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밤은 깊었고, 도시는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침묵하는 척’했다. 창밖으로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이따금 터지는 듯한 굉음이 그 위선을 깨트렸다. 지훈은 24층 아파트 거실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켜놓은 TV 화면의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멍하니 바라봤다. 뉴스는 이미 며칠 전부터 송출을 멈췄고, 그가 아는 모든 채널은 검은 화면 아니면 의미 없는 시험 방송만을 내보낼 뿐이었다. 세상이, 그의 아파트 바깥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감기 바이러스인 줄 알았다. 기침과 열, 그리고 전염성. 하지만 그것은 곧 인간의 이성과 육체를 좀먹는 괴물로 변이했다. TV 속 뉴스 앵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들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던 생방송 화면은 지훈의 뇌리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바깥은 통제 불능의 아비규환이었다. 그는 운 좋게도, 혹은 불운하게도, 자신의 아파트에 갇혀버렸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은 충분했지만, 그를 둘러싼 공포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새벽 두 시, 아파트 전체에 흐르던 웅웅거리는 진동이 갑자기 끊겼다. 정전이었다. 지훈은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불안감이 폐부를 옥죄어왔다. 손전등 빛이 닿지 않는 거실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뭐야?”

지훈은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올랐다. 똑, 똑.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비췄다. 거실 테이블 위, 아침에 마시다 둔 머그컵이 보였다. 소리는 컵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컵 옆에 놓인 작은 유리 장식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 지진인가?”

고층 아파트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기가 끊긴 완벽한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미동은 공포 그 자체였다. 유리 장식품의 떨림이 점점 격렬해졌다. 똑, 똑, 또독. 그러더니 갑자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산산조각이 났다.

지훈은 굳어버렸다. 지진은 아니었다. 그가 알기로 지진은 이런 식으로 물건 하나만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게다가 땅울림 같은 진동도 없었다. 그는 손전등을 떨어진 장식품 조각 위로 비췄다. 차가운 유리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때였다.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번에는 부엌이었다. 그는 손전등을 든 손을 덜덜 떨며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그가 설거지를 해둔 접시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지훈은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부엌 찬장의 문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뼈에 사무치도록 섬뜩했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문을 여는 듯이.

그는 뒷걸음질 쳤다. 현실감이 없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귀신이라도 붙었단 말인가?

그는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도망쳐야 했다. 어디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집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현관문에 손을 뻗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에서 거실 창문이 활짝 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순식간에 아파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도시의 절규였다.

“안 돼…”

지훈은 문고리를 잡은 채 얼어붙었다. 현관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서 걸어 잠근 기억이 없었다. 그는 손잡이를 돌리고 밀고 당겨봤지만,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잠금장치가 내려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것처럼.

그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이 단순히 그의 불안감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언가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이 공간을 그와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침실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늘고 떨리는 소리. 마치 어린아이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늙은 여인의 신음 같기도 한 묘한 소리였다.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손전등을 꽉 쥐고 침실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누구세요…?”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빛을 침실 안으로 비추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위 이불이 잔뜩 구겨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불 위에, 누군가가 눕기라도 한 것처럼 움푹 들어간 자국이 선명했다. 마치 방금까지 누워있다가 일어난 것처럼. 흐느낌은 멈췄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방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 그의 발목을 무언가가 잡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차가운 손이 그의 발목을 움켜쥐는 듯한.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손전등은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 어둠 속에서 그는 허우적거렸다.

“꺼져! 제발, 꺼지라고!”

그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의 발목을 잡았던 차가운 감각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오싹한 기운이 그를 감쌌다. 침대 밑에서, 손전등 불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희미하게 침대 밑 공간을 비추는 그 빛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보다 ‘느꼈다’.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 그것은 형태가 없었다. 마치 어둠 그 자체인 듯, 하지만 어둠 속에서 더 검게 움직이는 존재. 그것은 서서히 그의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것은, 그 그림자가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서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쓱싹, 쓱싹.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침실 문을 향해 기어갔다. 문을 박차고 거실로 뛰쳐나왔다. 숨이 턱 막혔다. 현관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그는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이게… 뭐야… 도대체…”

그때,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삐뚤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났다. 그리고 액자가 떨어졌던 자리, 벽에 희미하게 붉은 손자국이 나타났다. 마치 피로 찍어낸 듯한 선명한 손자국. 그것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핏빛이 섞인 검붉은 손자국이 점점 커지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자국이 아니었다. 손자국처럼 보였던 것은, 마치 벽 안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괴물의 형상이었다. 일그러진 얼굴, 길게 늘어진 팔다리. 그것은 서서히 벽에서 튀어나오는 듯했다. 벽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그리고 지훈은 깨달았다. 바깥 세상은 이미 ‘그들’에게 점령당했다. 육체를 잃은 채, 혹은 육체마저 변이시켜버린 채, ‘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파트 안의 존재는… ‘그들’ 중 하나가, 어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이 공간에 침투한 것이었다. 어쩌면 벽을 타고, 어쩌면 텔레파시처럼, 아니면 죽은 자들의 잔재처럼.

“살려줘…”

지훈의 입에서 간신히 나온 소리였다. 벽에서 거의 반쯤 튀어나온 괴물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귀에만 들리는 듯한,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울렸다. 그것은 차가웠고, 잔인했으며, 동시에 광기에 가득 찬 소리였다.

괴물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차가운 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지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더 이상 폴터가이스트는 아니었다. 이것은… 그의 집 안에 자리 잡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망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포위되었다. 아파트라는 이 작은 공간 안에서, 그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도시는 이미 멸망했고, 이제는 그의 집 차례였다. 그의 등 뒤에서는 닫힌 현관문이 쿵, 쿵, 쿵. 마치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훈은 자신의 아파트에 갇힌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무덤 속에 갇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덤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종말의 시작이었다. 벽 속의 괴물이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야는 서서히 검붉은 어둠으로 잠식되어 갔다. 침묵만이 그들의 승리를 알리는 것처럼 아파트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