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철저한 어둠 속, 진우의 시야 한쪽에는 희미하게 HUD가 떠 있었다. 눅눅한 회색 글씨들이 나열된 상태창은 체력 27%, 스태미나 15%, 갈증 48%, 허기 61%라는 잔혹한 현실을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녹 냄새가 섞인 공기가 스며들었다.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강철 협곡’이라 불리던 거대한 제철소 단지였다. 지금은 그저 뼈대만 남은 거대한 고철 더미들이 흉물스럽게 솟아 있고, 그 사이를 비틀린 생명체들과 그림자 같은 사냥꾼들이 배회하는 죽음의 미궁일 뿐이었다.

“젠장, 여기서 빈손으로 나갈 수는 없어.”

진우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방독면 필터를 거쳐 둔탁하게 울렸다. 어깨에 짊어진 녹슨 백팩은 이미 무겁게 축 처져 있었지만, 정작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고성능 전력 코어’는 아직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겨우 수리한 그의 유일한 탈것, 녹슨 바이크 ‘재칼’을 구동시키려면 최소한 S급 코어가 필요했다. 이곳 강철 협곡의 심부에 희귀한 전력 코어가 잠들어 있다는 정보는 이미 파편처럼 흩어진 ‘생존자들의 속삭임’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의 손에 쥔 것은 끝이 닳아버린 톱날 칼이었다. 강철 파편과 폐기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칼날은 날이 무뎌진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앙상한 야수들의 뼈라도 가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왼손으로는 스캐너를 쥐고 있었다. 스캐너는 주기적으로 ‘삐빅, 삐빅’하는 경고음을 내며 특정 자원의 위치를 알렸다. 다만, 그 소리는 진우의 심장을 더욱 조여 오는 청각적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진우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잿빛 폐허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과 금속 파편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그림자처럼 가벼웠다.

[스킬: 은신 (Lv.3) 지속 중]
[주변 위협 감지: 낮음]

HUD에 떠오른 메시지는 잠시 안도감을 주었지만, 이내 진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 세계에서 ‘낮음’이란 곧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음’과 동의어였다.

그가 들어선 곳은 거대한 용광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폐허였다. 천장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없었고, 거대한 강철 골조가 기형적으로 꼬인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닥에는 녹슨 철근과 붉은 흙이 뒤섞여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내장을 연상시켰다. 어디선가 ‘철컥, 즈즈즉’하는 기계음과 함께 짐승의 낮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숨을 죽인 채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녹슨 거대 기계들 사이, 짙은 그림자 속에 거대한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파지직거리는 고철 사냥꾼’이었다.
게임 내 도감에서 가장 먼저 습득해야 할 정보로 올라와 있던 악명 높은 괴물. 거대한 늑대와 흡사한 몸뚱이에 온통 녹슨 철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철판 사이로는 전류가 불안정하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녀석의 눈은 붉은색으로 빛났고, 날카로운 발톱은 바닥의 콘크리트를 쉽게 긁어낼 만큼 강해 보였다. 등줄기에는 폐기된 발전기의 부품이 기형적으로 융합되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녀석의 ‘파지직거리는’ 소리의 근원인 듯했다.

녀석은 죽은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기계 부품 앞에서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부패한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진우는 코를 찡그렸다. 그 냄새는 녀석의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S급 코어… 저놈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겠군.”

스캐너가 미약하게 진동했다. ‘삐비빅…’ 스캐너의 반응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고철 사냥꾼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괴물은 이곳의 ‘알파’ 개체임이 분명했다.

진우는 다시 은신 스킬을 활성화했다.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더욱 깊이 숨겼다. 녀석의 시야는 정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파지직거리는 몸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류는 주변의 진동에 극도로 민감할 터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는 폐기물 더미를 밟지 않도록, 철골에 몸이 닿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며 움직였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10미터, 7미터, 5미터…
진우의 눈에 고철 사냥꾼이 뜯어먹던 기계 부품 바로 옆, 작은 틈새에 박혀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색 광채. 분명 S급 전력 코어였다. 저 빛은 이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드디어 찾았다. 하지만 어떻게 저 괴물을 지나쳐 저 코어를 손에 넣을까?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저런 거대한 고철 덩어리와 톱날 칼 하나로 맞서는 건 자살 행위였다.

진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폐기된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미 망가져 멈춰버린 벨트였지만, 구조 자체는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벨트의 끝은 고철 사냥꾼의 뒤쪽, 코어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저 위로 올라가야겠군.”

그는 조심스럽게 컨베이어 벨트 위로 기어올랐다. 녹슨 철제 구조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고철 사냥꾼은 눈치채지 못했다. 녀석은 여전히 먹이를 뜯어먹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기어가는 진우의 시야에 코어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였다. 바로 그때였다.

[경고: 주변 위협 감지! 극도로 높음!]

HUD의 경고등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동시에, 고철 사냥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폐허를 뒤흔들었다.

“크르르르릉!”

녀석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진우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카로운 붉은 눈을 번뜩였다. 먹이를 뜯어먹던 것을 멈추고 온몸의 철판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등줄기의 발전기가 더욱 격렬하게 파지직거렸다.

젠장. 들켰다.

진우는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을 날렸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려 코어 앞으로 착지했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코어를 움켜쥐었다.

[아이템 획득: 고성능 전력 코어 (등급: S)]

메시지가 뜨는 동시에, 고철 사냥꾼이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녀석의 발톱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어대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이런!”

진우는 코어를 움켜쥔 채 몸을 옆으로 굴렸다. 사냥꾼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를 덮쳤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쩍 하고 갈라졌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팔 스치고 지나갔다.

[데미지 입음: 체력 -5!]

스치기만 했는데도 체력이 줄어들었다. 저 발톱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치명상일 터였다.
고철 사냥꾼은 놓쳤다는 듯 다시 한번 울부짖으며 몸을 돌렸다. 녀석의 붉은 눈은 오직 진우만을 노리고 있었다.

“여기서 끝낼 순 없어!”

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톱날 칼을 움켜쥐었다. 저 거대한 몸뚱이를 상대로 톱날 칼은 비웃음거리일 뿐이었지만, 이대로 도망치다간 분명 등에 발톱이 박힐 터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철 사냥꾼의 옆구리에 튀어나온, 전선 다발이 연결된 폐쇄된 발전기였다. 녀석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바로 저 발전기 부분일 터. 그러나 그곳은 두꺼운 철판으로 보호되어 있었다.

고철 사냥꾼이 다시 한번 돌진해왔다. 이번에는 머리를 낮추고 거대한 뿔처럼 튀어나온 철 조각을 진우에게 향했다. 진우는 피할 곳이 없었다. 등 뒤는 무너진 벽이었다.

[스킬: 회피 (Lv.2) 발동!]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아래로 파고들었다. 고철 사냥꾼의 뿔이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끔찍한 바람과 함께 녀석의 몸통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진우는 허리춤에 매달린 ‘폐기물 파편탄’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몸통에 바짝 붙은 채, 그는 힘껏 파편탄을 발전기 부분에 던졌다.

“터져라, 이 망할 고철 덩어리!”

파편탄은 정확히 발전기 보호 철판의 틈새에 박혔다.

[폐기물 파편탄 폭발!]
[고철 사냥꾼에게 150의 데미지!]
[추가 데미지: 취약 부위 타격! 감전 상태 이상!]

‘콰과광!’

작은 파편탄이었지만, 녀석의 몸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검은 연기와 함께 고철 사냥꾼의 몸통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크게 비틀었다.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지더니, 이내 녀석의 온몸이 전기 충격을 받은 듯 격렬하게 경련했다. 붉은 눈의 불빛이 희미해졌다.

이때다.

진우는 망설이지 않고 톱날 칼을 휘둘렀다. 녀석의 목덜미, 철판과 철판 사이의 틈새로 칼날을 박아 넣었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튕겨나갔지만, 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온몸의 무게를 실어 칼날을 내리쳤다.

‘쉬이이익, 쩌저적!’

이번에는 톱날이 깊숙이 박혔다. 피와 기름이 섞인 끈적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고철 사냥꾼은 마지막 발악처럼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철 사냥꾼 (Lv.25) 처치!]
[경험치 1500 획득!]
[숙련도: 은신 +3, 회피 +2, 한손검 +5]
[아이템 획득: 고철 사냥꾼의 발톱 (등급: B), 파지직거리는 발전기 부품 (등급: A)]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체력은 20%까지 떨어져 있었다. 스태미나는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S급 코어가 쥐어져 있었고, 이제 그의 바이크 ‘재칼’은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살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죽음 같은 고요가 폐허를 감쌌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둠 속 저편에서,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진우를 향해 일제히 번뜩였다. 그들의 눈은 마치 죽은 고철 사냥꾼의 눈과 똑같이 붉었다. 고철 사냥꾼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주변의 다른 사냥꾼들을 불러모은 것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진우의 눈앞에는 이제 최소한 5마리가 넘는 ‘파지직거리는 고철 사냥꾼’들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차례로 이어지며 폐허를 뒤흔들었다. 이미 체력도 스태미나도 바닥난 그에게, 이제 더 이상의 도망칠 곳도, 싸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끝인가…”

진우는 톱날 칼을 다시 움켜쥐었다. 손에는 S급 코어의 차가운 감촉이 선명했다.

최후의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