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새벽의 잿빛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훈은 녹슨 철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따라 폐허가 된 편의점 안으로 발을 디뎠다. 끽, 끽. 닳아빠진 운동화 밑창이 깨진 유리 조각 위를 스칠 때마다 섬뜩한 마찰음이 났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갇혀 있던 먼지 냄새,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남은 피비린내가 섞여 코를 찔렀다.

선반들은 대부분 엎어져 있거나 텅 비어 있었다. 상품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썩어가거나, 이미 누군가의 손에 약탈당한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곰팡이가 슬거나, 내용물이 부패해 용기가 부풀어 오른 것들뿐이었다. 지훈은 목에 걸린 천 마스크를 한번 더 고쳐 썼다. 이 빌어먹을 마스크는 먼지를 막아줄 뿐, 희망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아니, 희망 따위는 진작에 증발해버린 지 오래였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그는 익숙하게 매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빵 조각이나 썩은 과일 껍질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상하지 않은 통조림이나, 밀봉된 생수병이었다. 어쩌다 발견되는 비닐 포장된 과자 부스러기라도 감지덕지였다.

카운터는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지폐 더미는 찢어지고 흩어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모니터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한때 이 작은 공간을 지키던 이들의 핏자국이 콘크리트 바닥에 말라붙어 검붉은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지훈은 그 잔해들을 무심하게 헤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랍을 뒤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그의 손에 들린 쇠 파이프는 거칠게 감은 천 덕분에 그나마 미끄러지지 않았다. 묵직한 무게감이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이것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자 방패였다. 이 잿빛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제 손에 쥐어진 것만이 전부였다.

냉장 코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가 끊긴 듯했다. 문이 활짝 열린 채 악취를 풍겼고, 썩은 음식물과 검은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바깥은 고요했다.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낮고 끈적한 신음소리. 그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괜찮아, 지훈. 아무것도 아닐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매장의 창고 쪽으로 향했다. 창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쪽은 더 어둡고 답답했다. 손전등을 꺼내 비추자, 먼지 구덩이 사이로 희미하게 쌓여있는 박스들이 보였다. 희망을 가졌다가는 실망만 커질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발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낡은 박스들을 헤치며 뒤적거렸다. 대부분은 텅 비어있거나, 이제는 알아볼 수도 없는 썩은 잔해들뿐이었다.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 불쾌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팔을 휘저었다. 그때, 가장 안쪽 구석에서 먼지에 뒤덮인 채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육포….’

상자 겉면에 바래긴 했지만 선명하게 찍힌 한글 세 글자. 육포. 그것도 제법 여러 개가 들어갈 법한 크기의 상자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지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먼지 낀 투명 비닐 너머로, 낱개 포장된 육포들이 보였다. 곰팡이 하나 없이 완벽하게 밀봉된 상태였다. 유통기한도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을 터였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이런 행운이 남아있을 줄이야.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는 허둥지둥 육포 서너 개를 집어 가방에 넣었다. 이 정도면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며칠의 생명 연장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갑작스러운 둔탁한 소리에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소리는 매장 안에서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벽을 긁는 듯한, 불규칙적이고 음산한 소리였다. 지훈은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쇠 파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창고 문틈으로 매장을 살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형체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거친 숨소리, 축축하고 끈적한 소리가 섞여 들렸다. 놈이었다. 변이체. 어쩌면 한두 마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지훈의 등줄기를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놈은 카운터 잔해를 느릿하게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놈의 등에는 피가 굳어붙은 찢어진 작업복이 걸쳐져 있었다. 이미 피부는 검붉게 변색되었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입에서는 썩어가는 살점의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 그 놈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듯, 고개를 느릿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지훈은 숨을 죽였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한숨만 더 내쉬면, 놈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놈은 청각에 매우 민감했다.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여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곳은 폐쇄된 공간이었다. 도망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젠장, 어떻게 들어온 거지?’

분명 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마 건물 뒤쪽의 무너진 벽을 통해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애초에 이곳에 갇혀 있었을지도.

변이체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쿵. 묵직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이제 놈은 지훈이 있는 창고 쪽을 향해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둔중한 발걸음이 마치 지훈의 심장을 짓밟는 듯했다.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었다.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지훈은 결단을 내렸다.

“크아악!”

쇠 파이프를 쥔 채 창고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놈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반응하여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동자가 지훈을 향했다. 그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오직 배고픔, 그리고 파괴적인 본능만이 번뜩이는 듯했다.

지훈은 전력으로 달려가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하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존재에게 통증 따위는 없었다. 놈은 흐느적거리며 다시 지훈에게 몸을 돌렸다. 검게 변색된 손톱이 지훈의 어깨를 스치려 했다.

짜악!

지훈은 재빨리 몸을 비틀어 피했다. 동시에 쇠 파이프로 놈의 다리를 내리찍었다. 우득!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놈은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시 쇠 파이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온 힘을 실어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직!

이번에는 확실한 소리가 났다. 놈의 머리가 보기 흉하게 찌그러지며, 검은 피가 튀어 올랐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고꾸라져 바닥에 축 늘어졌다.

지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쇠 파이프를 내렸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어댔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는 시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댔다.

‘빌어먹을….’

아직도 손이 떨렸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육포가 든 가방을 다시 멨다. 이곳에 더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빨리 이 지옥 같은 공간을 벗어나야 했다.

그가 편의점 문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종이 조각 하나가 발에 걸렸다. 무심코 주워들었다. 찢어지고 구겨졌지만,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살아남아줘. 동쪽으로.]

그리고 그 아래에는, 조잡하게 그려진 동그라미 안에 작은 불꽃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쪽? 불꽃? 누군가의 장난일까? 아니면… 희망? 그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방금 전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종이 조각을 꽉 쥐었다. 바깥은 여전히 잿빛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어느새 멀리 동쪽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곳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지훈은 굳게 다문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잿빛 도시의 첫걸음을 동쪽으로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