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유물
### 제12화: 붕괴의 서막
아틀라스 호의 함교는 핏빛 비상등 아래 숨죽인 묘지처럼 고요했다. 사방을 에워싼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만이 이곳이 살아있는 우주선임을 간신히 증명하는 듯했다. 이지안 함장은 굳게 다문 입술로 메인 스크린을 노려봤다. 일주일째였다. 심우주 탐사 중 우연히 발견한, 그 기이한 육각형 유물을 회수해 온 지 정확히 7일. 그 7일은 인류가 경험한 수많은 재앙의 순간보다 더 농밀한 공포로 점철되어 있었다.
“함장님, 후방 안정기 출력 15%까지 떨어졌습니다. 비상 동력으로도 커버가 안 됩니다.”
항해사 김민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키패드 위에서 불안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며칠 밤을 새운 듯한 피로가 역력했다.
“원인 파악은?” 이지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불가능합니다. 모든 진단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시스템 자체가 왜곡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그 단어가 함교 전체에 싸늘한 기운을 드리웠다. 모두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격리실 깊숙이 잠들어 있는, 혹은 깨어나고 있는, 그 검은 육각형 조형물.
“격리실 상황은?” 보안 팀장 최강혁이 투박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의 손은 허리춤에 찬 플라즈마 소총의 손잡이를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박 서준 박사는 아직도 그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이지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박 서준 박사는 격리실 내부 연구 구역에 있습니다. 현재 유물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파형의 변화를 분석 중이라고 합니다.”
“정말 안전합니까? 박사님 혼자 거기 있는 게?” 김민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최강혁은 코웃음을 쳤다. “안전? 이 우주선 안에 ‘안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격리 장치는 시시각각 불안정해지고, 선원들은 악몽에 시달리다 못해 환각까지 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유물이라는 빌어먹을 돌덩이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는 겁니까? 그냥 심연으로 다시 던져버리는 게 현명한 판단 아닐까요?”
“우리는 인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최 팀장. 미지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 도망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은 아닙니다.” 이지안은 단호했지만, 그의 눈빛에도 망설임의 그림자가 스쳤다. “박 서준 박사가 뭔가 단서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이대로는… 모두가 파멸할 겁니다.”
그때였다. 함교 중앙의 메인 통신 채널이 지직거리는 잡음을 뿜어내더니, 박 서준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찢어질 듯 흘러나왔다.
—함장님! 들리십니까? 함장님!
“박사님!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이지안이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괜찮지 않습니다! 전혀! 유물의… 유물의 코드가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박 서준의 목소리는 흥분과 공포로 뒤섞여 있었다.
“코드라니요? 어떤 코드 말입니까?”
—이건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이건… 이건 시간의 문입니다! 시간의 기록이자, 파편이자, 그리고… 심장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틀라스 호 전체가 으스러지는 듯한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비상등마저 깜빡이며 꺼져버렸고, 함교는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이지안은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젠장! 무슨 일이야?” 최강혁이 외쳤다. 그의 플라즈마 소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중력 안정기가 완전히 나갔습니다! 선체가… 선체가 비틀리고 있습니다!” 김민아의 비명 같은 보고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지안은 더듬거리며 예비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희미한 비상등이 다시 점멸하며, 함교는 붉은 그림자들로 가득 찼다. 메인 스크린은 깨져 있었고, 보조 모니터에서는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지지직)…함장님! 제가… 제가 본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과거입니다! 이 유물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우리를… (지지직)…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박 서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마치 전파 간섭을 겪는 듯했다.
“과거라고요? 무슨 헛소리를…” 최강혁이 격분했다.
그 순간, 아틀라스 호의 선체는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찢어지는 듯한 기이한 소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함교 바닥이 불규칙하게 진동했고, 천장의 패널이 뜯겨나가며 스파크를 뿜어냈다.
—(굉음)…우리가… 우리가 도착할 곳은… 인류의 기록에 없는 시간입니다! 저 유물이… 유물이 열리고 있습니다!
박 서준의 절규가 통신 너머에서 마지막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든 통신이 끊겼다.
“박사님! 박 서준 박사!” 이지안이 마이크에 대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정적뿐이었다.
메인 스크린의 깨진 화면 너머로, 원래는 별들로 가득했을 검은 우주가 기이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색색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함장님… 저… 저게 뭡니까…?” 김민아는 공포에 질려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지안의 시선은 스크린 너머의 혼돈을 뚫고, 아틀라스 호의 잔해를 삼키려는 듯 거대하게 열리고 있는 그 거대한 빛의 틈새에 고정되었다. 그 틈새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과거가, 어떤 인류의 잊힌 시간이, 혹은… 인류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태초의 혼돈이 그들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을까.
“전원 비상 탈출 준비! 하지만… 의미 없을 것이다.”
이지안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선 전체를 뒤흔드는 격렬한 진동 속에서, 그의 눈빛은 맹렬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거대한 시간의 격류가 아틀라스 호를, 그리고 그 안에 타고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순간, 이지안의 뇌리에 섬광처럼 하나의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우리가 시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이 유물이 우리를 ‘그때’로 소환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그때’는 과연 언제이며, 왜 우리를 부르는 것일까.
아틀라스 호는 검은 심연 속으로, 시간의 균열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들의 존재는 이제 우주의 지도를 벗어나, 인류의 역사가 감히 기록하지 못한 미지의 시대로 편입되는 중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