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협화음의 공명
지훈은 익숙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텅 빈 복도가 굳은 심장처럼 삐걱거렸다. 도시의 소음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창문 너머로, 그는 자신의 낡은 오피스텔에 발을 디뎠다. 퇴근 후의 이 고요한 순간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몸을 던지자, 푹신한 쿠션이 그의 무게를 받아내며 낮게 신음했다.
“젠장, 오늘도 죽는 줄 알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마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리모컨이 ‘슥’ 하고 미끄러졌다. 그의 손가락이 미처 닿기도 전에, 리모컨은 소파 팔걸이를 따라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야, 오늘따라 미끄럽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몸을 숙여 리모컨을 주웠다. 낡은 원룸이라 바닥이 고르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어컨을 켰다. 시원한 바람이 금세 방 안을 채웠지만, 왠지 모르게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며칠이 더 흘렀다. 이상한 일들은 점점 빈번해졌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분명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음료수 캔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컵라면을 끓이려 물을 끓이던 중, 가스레인지 불이 ‘픽’ 하고 혼자 꺼지는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스 공급이 불안정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휴대폰 충전기가 제멋대로 뽑혀 있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거울에 습기가 가득한데도 희미하게 손자국이 찍혀 있는 날도 있었다.
지훈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깔끔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결코 엉망으로 사는 편도 아니었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의 위치는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모든 것이 제자리를 벗어나 삐걱거렸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탁, 틱, 탁’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리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엔 쥐라도 나타난 건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마치 작은 물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무언가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훈은 불안한 마음에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허공에 대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탁, 틱, 탁’ 하는 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지훈의 눈에, 식탁 위 도마가 들어왔다. 도마 위에 놓여 있던 칼이, 제멋대로 ‘까딱까딱’ 흔들리고 있었다. 칼끝이 도마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손에 든 손전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숨을 멈추고 칼을 응시했다. 칼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손으로 흔드는 것처럼, 일정하고 기괴한 리듬으로 흔들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지훈은 자신의 눈이 착각하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알아챘다는 듯, ‘따당!’ 하고 좀 더 강하게 도마를 찍더니, 이내 ‘촤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흐읍!”
지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쥐라거나, 낡은 건물의 진동이라거나, 그런 합리적인 설명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부리나케 다시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폴터가이스트 현상’, ‘귀신 아파트’, ‘유령’ 같은 검색어를 입력했다. 온갖 괴담과 도시 전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그의 현재 상황과 소름 끼치도록 유사했다.
다음 날, 지훈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친구는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야, 김지훈. 너 요즘 야근에 시달려서 번아웃 온 거야. 내가 보약을 한재 지어줄까?”
“아니, 진짜라니까? 칼이 혼자 움직였다고!”
“하하,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네 원룸이 무슨 강령술 현장도 아니고.”
친구는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지훈은 더 이상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일상은 기묘한 일들로 점철되어갔다. 욕실에 걸어둔 수건이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거나, 냉장고 문이 자꾸만 열려 있었다. 현관문의 디지털 도어락이 ‘삐빅’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소리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분명히 그는 혼자였다.
어느 저녁, 지훈은 거실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그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옷장. 지훈은 젓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옷장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옷장 안에 갇혀서 안간힘을 쓰며 문을 흔드는 것처럼.
‘설마… 설마 진짜 누가 들어와 있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마저도 기이하게 느껴졌다. 도어락은 분명히 닫혀 있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옷장 문은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
옷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낡은 옷가지 몇 벌이 옷걸이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낯선 기운이 훅 끼쳐 나오는 것을 지훈은 분명히 느꼈다. 차갑고 끈적이며, 동시에 코를 찌르는 듯한 비릿한 냄새. 마치 아주 오래된 무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냄새였다.
지훈은 벌떡 일어섰다. 식탁 위 밥그릇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옷장 안 벽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양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뾰족한 각도로 꺾이고 휘어진 선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 어떤 기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능한 형상이었다. 그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검붉은 얼룩이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마치 핏자국처럼.
문양을 보는 순간, 지훈의 뇌리에 차가운 칼날이 박히는 듯한 섬뜩함이 스쳤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이 그 기괴한 문양에 고정되는 순간, 옷장 안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옷장 벽 너머에, 전혀 다른 차원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그때였다. 텅 비어 있던 옷장 안쪽에서, 섬뜩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는… 부르고 있다…*
지훈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얼어붙었다. 목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겹겹이 쌓인 음성들이 뒤섞여 있었다. 찢어지는 듯한 고음과 바닥을 긁는 듯한 저음이 동시에 들렸다. 그의 귀가 그 소리의 파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질 듯 아파왔다.
— *잠자는 자가… 깨어나고 있다…*
목소리는 뇌를 직접 긁는 것처럼 울렸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으려 발버둥 쳤지만, 소리는 옷장 안 전체, 아니, 방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기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마치 수십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역겨운 감각이 엄습했다.
몸 안의 모든 피가 차갑게 식었다. 지훈은 등 뒤에서 오싹한 냉기가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그의 낡은 스탠드였다.
스탠드는 분명히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스탠드의 전구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스탠드 그림자 속에,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상이,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이것은… 초대였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은 스탠드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알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공포로 가득 찼다.
아파트의 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어둠이 틈을 벌려 삼키려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