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장: 심연의 부름
유성호의 낡은 선체는 별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낡은 함선은 이따금씩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은하계 변방의 이름 없는 소행성 지대를 헤치고 있었다. 조종간을 쥔 카이의 손은 거칠었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그의 눈빛은 전방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파편화된 소행성 지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젠장, 또 실패인가.”
카이의 중얼거림은 엔진의 웅웅거리는 소리에 묻히기 쉬웠지만, 조종석 뒤편에서 고대 데이터 패드를 들여다보던 세라의 귀에는 선명하게 박혔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세상일이 다 그렇죠, 캡틴. 이번엔 ‘코스모 광업’ 놈들이 정보를 흘린 모양이에요.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싹쓸이해 갔더군요.”
세라는 짧게 깎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더욱 지쳐 보이게 했다. 그들은 한 달째 보잘것없는 광물 운송 계약과 고대 유물 발굴이라는 허황된 꿈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유성호는 텅 빈 화물칸만큼이나 텅 빈 크레딧 잔고를 자랑하고 있었다.
“제기랄, 다음 엔진 수리비는 뭘로 대지? 이대로 가다간 유성호는 고철덩이가 될 거야.”
카이가 조종간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유성호는 방향을 틀어 소행성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별들이 다시 눈앞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그때, 통신석이 지지직거리며 켜졌다. 거대한 체구의 렉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먼지와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고, 손에는 망치 대신 큼지막한 토큰이 들려 있었다.
“캡틴, 세라! 이거 좀 봐요! 아까 착륙 포트에서 청소하다가 이런 걸 주웠는데… 뭘까요? 꽤 무거운데.”
렉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토큰을 내밀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화폐 단위나 신분증명 토큰과는 확연히 달랐다. 흑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했으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니 묘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세라가 렉스에게서 토큰을 건네받았다. 그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이건… 처음 보는 양식이네요. 고대어 문자인 것 같기도 하고. 스캔해볼게요.”
그녀는 토큰을 자신의 데이터 패드에 연결했다. 패드의 화면에 알 수 없는 기호들과 복잡한 에너지 패턴이 나타났다.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세라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캡틴, 렉스! 이건… 단순한 토큰이 아니에요. 내부에는 암호화된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것도 아주 고도하게.”
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데이터? 고철 덩어리에?”
“네. 그리고 이 데이터는… 어떤 좌표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복잡한 암호와 함께 뒤섞여 있어서 정확한 판독은 어려워요.”
“좌표라… 흔한 보물 지도는 아니겠지?” 렉스가 툴툴거렸다. 그는 유물이나 고대 문명 같은 것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먹을 것과 잠자리, 그리고 유성호가 순조롭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니요, 렉스. 이건 차원이 달라요. 이 암호화 방식은 제가 아는 어떤 문명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어요. 최소 수천 년 전의 기술일 겁니다. 그리고… 이 토큰의 재질도 특이해요. 현재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합금 같아요.”
세라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의 흔적 대신 학자적인 열정이 피어올랐다. 카이는 세라의 말을 듣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도 미약한 희망의 빛이 스쳤다.
“좌표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익숙한 곳이에요… 아, 찾았다! 제페투스 섹터, 23번 행성… 잔다르 행성계의 외곽 행성.”
카이와 렉스의 얼굴에서 동시에 핏기가 가셨다. 잔다르 행성계 23번 행성, 제페투스. 그곳은 한때 번성했던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전설만 남은, 완전히 버려진 행성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어떤 탐사선도 접근하지 않는 곳. 죽은 행성, 혹은 망자의 행성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제페투스라고? 거긴 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생명체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바위 하나 가져올 가치도 없다고 알려진 곳인데!” 렉스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외쳤다.
“그게 문제예요. 기록에 따르면 제페투스는 항상 거대한 방사능 폭풍과 이상 기후로 뒤덮여 있어요. 지표면에는 어떤 탐사선도 착륙할 수 없었죠. 하지만 이 토큰은…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어요.” 세라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카이는 텅 빈 크레딧 잔고와 낡아빠진 유성호를 떠올렸다. 그리고 눈앞의 알 수 없는 고대 유물. 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세라, 암호 해독에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제가 가진 모든 데이터 처리 능력을 동원하면… 아마 3일 정도는 걸릴 거예요. 하지만 완전한 해독은 장담 못 해요. 너무 복잡해서.”
“됐어. 3일이면 충분해. 렉스, 엔진 점검해. 제페투스까지 워프하려면 한참 걸릴 테니까.”
렉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카이를 바라봤다. “캡틴! 진짜 제페투스로 갈 작정이에요? 거긴 죽음의 행성이라고요! 그 망할 행성엔 수백 년 전부터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어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는 건, 아무도 찾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렉스. 만약 이 토큰이 가리키는 곳에, 그곳에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카이의 눈에 탐욕과 모험심이 동시에 번뜩였다. “우린 더 이상 이렇게 푼돈이나 벌면서 살지 않아도 될 거야. 유성호도 최고급 함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렉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는 항상 카이의 무모한 결정에 투덜거렸지만, 결국에는 따랐다. 그게 바로 그들의 방식이었다.
“알겠습니다, 캡틴. 하지만 도착해서 털끝 하나라도 위험한 게 보이면, 저는 바로 워프할 겁니다. 약속해요!”
“걱정 마. 내가 널 고철로 만들겠냐.” 카이가 피식 웃었다.
유성호는 다시 워프 엔진을 가동했다.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눈앞의 별들이 띠처럼 늘어섰다. 제페투스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
사흘 후.
세라는 마치 좀비처럼 데이터 패드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바쁘게 움직였다.
“찾았어요! 최종 좌표, 그리고… 몇 개의 단어. ‘시온의 심장’, ‘메아리’, ‘심연’… 의미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좌표는 정확합니다. 제페투스 행성, 북위 42.12도, 서경 113.87도.”
세라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성공에 대한 희열로 가득했다. 카이는 전방 스크린에 띄워진 제페투스의 모습을 응시했다. 행성은 거대한 붉은색 먼지 폭풍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숨결 같았다.
“이게 잔다르 행성계의 23번 행성이라고? 지도에는 황무지뿐이라고 나와있는데.” 렉스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저 지표면 아래 어딘가에… 저 토큰이 가리키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직접 착륙은 불가능할 겁니다.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요.” 세라가 불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탐사 드론을 보내도 의미 없을 거야. 이 폭풍 때문에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할 테니.” 카이는 머릿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계산했다.
그때, 유성호의 스캐너가 갑자기 경고음을 울렸다.
“캡틴! 비정상적인 에너지 감지! 행성 심부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주파수를 방해하고 있어요!” 세라가 소리쳤다.
“뭐라고? 행성 심부에서? 어떤 종류의 에너지야?”
“알 수 없어요! 현재 모든 스캔이 방해받고 있어요! 하지만… 확실히 인공적인 에너지원입니다!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에요!”
카이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렉스, 유성호의 모든 보호막을 최대로 올려. 세라, 에너지 간섭이 적은 곳을 찾아봐. 직접 내려간다.”
“캡틴! 무모해요!” 렉스가 기겁했다.
“무모해도 어쩔 수 없어. 이 토큰이 가리키는 곳에 우리가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어.” 카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세라는 재빨리 스캐너를 조작했다. “저기… 북극점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간섭이 약한 구간이 있어요! 하지만 폭풍이 매우 거칠어서… 착륙은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거예요!”
“거기다 대. 유성호는 쉽게 부서지지 않아. 아니, 부서져선 안 돼.”
카이는 유성호를 거친 대기권으로 밀어 넣었다. 기체가 흔들리고 보호막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거대한 먼지 폭풍 속으로 뛰어드는 유성호는 마치 작은 돌멩이 같았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렉스는 비명을 질렀고, 세라는 데이터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카이의 손은 조종간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몇 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유성호는 먼지 폭풍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상으로 낙하했다. 착륙 지점은 거대한 균열이 난 바위투성이의 협곡이었다. 붉은 먼지가 쉼 없이 몰아쳤지만, 행성 전체를 뒤덮은 폭풍보다는 약했다.
유성호가 바닥에 거칠게 착륙하자, 기체가 크게 울렸다.
“젠장, 간신히 착륙했네. 이 착륙포트는 수리비가 또 깨지겠군.” 렉스가 투덜거렸다.
“전방 스캔! 뭔가 보이는 게 있나?” 카이가 물었다.
세라가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지표면 스캔은 여전히 어렵지만… 협곡 가장 깊은 곳에서 어떤 구조물이 감지돼요! 방사능 수치도 그곳에서 가장 낮아요!”
카이는 조종석에서 일어나 개인 방호복 헬멧을 썼다. “렉스, 세라. 출동 준비해. 내려간다.”
“캡틴… 제가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 아까 행성 심부에서 느껴지던 그 에너지가… 지금은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져요.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세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는 헬멧을 완전히 닫았다. “어떤 게 기다리고 있든, 우리는 가야만 해. 유성호는 여기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유일한 출구는 저 아래에 있을지도 몰라.”
그들은 유성호의 착륙 램프를 내렸다. 협곡의 붉은 먼지 바람이 방호복을 때렸다. 카이는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협곡을 향해 걸어갔다. 렉스가 그의 뒤를 따랐고, 세라는 손전등이 달린 데이터 패드를 든 채 주위를 경계했다.
협곡은 점점 깊어졌다. 바위 벽에는 고대의 물길이 흐른 듯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발아래는 딱딱한 바닥 대신 끈적하고 미끄러운 흙탕물로 변해 있었다. 카이의 방호복에 장착된 스캐너가 뭔가를 감지하고 경고음을 울렸다.
“캡틴, 여기예요! 이 벽 안쪽에… 거대한 빈 공간이 감지됩니다!” 세라가 외쳤다.
카이는 손전등을 들어 벽을 비췄다. 붉은 흙과 바위로 뒤섞인 벽의 일부가 다른 곳보다 훨씬 검고 매끄러웠다. 마치 누군가 인공적으로 표면을 처리한 것처럼.
“렉스, 폭파 도구를 준비해.”
렉스는 능숙하게 소형 폭파 도구를 꺼내 벽에 부착했다. 작은 폭발음과 함께 붉은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먼지가 걷히자, 그들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바위 벽이 부서진 자리에는, 매끄러운 흑색 금속으로 이루어진 아치형의 입구가 드러났다. 수천 년 동안 붉은 먼지 속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면은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입구 위에는 렉스가 주웠던 토큰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치형 입구 너머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으로 거대한 통로가 뻗어 있었다.
“세상에… 정말이었어…” 세라가 경외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이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토큰을 쥐고 있었다. 토큰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주인을 알아본 것처럼.
“이게 ‘시온의 심장’인가….” 카이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렉스와 세라가 따라왔다.
고대 유적의 차가운 공기가 그들의 방호복을 스쳤다. 통로를 따라 걸어가자, 벽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그들을 맞이했다. 깊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 저 아래에서부터 미약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행성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점차 커지며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그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어둠 속에는, 인류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밀이 잠들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잊혀진 문명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