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네온사인으로 붉게 물든 빌딩 숲 너머, 2077년의 신서울은 잠들지 않는 거대한 기계처럼 웅웅거렸다. 유진은 37층에 위치한 자신의 스마트 아파트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흐릿한 홀로그램 스크린에서는 오늘 하루 증권가에 나돌았던 유출 정보를 분석한 결과가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씁쓸한 결론이었다. 도시의 회색빛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반복될 뿐이었다.

“시스템, 오늘자 보고서 종료.”

유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천장에 매달린 AI 스피커가 ‘삐빅’ 소리를 내며 응답했다.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거실은 은은한 간접조명만 남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냉장고 문이 ‘쿠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스템, 냉장고 문이 닫혔다고?”

[냉장고 문은 1시간 전 자동으로 닫혔습니다. 현재 모든 가전제품은 대기 상태입니다.]

AI의 기계적인 답변에 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피곤했나 보다. 늦게까지 데이터 분석에 매달린 탓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데, 이번에는 주방 쪽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유리잔이 식탁 위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유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불안감이 희미하게 고개를 들었다.

“시스템, 주방 이상 감지?”

[이상 없음. 모든 센서는 정상 작동 중입니다.]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차가운 강화 마루에 닿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소리를 들었다. 주방으로 향하는 짧은 복도를 걷는데, 거실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 패널이 갑자기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선명했던 도시 풍경이 한순간 모래폭풍처럼 일그러지더니, 이내 알아볼 수 없는 노이즈와 기하학적인 무늬로 가득 찼다.

“뭐야? 시스템 오류?” 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오류 감지. 원인 분석 중입니다.]

AI의 목소리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패널의 노이즈는 격렬하게 춤추더니,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진의 등골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손이 등을 쓸어내린 듯한 감각이었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컵도, 접시도, 늘 놓여있던 에너지바 포장지도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냉장고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AI가 자동으로 닫혔다고 했으면서.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는데, 그 순간 냉장고 안에서 작은 얼음 조각 하나가 튕겨져 나와 유진의 발등에 떨어졌다. 차가운 한기가 발끝부터 온몸으로 퍼졌다.

“장난하는 거야 지금?”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스템, 해킹이야? 누군가 내 스마트 시스템을 건드리고 있어?”

[현재 외부 침입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보안 프로토콜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그때, 거실에서 ‘쨍그랑!’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허둥지둥 거실로 되돌아갔다.

깨진 유리컵 조각들이 강화 마루 위에 흩어져 있었다. 유진이 방금까지 앉아있던 소파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컵은 항상 주방 수납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유진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누구… 누구야?”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위는 여전히 고요했고, 깨진 유리 파편만이 을씨년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스마트 미러가 설치된 침실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스르륵 열렸다. 유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쪽을 바라봤다.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그 시선이 느껴졌다.

유진은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문턱을 넘어서자, 침실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에어컨은 분명 꺼져 있었다. 옷장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유진이 가장 아끼는 재킷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격렬하게 던져버린 것처럼.

그리고 침대 옆에 서 있는 스마트 미러. 평소에는 유진의 스케줄이나 날씨 정보를 띄워주던 그 미러에, 이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검은 화면일 뿐이었다. 유진이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미러가 ‘팟’ 하고 켜졌다.

화면에 비친 것은 유진의 얼굴이 아니었다. 일그러지고, 비명 지르는 듯한,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마치 끔찍한 악몽의 한 장면처럼, 디지털 노이즈 사이로 섬뜩한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손으로 긁어낸 것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동시에 침실의 모든 조명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틱, 틱, 틱!’ 경련하듯 터져 나오는 섬광 속에서, 유진은 한 줄기 섬뜩한 속삭임을 들었다.

“나가…!”

분명히 들었다. 그 목소리는 기계음이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온 몸의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침실의 모든 가구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침대 매트리스가 ‘쿠웅’ 하고 들썩였고, 협탁 위의 스탠드가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졌다.

유진은 더 이상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이 아파트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눈앞의 광경은 그 어떤 데이터 분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유진은 고개를 돌릴 용기조차 없었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공포 속에서,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침실 문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유진의 발목을 잡아챘다.

“커헉!”

유진의 몸이 통째로 뒤집히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폐부에서 모든 공기가 빠져나가고,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통증이 뒤따랐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과 공포 속에서 신음하는 유진의 눈앞에,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AI 스피커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이잉…’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스피커는 허공에서 흔들리더니, 이내 유진의 머리 위로 ‘콰앙!’ 하고 떨어졌다. 스피커가 박살 나는 순간, 유진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차가운 속삭임이었다.

“넌… 이미 이곳에 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