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현우는 축 늘어진 몸을 간신히 질질 끌어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열두 층 높이의 이 아파트는 도시의 숨 막히는 소음 속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새집 증후군 탓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너무 지쳐서인지, 공기조차 무겁게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벽에 기대어 늘어진 채, 그는 눈을 감았다. 며칠 전 이사한 이래로 제대로 잠든 기억이 없었다. 업무와 이사가 겹쳐 그야말로 몸이 부서질 지경이었다.

“젠장, 진짜 살인적인 스케줄이네.”

낮게 중얼거렸다. 어깨에 멘 노트북 가방을 거실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는,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불 꺼진 실내는 도시의 불빛을 희미하게 반사하며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굳이 불을 켤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일찌감치 잠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겨우 정신이 드는 듯했다. 물방울이 맺힌 생수병을 탁자 위에 올려두려는데, 손끝에 잡힌 차가운 유리병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쨍그랑!

밤의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온 소리에 현우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 깜짝이야.”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내려다봤다. 왠지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매일같이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겹쳤으니, 신경이 곤두설 만도 했다. 현우는 한숨을 쉬며 깨진 유리병 조각들을 주워 담았다. 손전등을 켜고 구석구석을 살피던 그의 눈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조각 하나가 들어왔다. 유리병 조각은 아니었다. 투명한 빛을 띠고 있었지만, 딱딱한 유리와는 다른, 묘하게 흐느적거리는 느낌.

“이게 뭐지?”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려 하자, 그 작은 조각은 마치 물거품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현우는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였나 싶었다. 아니면 잠시 졸았을 수도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통에 유리 조각들을 버렸다.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몸을 던지자마자, 현우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잤을까.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끼이익.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소리였다. 현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척였다. 이 아파트, 방음이 엉망인가? 옆집에서 가구를 옮기나?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귀에 거슬리는 소음은 점점 침실 문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현우는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옆집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까웠다. 마치 자기 방 문을 긁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겨우 잠에서 깨어난 멍한 정신으로,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헤드맡에 놓인 스마트폰을 더듬어 잡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 27분. 한밤중이었다.

끼이익, 끼이익.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강렬해졌다. 그 소리가 문을 긁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벽을 긁는 소리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침실 벽장 문을 긁는 소리였다.

현우는 숨을 죽였다. 이사 온 후 벽장 문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빈 벽장이었고, 딱히 열어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 안에서 무언가가 긁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목소리가 쥐어짜듯 나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불쾌한 긁는 소리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현우는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켰다. 흔들리는 손으로 침실을 비췄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방 안은 빛 한 줄기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그 빛은, 벽장 문에 닿았다.

끼이이이이익!

그 순간, 긁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졌다. 마치 무언가가 벽장 문 안에서 뛰쳐나오려는 것처럼.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손전등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끼익… 끼익…

그리고는, 갑자기 소리가 뚝 끊겼다.

정적. 침묵이 방 안을 지배했다. 방금 전까지 요란하게 울리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현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착각이었나? 악몽이었나?

현우는 벽장 문을 응시했다. 견고하게 닫혀 있는 벽장 문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 보였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스럽게 벽장 문에 다가갔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벽장 문고리는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때였다.

쿵!

벽장 문이 안쪽에서 강하게 울렸다.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스마트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손전등 불빛은 천장을 향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망치로 문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벽장 안에서 터져 나왔다. 현우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눈앞의 벽장 문은 이제 단순히 닫힌 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그를 향해 격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뭐, 뭐야… 대체…!”

겨우 기어 나오는 목소리는 공포로 갈라져 있었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들었다.

쿵! 쿵! 쿵!

문은 계속해서 두드려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기분 나쁜 소음이 섞여 들었다. 마치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문틈을 긁어대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현우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흐트러진 불빛 속에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친구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 반. 지수가 받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절박함이 그를 움직였다.

“여보세요…? 현우야,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지수의 잠기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는 안도감과 동시에 더 큰 공포에 휩싸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수야, 나… 나 지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 집에서…”

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가늘었다.

“이상한 일? 뭔데? 너 술 마셨냐? 아님 악몽이라도 꿨어?”

지수는 걱정스러운 듯, 그러나 여전히 잠투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쿵! 쿵! 쿵!

그때였다. 현우의 등 뒤에서 벽장 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울렸다. 이번에는 문이 살짝 벌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끼이이익- 하는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어둠보다 더 짙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 안 돼! 지수야! 나 좀 살려줘…!”

현우는 거의 절규하듯 외쳤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찼고, 그는 엉금엉금 기어가듯 침대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느렸다.

“현우야? 김현우! 무슨 소리야? 너 괜찮아? 거기 대체 무슨 일인데?!”

지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게 울렸다.

그 순간, 벽장 문이 활짝 열렸다. 굉음과 함께.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어둠만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나 완벽한 어둠이라서, 마치 그 어둠 자체가 형체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싸늘한 한기가 현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다 못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벽장 안의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스르륵, 스르륵, 그의 방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현우.’

그 소리는 그의 귓가에 직접 속삭이는 듯 생생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한 목소리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놓쳤다. 폰은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깨졌다. 지수의 다급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직 벽장 안에서 흘러나온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속삭임만이 그의 온 정신을 지배했다.

그는 뒷걸음질 치다 침대 프레임에 걸려 넘어졌다. 쿵! 하고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혔지만, 고통조차 느낄 수 없었다.

어둠은 그의 발목을 붙잡는 듯한 기분으로 방 안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수히 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이 공간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존재들의 손님인 것처럼, 혹은… 침입자인 것처럼.

‘이제… 함께 놀 시간이야.’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또렷하게, 마치 혀가 없는 입술이 그의 귓가에 대고 직접 말하는 것처럼.

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였고, 의지였고, 그를 향한 어떤… 갈망이었다.

그때, 침대 위 이불이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불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그리고 곧, 그의 몸을 감싸 안듯이 이불이 그를 덮쳤다. 이불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마치 그 안에 수십 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손들이 숨어 그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현우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손을 뻗었지만, 이불은 그를 짓눌렀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은 이제 웃음소리로 변해 있었다.

낄낄, 낄낄낄…

그 웃음소리는 현우의 귓가에서 울리며 그의 정신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가 본 것은, 자신의 눈동자에 비친 벽장 문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현우의 몸을 감쌌고, 이내 그를 집어삼키는 듯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아파트는 다시 고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 방의 주인은 더 이상 김현우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텅 빈 밤의 서곡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스마트폰에서는 지수가 남긴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마지막으로 “현우야! 김현우!”라고 외치던 음성 메시지 하나가 발견될 뿐이었다.
그리고 벽장 문은, 다시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그 안의 어떤 존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