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테르나 (Aeterna) – 에피소드 1: 낙원의 파편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미궁, 눅진한 공기 속에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 쓰러진 채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강민의 눈앞에는 시스템 알림창이 찢어진 화면처럼 깜빡거렸다.

**[경고! 체력이 1% 미만입니다.]**
**[경고! ‘영혼의 속박’ 디버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남은 생명력: 0.01%]**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끊어질 듯 아파왔다. 사지가 찢겨나간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본 것은, 찬란했던 과거의 잔상과 그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낸 하나의 그림자였다.

* *콰직!* 으스러지는 뼈와 살이 뒤섞인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타닥타닥…* 주변을 밝히던 횃불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흔들렸다.
* *쿵, 쿵.* 심장이 고통스럽게 요동치는 소리가 강민의 귓가에 크게 울렸다.

“하아… 하아…”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내뱉으며 강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천장은 마치 무덤의 뚜껑처럼 보였다. 이토록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그의 영혼은 조각나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문득 몇 년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웃음이 많고, 게임 속 친구들을 그 누구보다 믿었던 순진한 영혼.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부서졌다. 누구 때문에?

재혁. 그래, 재혁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에테르나’라는 가상현실 게임이 세상에 공개된 지 3년. 강민과 재혁은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였다. 둘은 게임 속에서 만났지만, 현실에서도 형제처럼 지냈다. 매일 밤 늦게까지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목표를 세우며 함께 전진했다.

“야, 강민아! 저거 봐! 드디어 ‘심연의 나락’ 최하층 보스까지 왔다고!”

화면에 거대하고 흉측한 보스 몬스터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재혁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쳤다, 재혁아! 우리가 이걸 해낸다고? 믿을 수가 없네!”

강민의 목소리에도 흥분이 가득했다. 둘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같은 꿈을 보았다. ‘에테르나’ 최고의 길드를 만들고, 미지의 던전을 탐험하며, 전설 속 아이템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파티 리더 ‘재혁’이 ‘심연의 나락 – 절멸의 지배자’ 전투를 시작합니다!]**

보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덮쳤다. 강민은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회피했고, 재혁은 강력한 마법으로 보스를 묶어두었다. 완벽한 팀워크였다. 서로의 호흡을 읽고, 다음 수를 예측하며 움직였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신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길고 지루한 전투 끝에 보스는 마침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축하합니다! ‘심연의 나락 – 절멸의 지배자’를 처치했습니다!]**
**[최초 클리어 파티! ‘영웅의 위업’ 업적 달성!]**
**[특별 보상: ‘결속의 성물 – 영혼의 각인’ 획득!]**

“미쳤어! ‘영혼의 각인’이라고? 이게 그 전설 속 아이템이잖아?” 재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영혼의 각인’은… 둘이서 사용하면 서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위기 시에는 생명력까지 공유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파트너 아이템이잖아!” 강민의 얼굴에도 감격이 서렸다.

* *반짝!* 보물 상자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 *두근거리는 심장.* 이 전설적인 아이템을 통해 둘의 우정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강민은 확신했다.

“강민아, 이거 우리가 같이 쓰자. 이 아이템이야말로 우리 둘의 우정의 증표잖아!” 재혁이 활짝 웃으며 강민에게 ‘영혼의 각인’을 내밀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심장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진 펜던트였다.

“그래! 당연하지! 이걸로 우린 진짜 최강 파트너가 되는 거야!”

강민은 기쁜 마음으로 재혁과 함께 펜던트를 들었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결속의 성물 – 영혼의 각인’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영구적 효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강민은 ‘예’를 선택했다. 재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눌렀다.
펜던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들을 감쌌다. 따뜻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는 느낌.

그 순간, 재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것을 강민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 밤, 모든 것이 뒤집혔다.

“강민아, 미안하지만… 넌 이제 필요 없어.”

재혁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갑고 낯설었다. ‘영혼의 각인’이 완벽하게 활성화된 직후였다. 강민은 아직도 펜던트의 따뜻한 기운에 도취되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재혁아? 갑자기 왜…”

강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혁의 손에서 섬뜩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영혼의 각인’의 능력을 역으로 뒤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이었다.

**[경고! ‘결속의 성물 – 영혼의 각인’의 주인이 변경됩니다!]**
**[경고! ‘영혼의 각인’의 ‘생명력 공유’ 능력이 ‘영혼 흡수’로 변질됩니다!]**
**[경고! ‘재혁’ 플레이어가 당신의 영혼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5 감소합니다!]**
**[당신의 스킬 포인트 50이 소멸합니다!]**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10% 감소합니다!]**

“뭐… 뭐라고?”

눈앞에 펼쳐지는 시스템 메시지는 너무나도 잔인했다. 몸속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느낌.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강민의 전신을 강타했다.

* *으아아악!* 강민의 비명이 미궁에 울려 퍼졌다.
* *번쩍!* 재혁의 몸에서 어두운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알림창이 강민의 눈앞에 나타났다.

재혁은 싸늘하게 웃으며 강민을 내려다봤다. “하찮은 너와 계속 어울리느니, 네 모든 것을 흡수해서 내 힘으로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전설 속 ‘영혼의 각인’의 진정한 힘은 ‘흡수’와 ‘배신’에 있었거든. 멍청하게도 넌 그걸 몰랐지.”

“재혁… 네가 어떻게…!”

강민은 절규했지만, 재혁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발길은 망설임 없이 강민이 얻었던 모든 귀한 아이템들이 담긴 인벤토리 창으로 향했다.

**[‘심연의 지배자의 영혼핵’을 획득했습니다.]**
**[‘빛의 심장 갑옷’을 획득했습니다.]**
**[‘어둠 추적자의 망토’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의 인벤토리가 비었습니다.]**

재혁의 마지막 말은 강민의 심장을 꿰뚫는 비수와 같았다.

“사냥꾼의 미끼는 더 이상 필요 없어. 넌 여기서 쓸모없는 잔재가 되어 사라져. 기억해라, 강민. 이 에테르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야. 넌 강해지지 못했고, 난 더 강해지고 싶었을 뿐.”

그렇게 재혁은 강민이 쓰러져 있는 미궁 속에 그를 버려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남겨진 강민은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과 영혼의 상실감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는 재혁에게 모든 것을 잃었다. 우정, 힘, 그리고 존재의 이유까지.

**[당신은 ‘영혼의 속박’ 상태입니다. 레벨업 제한, 능력치 회복 불가.]**
**[당신은 ‘저주받은 자’ 디버프를 획득했습니다. 모든 몬스터에게 선제 공격을 받습니다.]**

다시 현실. 혹은 현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임 속.
강민은 희미한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게임 속 가장 초보적인 마을인 ‘새싹 마을’의 부활 지점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이 초기화된, 그야말로 ‘맨몸’이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초보 유저들이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야, 쟤 뭐야? 완전 거지네.”
“렙 초기화라도 됐나 봐. 불쌍하다.”

강민은 그들의 조롱 섞인 시선 속에서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그저, 이 모든 현실이 꿈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임 접속을 종료할까? 아니, 그래선 안 된다.
재혁은 지금쯤 ‘영혼의 각인’의 힘을 빌려 에테르나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쌓아 올린 탑은 강민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길드 랭킹 게시판에는 재혁이 새로 만든 길드인 ‘황혼의 파수꾼’의 이름이 급상승하고 있었다. 개인 랭킹에도 그의 이름이 전광석화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강민의 모든 것을 짓밟고서.

* *부들부들.* 강민의 손이 떨렸다.
* *분노.* 그를 집어삼킬 듯한 검은 감정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재혁…”

입 밖으로 터져 나온 이름은 원망과 증오로 가득했다.
피가 역류하는 듯한 분노가 그의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절망의 끝에서, 강민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단 하나.

복수였다.

“그래… 이 모든 것을 되돌려줄게.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아 줄 거야.”

강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며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복수심만이 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너는 네가 쌓아 올린 그 높은 탑에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추락하게 될 거야. 그때까지… 난 절대 죽지 않아.”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다시 시작하는 초보자용 낡은 나무 검 한 자루와, 비웃듯 휘날리는 초라한 천 조각의 갑옷뿐이었다. 하지만 강민의 눈은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지옥보다 더 깊은 나락에서부터,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부수기 위해서.

이것은 절망에서 피어난 복수의 서막이었다.

**[에피소드 1: 낙원의 파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