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불골 이야기 – 스물세 번째 등불
등불골 골목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여느 때라면 고소한 빵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시간.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며칠 전부터 마을 입구에 늘어선 제국 병사들의 수레바퀴 자국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이 골목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제국 수도의 웅장한 건축물들도 오늘따라 차갑고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운 듯했다.
가온은 화덕 앞에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막 구워낸 호밀빵은 따끈했고, 그 냄새는 잠시나마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불안하게 빵집 문을 향했다. 오늘은 ‘그날’이었다. 어제 밤, 작은 등불 아래 모여 앉았던 그들의 눈빛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가온아, 빵은 다 됐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온은 움찔했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나처럼 차분한 표정의 아리 어르신이 서 있었다. 곱게 빗어 넘긴 희끗한 머리카락, 잔잔한 눈빛 속에는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담겨 있었지만, 그 눈빛은 흔들림 없이 가온을 지탱해주는 기둥 같았다. 아리 어르신은 등불골에서 가장 오래된 포목점 주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였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그림자 속 지도자였다.
“네, 어르신. 이제 막 나왔습니다.”
가온은 막 구운 빵 한 덩이를 바구니에 담아 건넸다. 빵의 온기가 그의 손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 빵 속에는 단순한 밀가루 반죽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아리 어르신과 동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제국의 눈을 피해 오갈 정보의 조각들이 숨겨져 있었다.
“수고했다. 이 빵은 옆집 병상에 누운 할머니께 가져다줄게. 기력이 없으셔서 당분간 밖을 못 나오시니.”
아리 어르신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가온은 그녀의 손이 빵을 집어 드는 순간, 엄지손가락으로 빵 껍질을 스치는 움직임이 평소보다 미묘하게 길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얇은 종이 한 조각이 빵의 갈라진 틈새로 감쪽같이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빵 속의 온기가 종이에 스며들어 촉촉한 긴장감을 전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밖에서 쇠붙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왔다.
“제국 병사들의 수색이 시작된다! 모든 상점은 문을 열고 검사에 응하라!”
등불골 골목의 적막을 깨고, 제국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굳게 닫혔던 이웃 상점의 문들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피할 곳은 없었다.
가온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겨우 숨을 고르려는 찰나, 빵집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회색 제복을 입은 병사 두 명이 먼저 들어섰고, 그 뒤를 이어 날카로운 눈매의 장교 한 명이 거만한 태도로 실내를 훑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번쩍이는 검이 걸려 있었고, 그 검 손잡이의 붉은 보석이 섬뜩하게 빛났다.
“감히 제국의 검문에도 이렇게 느릿느릿하다니. 수상하군.”
장교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의 눈빛은 빵집 구석구석을 훑으며 마치 숨겨진 죄악을 찾아내려는 듯했다.
아리 어르신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빵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가온은 그녀의 등 뒤로 감춰진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어떤 결심의 떨림 같았다.
가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죄송합니다, 장교님. 빵이 막 구워져서 뜨거워 식히느라….”
“변명은 필요 없다. 모든 물건을 검사할 것이다. 특히… 이곳 빵집은 수상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장교의 시선이 가온과 아리 어르신을 번갈아 훑었다. 그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당신은 누구냐? 빵집 주인인가?”
장교는 아리 어르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는 그저 병든 이웃에게 빵을 전해주려는 등불골 주민입니다. 빵집 주인은 저기 가온이지요.”
아리 어르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가온은 그녀의 연기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그 빵 바구니 안에는 뭐가 들었지? 빵 말고 다른 것은 없나?”
병사 한 명이 빵 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의 손끝이 빵 껍질에 닿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아리 어르신이 바구니를 살짝 뒤로 물렸다.
“이건 병든 이웃을 위한 귀한 양식입니다. 함부로 손대시면 안 됩니다. 혹 이 빵을 엎지르기라도 한다면, 제 이웃의 끼니는 누가 책임질 겁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동시에 깊은 연민과 인간적인 호소가 담겨 있었다. 마치 ‘이것은 약자를 위한 것이니 건들지 말라’고 외치는 듯했다.
장교는 잠시 멈칫했다. 제국은 질서와 법을 강조했지만, 백성들의 미약한 저항을 물리력으로만 찍어 누르는 것 외에도 ‘합리적인’ 명분을 찾는 데도 신경을 썼다. 병든 이웃을 위한 빵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작은 일이라도 백성들의 반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그도 알았을 터였다.
“음… 그렇다면 이 빵을 직접 부숴 보겠다. 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직접 확인하겠다.”
장교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빵을 훼손하되, ‘수색’이라는 명분을 잃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그의 눈은 승리감에 번뜩였다.
가온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빵 속에 숨겨진 종이는 얇았지만, 빵이 부서지면 그 존재가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아리 어르신은 물론, 자신도 위험에 처하게 될 터였다. 수십 번의 채찍질과 제국 감옥의 악명 높은 고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아리 어르신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눈은 순간적으로 가온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찰나, 가온은 그녀의 눈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읽어냈다. 동시에 어떤 계획이 읽히는 듯한 미묘한 움직임도 감지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장교님.”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바구니에서 빵을 꺼내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 빵의 따뜻함이 그녀의 품속으로 스며들었다.
“제가 직접 이 빵을 제 입으로 찢어 보이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빵의 한 귀퉁이를 뜯어 입에 넣는 시늉을 했다.
가온은 눈을 크게 떴다. 빵 안에 숨겨진 조각은 분명히 빵 껍질 바로 안쪽에 있었다. 어르신이 빵을 먹는 시늉을 하는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손은 교묘하게 품 안의 바구니로 내려갔다. 그녀의 품에 안긴 빵이 잠시 몸통으로 가려진 찰나였다.
그때, 장교가 비웃듯이 말했다.
“하! 그렇게 먹어치우면 증명이 되는 줄 아나? 빵은 여전히 수상하다. 안쪽까지 낱낱이 살펴봐야 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건 병든 이를 위한 양식이라고요. 만약 이 빵에 불순한 것이 숨겨져 있다면, 제가 어찌 이웃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아리 어르신은 빵을 안은 채 눈을 들어 장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당신은 나약한 노파의 진심마저 의심하는가’ 하고 묻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온은 깨달았다. 어르신이 빵을 품에 안고 입에 대는 척하는 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빵을 품으로 가져가는 순간, 그녀의 등 뒤에 가려진 바구니 속으로 무언가 떨어뜨리는 동작이 있었다. 아주 미세하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 그것은 분명 빵 속에 있던 ‘그것’이었다. 그녀는 빵을 뜯어 먹는 척하면서, 능숙하게 종이를 꺼내 바구니 아래에 숨긴 것이다. 빵은 거의 온전했다.
장교는 아리 어르신의 당당한 태도에 잠시 주춤했다. 이 늙은 여인의 굳건한 태도는 그의 예측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억지로 빵을 빼앗아 부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마을 사람들의 반감을 살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별것 아닐 텐데.’ 장교의 머릿속에 오만이 스쳤다.
“흥. 좋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주겠다. 늙은 노인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명심해라. 등불골에 숨겨진 그 어떤 불순한 움직임도 제국의 눈을 피할 수 없다. 다음번에는 이런 자비는 없을 줄 알아라!”
장교는 으름장을 놓으며 병사들을 이끌고 빵집을 나섰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가온의 귀청을 때렸다.
병사들이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리고, 골목은 다시 아까와 같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방금 전까지의 팽팽한 긴장감 대신,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알 수 없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아리 어르신은 품에 안았던 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빵은 거의 온전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한층 더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가온아, 괜찮니?”
가온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네, 어르신… 덕분에요.”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빵 바구니 속으로 향했다. 바구니 가장자리에 놓인 천 조각 아래로, 조그맣게 접힌 종이 한 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감쪽같이 숨겨진 채였다.
아리 어르신은 가온의 시선을 따라 바구니를 힐끗 보더니,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동시에 등불골의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꽃처럼 강인했다.
“다행이다. 그럼 이 빵은 병든 이웃에게 가져다줘야겠구나. 따뜻할 때 드셔야 할 텐데.”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빵집 문을 나섰다. 등불골 골목에 다시 아침 햇살이 비쳤다. 병사들의 그림자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공포는 여전히 골목 한편에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공포 속에서도 아리 어르신처럼, 가온처럼, 평범한 이들의 작은 용기와 지혜는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가온은 화덕을 다시 지폈다.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오늘 아침 빵 속에서 간신히 구해낸 그 작은 종이 한 장은, 등불골의 미래를 밝힐 거대한 불꽃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그는 빵 반죽을 치대는 손끝에 더 큰 힘을 실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지만, 이제 그 두근거림 속에는 두려움뿐 아니라 작은 희망의 메아리가 함께 울리고 있었다.
등불골의 스물세 번째 등불은, 그렇게 오늘도 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