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차가운 철갑이 태양빛을 가리고, 썩어가는 황제의 숨결이 대지를 뒤덮었다. 크로노스 제국. 그 이름만으로도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거대한 권력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며 그들의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렸다. 식량이 부족하여 아이들의 배가 꺼져가는 와중에도, 제국의 병사들은 광산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별똥석’을 캐내라 종용했다. 그 별똥석은 제국의 마법 공학 병기와 마탑의 힘의 원천이 되었고, 그것이 곧 제국의 폭정이 지속되는 이유였다.

진우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속에서 묵묵히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의 등은 이미 굽을 대로 굽었고, 손바닥은 굳은살과 상처로 가득했다. 한때는 작은 광산촌에서 가족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꿈꿨던 남자였으나, 제국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세금 체납이라는 명목으로, 그의 마을을 불태웠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진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반란군에 합류했다. 아니, 정확히는 반란군이라 불리기도 민망한, 그저 제국에 저항하는 오합지졸들의 모임이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돼.”

그가 중얼거렸다. 옆에서 함께 곡괭이를 휘두르던 울프가 땀을 훔치며 진우를 돌아봤다. 울프는 거대한 몸집의 전직 대장장이로, 제국의 주조 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탈출한 사내였다.

“뭐가 또 안 된다는 거냐, 진우? 그 놈의 별똥석이 없으면 제국 병사들은 장난감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네 말은 잘 알겠다만… 도대체 어떻게 저걸 빼내올 건데?”

울프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심연의 나락’이라 불리는 거대한 던전의 입구였다. 사실 그곳은 고대 문명의 유적이라기보다는, 제국이 가장 많은 별똥석을 채굴하는 거대한 광산이자 제국의 핵심 방어 거점 중 하나였다. 지하 깊숙한 곳에 제국의 마탑이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서 채굴된 별똥석으로 마법 병기들을 만들고 마법사들을 양성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건 목숨뿐이야. 잃을 것도 없어.”

진우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빛났다. 그의 손에 들린 곡괭이는 더 이상 돌을 깨는 도구가 아니라, 제국의 심장을 노리는 무기 같았다.

“그래, 우리도 잃을 것 없어.”

가장 어린 카이라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카이라는 예언자라 불리는 노인의 손녀로, 어두운 던전 속에서도 빛을 찾아낼 것 같은 총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제국군에 의해 노인이 죽임을 당한 후, 진우 일행에 합류했다. 그녀는 오래된 기록과 전설에 능통했으며, 이번 임무에서 길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리안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리안은 날렵한 몸놀림의 전직 사냥꾼으로, 제국군에 의해 숲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 그녀는 활시위를 당기듯 굳건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죽기 살기로 덤벼볼 수밖에. 하지만 진우, 네가 말한 대로라면 그곳은 그냥 광산이 아니야. 제국의 가장 깊은 감옥이자, 동시에 가장 은밀한 무기고이지. 우리가 별똥석 핵심부를 노리는 동안, 제국군은 결코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알아.”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제국의 눈과 귀, 그리고 주먹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곳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한때 그곳에서 가장 깊은 갱도까지 파고들어 갔던 베테랑 광부였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심연의 나락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별똥석 원광로’를 파괴하고 가능한 한 많은 원광을 탈취하는 것이다. 그곳은 제국의 마탑과 직결되어 있어. 그곳을 마비시키면, 제국군은 한동안 힘을 쓰지 못할 거야. 그때가 우리가 봉기할 기회다.”

진우의 말에 모두의 눈빛에 결연함이 스쳤다. 새벽의 어스름이 걷히기 전, 네 명의 그림자는 거대한 심연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 * *

심연의 나락 입구는 제국군 감시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횃불의 불빛이 흐릿하게 비추는 어둠 속에서 진우는 리안에게 손짓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치 그림자처럼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 스르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감시병 한 명이 목덜미에 칼을 맞고 쓰러졌다. 이어서 다른 한 명도 마찬가지였다. 두 명의 시체는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안의 솜씨는 언제나 정교했다.

“진입.”

진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쿵, 쿵, 쿵. 울프의 거대한 발걸음이 돌바닥을 울렸지만, 울프는 자신의 무게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카이라는 손전등 역할을 하는 작은 마법석을 꺼내들었다. 마법석의 푸른빛이 던전의 내부를 희미하게 밝혔다.

“이곳의 구조는 복잡합니다. 진우 오빠가 이전에 작업했던 지도와 제국이 설치한 방어 시설 지도를 대조해야 해요.”

카이라가 두루마리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지도의 갱도와 제국 방어선의 위치를 짚어갔다.

“제국의 방어선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망루’ 구역, ‘감시자의 회랑’, 그리고 가장 깊은 곳의 ‘심장부’다. 망루 구역은 제국군의 순찰이 가장 잦은 곳이지만, 진우 오빠의 지도로 우회할 수 있는 샛길들이 많아요.”

“그래, 내 예전 작업반이 파던 샛길들이 아직 막히지 않았다면 말이지.”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수년 만에 다시 들어온 이 던전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를 풍겼다. 축축한 흙냄새, 금속성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피 냄새와 같은 비릿한 기운이 코를 찔렀다.

얼마 가지 않아, 좁고 어두운 샛길이 나타났다. 벽에는 진우가 예전에 새겨놓은 작은 표시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여기다.” 진우가 중얼거렸다.

“휴… 다행이군. 이 길을 통하면 정면에 있는 제국군 주둔지를 피할 수 있어.”

그러나 샛길은 예상보다 더 좁고 험난했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끈적한 이끼가 가득했고, 천장에서는 불길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발아래는 미끄러웠고, 자칫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젠장, 이런 곳에 제국군이 매복하고 있지 않다는 보장은 없잖아?”

울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그의 거대한 몸집이 좁은 통로에 꽉 들어찼다.

“안심해, 울프. 이런 곳은 제국군도 좋아하지 않아. 그들은 더 쉽고 넓은 길을 선호하지. 우리 같은 쥐새끼들이나 쓰는 길이야.”

진우의 말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쥐새끼라… 그들은 쥐새끼처럼 숨어 살았고, 이제 쥐새끼처럼 제국의 심장을 파고들어 가야 했다.

몇 시간을 걷고 기어간 끝에, 그들은 넓은 공간에 도달했다. 이곳은 ‘감시자의 회랑’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거대한 석굴은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했다. 벽에 박힌 마법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회랑을 밝히고 있었다. 회랑 저편에는 제국군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저기 병사들이 감시탑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어. 최소 스무 명은 넘어 보여.” 리안이 숨소리조차 죽이며 말했다.

“정면 돌파는 무리다. 카이라, 다른 길은?”

카이라는 지도를 손으로 더듬으며 눈을 감았다.

“이곳은 ‘마법 장막’으로 보호되는 구역입니다. 제국군의 마법사가 수시로 순찰하며 이상 기운을 감지하죠. 하지만… 잠시 마법 장막이 교체되는 순간의 ‘틈’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때를 노려야 해요.”

“언제지?” 진우가 숨을 죽였다.

“밤… 아니, 이곳은 영원한 밤이니, 제국군 교대 시간인 ‘세 번째 푸른 빛’이 꺼지고 ‘네 번째 붉은 빛’이 켜지는 순간… 딱 칠 초입니다. 그 칠 초 안에 저 장막을 돌파해야 해요.”

“칠 초라고? 리안, 가능하겠어?” 울프가 불안한 눈빛으로 리안을 보았다.

리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이 필요해.”

시간은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느리게 흘렀다. 진우는 심장이 귀청을 때리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틱… 틱… 틱… 벽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그의 굳건한 의지였다.

드디어, 카이라가 외쳤다. “지금입니다! 세 번째 푸른 빛이 꺼지고… 네 번째 붉은 빛이 켜지는 순간! 칠 초!”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 장막이 일렁였다. 리안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 뒤를 이어 진우와 울프, 카이라가 질풍처럼 내달렸다. 칠 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마법 장막이 다시 복구되는 순간, 진우는 간신히 몸을 던져 반대편으로 넘어졌다. 그의 등 뒤로 퍼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간신히….” 울프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멀었어.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진우는 다시 일어섰다. 이곳부터는 제국 마탑의 마법사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는 핵심 구역이었다.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별똥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광채가 사방을 기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 * *

수많은 갱도를 지나, 그들은 마침내 ‘심장부’에 도달했다. 거대한 돔형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별똥석 원광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별똥석 덩어리가 푸른 빛을 내뿜으며 윙- 하는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은 제국 마탑의 모든 마법과 병기들을 움직이는 심장이었다. 수십 명의 제국군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원광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게… 제국의 심장이다.” 울프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우리의 임무는 저 원광로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가능한 많은 원광을 탈취하는 것.” 진우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지만, 그 속에는 타오르는 불길이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병력을 어떻게….” 카이라가 절망적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저 병사들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진우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원광로 앞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갑옷의 기사. ‘흑룡기사단’의 일원인 듯한 검은 갑옷의 기사였다. 그들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정예 병사들이었다.

“울프, 넌 저 기사를 막아라. 리안, 카이라, 너희는 원광을 최대한 확보해. 난… 저 원광로를 파괴할 방법을 찾겠다.”

“혼자서 저 기사를 막으라고?” 울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겐 내가 만든 망치가 있다. 저 기사도 언젠가는 부러질 철갑옷을 입었을 뿐이다.”

진우는 자신의 곡괭이를 움켜쥐었다. 그의 곡괭이는 평범한 곡괭이가 아니었다. 광부 시절, 가장 단단한 별똥석을 캐기 위해 그가 직접 담금질하고 강화한, 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돌격!”

진우의 외침과 함께 리안의 활이 불을 뿜었다. 쉬이이익! 화살촉이 제국군 병사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이를 신호로 울프가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콰앙! 쾅! 망치에 맞은 병사들이 튕겨나가거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울프는 맹렬한 기세로 흑룡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미천한 것들이 제국의 심장을 넘보느냐!” 흑룡기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거대한 검을 뽑아 들고 울프의 망치와 맞섰다. 쨍그랑! 쇠와 쇠가 부딪히는 굉음이 던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카이라는 빠른 손놀림으로 원광로 근처에 쌓여있는 별똥석 원광들을 작은 주머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가장 순도가 높은 원광을 찾아내고 있었다. 리안은 끊임없이 활시위를 당기며 카이라에게 접근하는 병사들을 막아섰다.

진우는 혼란을 틈타 원광로의 가장자리에 접근했다. 그는 자신의 곡괭이로 원광로의 약점을 찾아내려 했다. 예전 광부 시절의 경험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 순도 높은 별똥석 원광은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그만큼 취약한 부분이 존재했다.

“여기다…!”

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원광로의 한쪽 벽면에 미세한 균열을 발견했다. 그곳은 별똥석의 에너지가 가장 격렬하게 분출되는 지점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압력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했다.

“젠장, 제국군 마법사들이 나를 알아챘어!”

카이라의 외침이 들렸다. 마법사들이 그녀에게 마법을 시전하려 하고 있었다. 진우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울프! 시간을 벌어줘!”

“크아아아! 이거나 받아라!” 울프가 전력을 다해 망치를 휘둘러 흑룡기사를 잠시 뒤로 물러서게 했다.

진우는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팔뚝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모든 힘을 실어, 그는 곡괭이를 균열에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푸른 광채가 던전 전체를 뒤덮었다. 원광로가 굉음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별똥석 에너지가 폭주하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제국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법사들이 시전하려던 마법은 에너지가 폭주하며 역류해 그들을 집어삼켰다.

“탈출하라! 어서!” 진우가 소리쳤다.

울프는 망치를 들어 흑룡기사를 한 번 더 밀쳐내고, 카이라와 리안을 향해 달려갔다. 흑룡기사 역시 폭주하는 에너지에 휘말려 휘청거렸다.

그들은 혼란을 틈타 출구로 향했다. 던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별똥석의 푸른빛이 희번덕거리며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젠장, 무너지고 있어!” 울프가 외쳤다.

“빨리 움직여! 우리가 얻은 건 충분해!” 카이라의 주머니는 이미 별똥석 원광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던전이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죽어가는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간신히 던전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이미 입구는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서! 한 명씩!”

진우는 마지막으로 동료들을 밀어 넣고, 자신은 무너지는 돌무더기를 간신히 피해 밖으로 나왔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던전 입구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흙먼지와 땀,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성공했다… 우리가 해냈어…!” 리안이 울음을 터뜨렸다.

“제국은 한동안 별똥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 거야. 이제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진우는 손에 들린 곡괭이를 바라봤다. 더 이상 돌을 깨는 도구가 아니었다. 제국의 심장을 강타한 정의의 망치였다. 그들의 어깨 위로 비로소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 작은 승리가,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길은 아직 멀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쥐새끼가 아니었다. 그들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반란의 전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