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가족 여행기 – 제418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떠난 여행길이 무색하게도, 가족들이 애타게 바라던 푸른 바다는 잿빛 하늘 아래 잠들어 있었다. 목적지인 동해 바닷가 작은 마을의 ‘햇살가득펜션’에 도착했을 때, 빗방울은 이미 거센 소리를 내며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자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빗줄기에 모두가 비명을 질렀고, 짐을 들고 펜션 안으로 뛰어드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가족의 시끌벅적함은 빗소리를 뚫고 펜션 전체를 가득 채웠다.

할머니는 문턱에서 발을 털며 “아이구, 이놈의 비는 꼭 우리가 여행 오면 따라붙더라!” 하고 투덜거렸고, 아빠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그래도 운치 있잖아! 창밖으로 비 오는 바다 보는 것도 좋지 뭐!” 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엄마는 벌써부터 주방을 탐색하며 저녁 메뉴를 구상하고 있었다. 스무 살 대학생 지혜는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며 “벌써부터 피곤하다, 피곤해.” 하고 중얼거렸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고등학생 준호는 침대에 눕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다현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뜻밖의 위로

다현이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모래성 쌓기였다. 지난밤까지 잠들기 전, 유튜브에서 본 거대한 모래성을 만들겠다며 온갖 설계도를 그렸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다니. 그녀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고,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그렁거릴 것 같았다. “바다… 바다에 못 가? 모래성 못 만들어?” 다현이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다현아, 비 그치면 가면 되지.” 아빠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창밖의 빗줄기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다현이를 안아주며 “괜찮아, 우리 내일 바다 가면 되잖아. 오늘은 펜션에서 재미있는 거 하자.” 하고 달랬지만, 다현이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어딘가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손가락으로 이불을 꼼지락거렸다. 할머니마저 “어쩌겠어, 날씨가 이런 걸.” 하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늘 무심한 듯 제 갈 길 가던 준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다현이에게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야, 최다현.” 준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퉁명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묘한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 “모래성이 그렇게 좋냐?”

다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제일 좋단 말이야…”

“흥, 그럼 만들면 되지.” 준호가 피식 웃었다.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준호에게로 향했다. “뭘 만들어? 비 오는데?” 지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준호는 씩 웃으며 펜션 거실을 둘러봤다. “이불이랑 베개, 방석, 그리고… 저기 저 테이블보도 좀 쓸까?”

상상력으로 지은 성

준호의 제안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가족들은 이내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거실 한가운데에 베개와 이불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지휘자처럼 손짓하며 “여기는 성벽! 단단하게 쌓아!” 하고 외쳤고, 다현이는 언제 풀이 죽었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베개를 나르기 시작했다. 지혜는 능숙하게 이불을 덮어 벽을 만들었고, 아빠는 튼튼한 기둥이 되어줄 박스를 찾아왔다. 엄마는 비어 있던 테이블에 그림 도구와 스케치북을 놓아주며 작은 미술관을 열어주었다.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 다현이의 손을 잡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짜잔! 다현이의 행복 모래성이다!” 준호가 마지막으로 쿠션을 올려놓으며 외쳤다. 그들이 만든 것은 거대한 모래성은 아니었지만, 이불과 베개로 만든 푹신하고 아늑한 ‘행복성’이었다. 성의 한쪽 벽에는 다현이가 그린 무지개와 해맑은 얼굴의 가족 그림이 붙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지혜가 섬세하게 오려 붙인 조개껍데기 모양의 종이 장식이 빛났다. 준호는 거북이 인형을 성문 앞에 세워두며 “이게 경비병이야. 아무나 못 들어와.” 하고 으스댔다. 다현이는 그 성 안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깔깔대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빗소리마저 잊게 할 만큼 맑고 경쾌했다.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와, 이거 완전 작품인데? 준호 네가 이런 아이디어를 낼 줄이야!” 엄마는 준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우리 준호가 다 컸네. 동생 챙기는 것도 알고.” 준호는 괜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뭐, 심심해서 그랬지.”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그의 귀는 빨개져 있었다.

빗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온기

저녁이 되자, 가족들은 행복성 옆에 둘러앉아 엄마가 끓여준 뜨끈한 어묵탕과 아빠가 구워준 해산물 바비큐를 먹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밖에서 요란했지만, 펜션 안은 온기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지혜는 대학 생활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준호는 다현이에게 틈틈이 장난을 걸었고, 다현이는 까르르 웃으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음식을 먹던 중, 다현이가 준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오빠, 고마워.”

준호는 놀란 듯 다현이를 돌아봤다. “뭐가?”

“행복성 만들어줘서. 비 와도 괜찮았어.” 다현이의 눈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고 있었다. 준호는 순간 쑥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 작은 행동에서, 평소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창밖을 보니 빗줄기는 여전히 굵었지만, 먹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달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설령 내일도 비가 온다 해도, 오늘 이 빗속에서 가족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따뜻한 온기만 있다면, 그 어떤 날씨도 이들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끌벅적함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사랑과 유대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밤이었다. 제418화, 오늘 밤도 가족의 사랑은 비 오는 바닷가에서 굳건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