을 짓누르던 고백에 수진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수진은 아무 말 없이 최 여사님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었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자 최 여사님의 어깨가 더욱 떨려왔다.

“여사님… 저도 아저씨가 참 좋으셨어요. 매번 오셔서 여사님 칭찬만 하시고… 제가 만든 빵이 최고라며 웃어주셨던 게 엊그제 같아요. 하지만… 아저씨는 여사님이 이렇게 혼자 슬퍼하시는 걸 원치 않으실 거예요. 여사님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걸 바랄 거예요.”

수진의 진심 어린 말에 최 여사님은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수진은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한참 후, 최 여사님은 눈물을 닦고 수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슬펐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생기가 돌아온 듯했다. 수진이 가져온 카스텔라 상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거… 여보가 그렇게 좋아하던 카스텔라인데…”

“네, 제가 여사님 생각하며 특별히 구웠어요. 따뜻한 차 한 잔이랑 같이 드시면 좋을 거예요.”

수진은 부엌으로 가 차를 끓이고 작은 접시에 카스텔라를 담아왔다. 작은 촛불이라도 밝힌 듯, 어두웠던 거실이 차 한 잔과 빵으로 인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최 여사님은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메말랐던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천천히 카스텔라를 음미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맛이야… 여보가 정말 좋아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빵의 맛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그리고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어린 빵집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진 맛이었다. 오랜만에 최 여사님의 얼굴에 평화로운 표정이 스쳤다. 수진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여사님, 이제 매일 빵집에 오세요. 제가 맛있는 빵과 따뜻한 차를 준비해 드릴게요. 여사님이 제 옆에 계셔 주셔야 제가 힘이 나죠.”

수진의 말에 최 여사님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오늘,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온 이 따뜻한 온기가, 최 여사님의 얼어붙었던 마음에 작은 기적의 씨앗을 심은 것은 아닐까. 어둠 속에서 다시 삶의 빛을 찾아가는 아주 작은 시작이, 바로 이 카스텔라 한 조각과 따뜻한 위로에서 비롯되었기를 수진은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