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아스텔 왕국의 수도, 테레사트는 환희에 잠겨 있었다. 북방의 황량한 땅에서 피어난 어둠의 군세를 물리치고 개선한 빛의 기사단에게 시민들은 아낌없는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겹겹이 늘어선 인파 속에서 꽃잎이 비처럼 쏟아졌고, 거리는 온통 축제의 열기로 들끓었다.

그 선두에는 언제나처럼 카엘 기사단장이 서 있었다. 은빛 갑옷에 묻은 어둠의 핏자국은 영광의 흔적이었고, 그의 푸른 눈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앞을 응시했다. 거대한 대악마의 심장을 꿰뚫었던 여명의 검은 그의 허리춤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아스텔 왕국을 구원한 젊은 영웅.

그리고 그의 바로 옆, 그림자처럼 묵묵히 서 있는 이는 부단장 로난이었다. 카엘의 검이 악마의 심장을 꿰뚫을 때, 로난의 마법이 악마의 시야를 가렸고, 그의 방패가 카엘의 등 뒤를 지켰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전장을 함께 누빈 형제이자, 아스텔 왕국의 자랑이었다. 그들의 우정은 견고한 바위 같았고, 누구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설 수 없었다.

개선 행렬이 왕궁의 문을 통과하자 환호는 더욱 거세졌다. 왕국의 대신들과 왕실의 귀족들이 도열하여 그들을 맞이했다. 시리게 아름다운 로웬 왕녀가 단상에서 내려와 카엘에게 직접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카엘 기사단장, 그대 덕분에 아스텔의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왕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고, 카엘은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문득 로난에게 향했다. 로난은 축하의 박수를 치는 사람들 뒤편에서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는 왠지 모르게 평소와 달랐지만, 카엘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마도 로난은 이런 화려한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하 연회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와인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승전 보고와 찬사 속에서 카엘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테라스로 나섰다. 시원한 밤공기가 머릿속을 맑게 해주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연회장의 소음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평화로웠다.

“축하한다, 카엘.”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카엘은 미소 지으며 돌아보았다. 로난이었다. 그는 술잔을 들고 카엘 옆에 섰다.

“자네 덕분이지. 자네의 마법이 없었다면 대악마는 그림자 숲을 벗어났을 거야.”

카엘이 진심으로 말했다. 로난은 픽 웃었다.

“우리는 형제잖나. 서로가 없으면 이룰 수 없었을 일들이다.”

로난은 잔을 들어 올렸다. 카엘도 자신의 잔을 들어 로난의 잔과 부딪쳤다. 맑은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앞으로도 우리 아스텔 왕국을 위해 함께 싸워나가자, 로난.”

카엘의 말에 로난은 빙긋 웃었지만, 그의 눈빛은 찰나간 어둠에 잠기는 듯했다. 카엘은 그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승리의 기쁨과 오랜 전장의 피로가 그의 경계심을 무디게 만들었던 것이다. 로난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더니, 천천히 잔을 비웠다.

“카엘… 너는 너무나도 빛나는군. 너무 눈이 부셔.”

로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카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때, 로난이 든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난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빠르게 로난의 몸을 감싸더니 거대한 그림자 형상으로 변해갔다. 카엘은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여명의 검을 뽑으려 손을 뻗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로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내가 너에게 가르쳐주지.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

로난의 목소리는 이전의 다정하고 나긋하던 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비릿한, 낯선 어둠이 깃든 목소리였다. 검은 안개가 카엘의 사지를 묶어버렸다. 강력한 마법이었다. 카엘은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몸은 쇠사슬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빛의 기사단장, 모두의 영웅.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그림자일 뿐이었지.”

로난의 얼굴은 뒤틀린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눈은 검붉은 빛으로 번뜩였다.

“모두가 너를 칭송할 때, 나는 뒤에서 너의 검을 닦았고, 너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너의 빛이 강할수록, 내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어. 하지만 이제, 더는 그 그림자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어둠의 기운이 카엘의 몸을 휘감았다. 카엘은 경악했다. 로난이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로난은 어린 시절부터 빛의 마법만을 연구하고 사용하던 자였다.

“말도 안 돼… 자네는 빛의 마법사였잖아…!”

“빛? 하, 빛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진정한 힘은 어둠 속에 있다! 나는 이 힘으로 아스텔의 왕좌에 오를 것이고, 너는… 네 영웅의 자리는 내가 차지할 것이다.”

로난이 손을 뻗자 검은 기운이 카엘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카엘의 몸속에 흐르던 따뜻한 마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빛의 기사단장으로서 누리던 특별한 축복, 치유와 방어의 마법이 무력하게 흩어졌다.

“네놈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주마. 네 명예, 네 빛, 그리고 네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까지도!”

로난의 뒤틀린 웃음소리가 테라스에 울려 퍼졌다. 카엘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배신감과 고통이 심장을 찢는 듯했다. 형제처럼 믿었던 친구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이었다. 그의 푸른 눈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로난의 모습을 똑똑히 담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 카엘의 귓가에 로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이 세상에는 빛의 기사단장 카엘 따위는 없다. 단지… 왕국을 배신하고 어둠에 물들어 도망친 비겁한 죄인만이 있을 뿐.”

카엘의 정신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그의 육체는 마비된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축제의 밤, 영웅의 연회장이었던 왕궁 테라스는 차가운 밤바람만이 흐느끼는 절망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카엘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온몸의 마력이 고갈된 듯 텅 비어 있었고, 심장 부근에는 날카로운 통증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눈을 뜨자 눅눅하고 어두운 동굴 천장이 보였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와 썩어가는 흙냄새가 이곳이 왕궁의 화려한 테라스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아… 있었나?”

카엘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를 묶었던 어둠의 마법은 사라졌지만, 그 여파로 몸은 여전히 쇠약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왕궁에서 한참 떨어진, 버려진 폐광이나 지하 감옥의 일부인 듯했다.

로난… 그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자, 어제 있었던 참혹한 배신의 기억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믿었던 친구의 칼날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 자신을 향한 로난의 증오에 찬 눈빛,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섬뜩한 선언까지.

카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타오르는 분노, 그리고 지옥 같은 맹세였다.

‘로난… 네놈이 나에게서 빼앗아 간 모든 것, 그 열 배로 되갚아 주겠다. 이대로 무너질 줄 알았느냐? 나는…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아, 너의 목숨줄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 꺼지지 않는 불길이 타올랐다. 몸은 부서졌고, 명예는 땅에 떨어졌으며, 모든 것을 잃었지만, 카엘의 영혼은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의 불꽃으로 단련된 강철처럼 더욱 단단해졌다. 복수의 맹세가 심장을 뛰게 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카엘은 쓰러진 몸을 이끌고 차가운 동굴 벽을 짚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비틀거렸지만, 그 안에는 결코 꺾이지 않을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둠은 그를 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카엘의 복수심은 더욱 짙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지옥에서 돌아온 자의 피 묻은 복수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