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락성(天落城)의 황량한 그림자 속에서, 련(煉)은 마른 기침을 뱉었다. 한때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천루와 영롱한 기운이 넘쳐흐르던 도시였다. 지금은 잿빛 먼지와 부서진 잔해만이 가득한 거대한 무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것은 죽은 대지의 쇠비린내와 부패한 기운이었다. 련의 단전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간신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의 시선은 무너진 성벽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가느다란 풀뿌리, 이름 없는 잡초들 사이에서 기어이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는 ‘명맥초(命脈草)’를 찾고 있었다. 척박한 폐허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기특한 약초. 비록 한두 뿌리로는 근본적인 기갈을 해소할 수 없었지만, 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발버둥이었다. 명맥초의 희미한 영력만이 련의 꺼져가는 몸에 간신히 불씨를 지펴주고 있었다.
대재앙이 세상을 덮친 지 어언 백 년. 찬란했던 선협 문명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영맥은 끊어지고, 영기는 탁해졌으며, 사람들은 마수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육을 반복했다. 과거의 영화는 한낱 전설이 되어 버렸고, 신선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 련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남는가?’ 답은 없었다.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내야만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움직였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련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살기를 머금은, 굶주린 짐승의 기척. 련은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비록 미약할지언정, 오랜 생존이 련에게 선사한 예민한 육감은 위험을 정확히 감지해냈다. 폐허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것은 ‘철갑마견(鐵甲魔犬)’ 무리였다. 녹슨 철판을 덧댄 듯한 단단한 가죽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붉게 빛나는 눈동자. 여섯 마리의 철갑마견이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련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놈들은 대재앙 이후 변이된 마수들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가장 잔혹한 사냥꾼이었다. 놈들의 굶주린 포효가 련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젠장….” 련은 낮게 욕을 읊조렸다. 한 마리도 버거운 판에 여섯이라니.
련은 허리춤에 찬 낡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은 여기저기 이가 빠져 있었지만, 련의 생명과도 같은 도구였다. 그의 단전에서 마지막 남은 희미한 기운을 끌어모았다. 손끝에서 푸른색 영력이 간신히 일렁였다. ‘기검술(氣劍術)’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은 단검에 기운을 실어 조금 더 날카롭게 만드는 정도의 초라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련에게는 이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선두에 선 철갑마견이 낮은 자세로 으르렁거렸다. 곧이어 폭풍처럼 달려들었다. 련은 잔해물 뒤로 몸을 숨기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철갑마견의 이빨이 그를 스쳐 지나간 벽을 산산조각 냈다. “크윽!” 련은 숨을 헐떡이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놈들이 달려드는 순간, 련은 몸을 솟구쳐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가장 느려 보이는 한 마리의 옆구리를 노려 단검을 박아 넣었다. ‘쨍그랑!’ 철갑마견의 가죽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단검은 깊이 박히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놈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련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섯 마리의 마견이 련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포위망이었다. 련의 심장이 발악하듯 뛰었다. 이대로 끝인가? 그의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 갑자기 희미한 빛줄기가 폐허 저편에서 일렁였다. 련의 영식(靈識)이 본능적으로 그 빛을 쫓았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간신히 맥동하는, 살아있는 영기의 파동. 아주 희미했지만, 그 어떤 명맥초보다도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었다.
련은 잠시 망설였다. 저곳으로 향하면 마견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터. 그러나 이대로는 죽음뿐이었다. ‘빌어먹을…!’ 련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냈다. “큭!” 단번에 몸을 솟구쳐 마견들의 포위망을 뚫고 빛이 일렁이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마견들의 포효가 그의 등 뒤를 쫓아왔다. 부서진 잔해물들을 뛰어넘고, 쓰러진 기둥 사이를 누비며 련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빛을 향한 갈망이 그를 지탱했다.
빛의 근원은 무너진 대사원(大寺院)의 깊숙한 곳이었다. 그곳은 한때 천락성의 영혼이 깃들었던 장소. 지금은 거대한 구덩이와 금이 간 제단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덩이의 가장 깊은 곳에서, 푸른색과 금색이 뒤섞인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주기적으로 박동했다. 련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엄청난 영압(靈壓)에 휩싸였다. 꺼져가던 단전이 격렬하게 반응하며, 몸 안의 모든 기운이 그 빛을 갈구하는 듯했다.
빛의 중심에는 깨진 봉인석(封印石) 조각들 사이에 갇힌, 거대한 수정체가 놓여 있었다. 수정체 안에는 푸른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의 형상이 희미하게 비쳤다. 잠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봉인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심장 부근에서 가장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봉인석의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영기는 너무나 순수하고 강력해서, 련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 이건….” 련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재앙 이후 이토록 순수한 영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수정체 안의 여인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련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꿈속의 메아리처럼, 혹은 먼 과거의 기억처럼.
*”…도와…줘….”*
그것은 절박한 외침이었는가, 아니면 련의 굶주린 정신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는가. 련은 떨리는 손으로 수정체에 다가갔다. 그 순간, 수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더욱 격렬하게 폭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