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룡봉(天龍峰)의 정상은 언제나 그랬듯 고요했다.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 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붉은 노을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다. 세상의 모든 번뇌와 다툼이 이 아래에 갇혀 있을 뿐, 이곳만은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청풍(淸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슴팍에 품고 있던 비단 주머니를 힘껏 움켜쥐었다. 주머니 안에는 방금 전, 천룡봉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신비의 보물, ‘천룡비급(天龍秘笈)’이 들어 있었다. 수십 년간 무림의 수많은 고수들이 찾아 헤매었지만, 그 누구도 손에 넣지 못했던 전설 속의 무공 비급이었다.

그의 옆에는 한무(寒武)가 서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노을보다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청풍과 한무,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강호(江湖)를 함께 누비며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한 둘도 없는 지기(知己)였다. 서로의 등 뒤를 아무런 의심 없이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

“하아, 하아… 드디어… 해냈다, 무강아.”

청풍의 목소리는 기쁨과 함께 벅찬 감격으로 떨렸다. 지난 석 달간의 사투, 수많은 함정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이뤄낸 결과였다.

한무는 빙긋 웃으며 청풍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청풍아.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냈겠느냐. 이 강호에 우리만큼 어리석고 끈질긴 놈들이 또 어디 있겠어?”

그의 말에 청풍도 피식 웃었다. 어리석다는 말에 공감했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짓이었을지 모르나, 그들은 강호의 전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제 이 비급을 가지고 사부님께 돌아가자. 그리고 함께 무림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 청풍의 눈빛에는 순수한 열망과 희망이 가득했다. 그는 ‘천룡비급’을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부님과 함께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고, 약자를 돕는 정의로운 무협의 시대를 여는 초석으로 삼고 싶었다.

한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하지. 함께 해야지.”

그 순간, 청풍은 등골을 스치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겨울의 칼바람처럼 차가운 기운. 하지만 이내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랜 사투 끝에 찾아온 피로감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한무는 천천히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노을빛이 단검의 날카로운 칼날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났다.

“뭘 하려는 게냐, 무강아?” 청풍은 의아한 눈으로 한무를 바라봤다. 단검은 그들의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였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끝난 상황에서 단검을 뽑을 이유가 없었다.

한무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타오르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얼음장 같은 냉기가 채웠다. “청풍아.”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한없이 무거웠다. “네놈은 너무 순진해. 이 강호가 네가 꿈꾸는 그런 곳인 줄 아느냐?”

청풍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낯선 한무의 모습에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무강아! 농담은…”

“농담?” 한무는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 비급은 오직 나, 한무의 것이어야 했다. 너 같은 어리석은 놈에게는 과분한 보물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무의 단검이 번개처럼 청풍의 복부를 꿰뚫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따뜻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오며 비단 주머니를 붉게 물들였다. 청풍은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듯했다.

“무… 무강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절규에 가까운 신음이었다.

한무는 단검을 비틀며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크윽…!” 청풍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고통보다 더한 것은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지독한 허무감과 절망감이었다. 그의 시선은 한무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토록 믿었던 친구의 얼굴은 차갑고 잔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비급은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너 같은 애송이와 함께 나눠 가질 수는 없지.” 한무는 냉정하게 말했다. “천룡비급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바로 나다.”

“어… 어째서… 우리가 함께 이뤄낸 것인데…” 청풍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무는 청풍의 손에서 비단 주머니를 거칠게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를 발로 걷어차 천룡봉의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젠장! 너 같은 놈은 그냥 죽어버려!”

**”아아아악!!!!”**

청풍의 비명소리가 천룡봉의 고요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그의 몸은 끝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찢는 듯했고, 암벽에 부딪히며 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의식이 점차 희미해졌다.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천룡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무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 속에는 일말의 연민도, 후회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승리감만이 가득했다.

‘무강… 네놈…’

증오가 심장을 찢는 듯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허망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를 배신한 친구, 아니 원수에게 반드시 되갚아줘야 했다.

“크윽… 한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마지막 단어는 이름이 아닌, 저주와 다짐이었다.

몸은 산산조각 나는 듯했지만, 그의 의지만큼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의식은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지만, 그의 영혼에는 복수의 맹세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가 추락한 곳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천룡봉의 숨겨진 심연이었다. 심연 속으로 삼켜지던 청풍의 몸은, 희미한 빛을 내는 기묘한 동굴 어귀에 간신히 걸렸다. 그리고 그 동굴 안에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무림의 전설조차 뛰어넘는 비밀이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청풍은 중얼거렸다.

“살아남으리라… 반드시… 돌아가리라…”

그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차가운 기운과 함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생명을 붙잡았다. 핏물로 얼룩진 그의 눈은 이미 희망을 잃었지만, 복수의 불꽃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천룡봉의 밤은 깊어지고, 차가운 바람만이 비극적인 맹세의 메아리를 실어 날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