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어둠 속의 한 줄기 빛

어둠은 익숙했다. 수백 년간 이 땅을 짓눌러 온 신성 제국의 그림자처럼,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 형태를 떠올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낡은 횃불이 동굴 벽면을 간신히 밝히고 있는 와중에도, 강진우의 시선은 저마다의 임무에 몰두한 채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손놀림은 바빴고, 얼굴에는 피로와 희망, 그리고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겉모습은 평범한 농부, 사냥꾼, 떠돌이 장인들. 그러나 이들은 제국이 ‘도적떼’라 부르는, 자유를 갈망하는 반란군이었다.

진우가 이곳, 이름 없는 산골짜기 동굴에 떨어진 지 벌써 두 달. 처음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시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겪었던 끔찍한 멀미와, 낯선 시대로 던져진 이질감이 그를 덮쳤다. 그의 스마트폰은 고철 덩어리가 되었고, 익숙했던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이곳에선 한낱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깨달았다. 이곳의 ‘부패한 제국’과 ‘핍박받는 민중’이라는 고전적인 서사는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역사서와 소설 속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이 반란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진우 씨, 불꽃이 너무 세군. 이러다 터져버리는 건 아니겠지?”

낡은 천 조각에 무언가를 꼼꼼히 싸매던 한 사내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진우는 픽 웃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것은 그가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가르쳐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명 ‘연막탄’이었다. 특정 비율의 마른 풀잎과 젖은 나뭇잎, 그리고 독특한 기름 성분을 섞어 넣은 후 단단히 압축한 덩어리.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시야를 가릴 만큼의 짙은 연기를 뿜어내게 고안된 임시방편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연기에 진우는 과학을 입혔을 뿐이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정확한 비율로 섞었으니 터질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제국 놈들 눈에 매콤한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사내가 다시 한번 웃었다. 그들의 대화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미래에서 온 이방인, 강진우는 이곳에서 생존을 위해, 그리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이들 ‘들불’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제국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병사들은 사소한 트집에도 마을 사람들을 끌고 가 채찍질했고, 세금은 가뭄과 흉년에도 아랑곳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굶주림과 분노가 이들을 한데 모았다.

그때였다. 동굴 입구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시간 없어.”

서연이었다. 이 반란군의 실질적인 지도자. 스물 남짓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그 어떤 노련한 장수보다도 강렬하고 단단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팔뚝은 밭을 일구던 농부의 손이었으나, 이제는 검을 쥐는 전사의 손이 되었다. 진우는 그녀의 등장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횃불 빛을 받아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서연 님. 연막탄은 예정대로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국군 순찰이 최근 부쩍 잦아졌습니다. 아마 어제 저희가 습격했던 주둔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정보통인 작은 체구의 청년, ‘지혁’이 빠르게 보고했다. 그의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어제는 작은 보급 마차를 습격해 겨우 밀가루 몇 포대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마저도 제국 병사들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서연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역시 그랬군. 놈들이 쉽게 넘어갈 리가 없지.” 그녀의 시선이 진우에게 닿았다. “진우 씨, 당신의 작전… 정말 통할까? 지금은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야.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렸다고.”

진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제국군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이번 보급이 중요하단 뜻입니다. 그들의 방심을 유도해야 해요. 저희가 노리는 건 단순한 보급품이 아니라, 저들의 허를 찌르는 것이니까요.”

며칠 전, 서연은 절박한 계획을 들고 왔다.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곡물 수송대를 습격하는 것. 그들은 굶주리고 있었고, 겨울은 코앞이었다. 하지만 그 수송대는 제국에서도 가장 엄중한 경비가 붙는 핵심 보급로였다. 무모한 정면승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때 진우가 나섰다.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노려야 합니다. 아니, 그들의 시선을 아예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해요. 제국은 예상 밖의 변수에 취약합니다.”

그는 구겨진 천 조각에 대충 그린 지도를 펼쳤다. “여기가 제국군 본대가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강을 따라 나 있는 좁은 샛길이 보이십니까? 이곳은 보통 군수품이 아닌, 잡다한 물품이나 인력을 수송할 때 가끔 이용되는 길입니다. 제국은 이곳에 병력을 많이 두지 않을 겁니다.”

서연과 다른 간부들의 시선이 지도에 꽂혔다.

“우리는 먼저 이 샛길에 작은 습격을 감행할 겁니다. 중요한 보급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거죠. 제가 알려드린 방식으로 만든 연막탄과, 매복조 몇몇을 이용하면 충분히 혼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샛길에서 대규모 습격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진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그럼 본대는?” 지혁이 물었다.
“그사이, 우리는 본대를 치는 겁니다. 샛길에 병력이 묶이거나 그리로 재배치되는 혼란을 틈타서요. 제국군 본대의 경비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서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진우의 말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지만, 동시에 미지의 불안감도 느꼈다. 그가 하는 말은 이 시대의 전술과는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었다. 낯선 이방인이 가진, 알 수 없는 지식과 담대함. 어쩌면 그게 자신들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작전의 D-day가 밝았다.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서연의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제1조, 유인조. 지혁을 선두로. 연막탄을 터뜨리는 즉시 최대한의 소란을 피워라. 절대 정면으로 싸우지 마라. 그저 놈들의 시선을 끌고 버텨라.”
“알겠습니다!” 지혁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제2조, 주력조. 내가 직접 지휘한다. 유인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즉시, 우리는 본대를 향해 움직인다. 기습이다. 최대한 빠르게 제압하고, 식량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불필요한 교전은 피해라.”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진우에게 닿았다. “진우 씨는 후방에서 지혁을 지원하며 상황을 통제해 주게. 연막탄의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역할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그는 이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지략이 되어야 했다.

밤은 깊어지고, 달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감췄다. 동굴을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했다. 고작 밀가루 몇 포대를 얻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곧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이자,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들불의 서곡이었다.

***

강을 따라 난 좁은 샛길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풀벌레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지혁이 이끄는 유인조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숨죽여 기다렸다. 진우는 그들의 뒤편, 조금 더 높은 언덕 위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연막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휴대용 발화기가 들려 있었다. 작은 돌멩이들을 마찰시켜 불꽃을 일으키는 원시적인 도구였지만, 빠르고 정확한 점화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희미한 횃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다…!” 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국군의 순찰대였다. 열 명 남짓한 소규모 병력이었지만, 그들의 갑옷은 횃불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샛길은 분명 중요한 곳이 아니었지만, 최근의 반란군 활동으로 인해 경비를 강화한 모양이었다.

진우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대였다면 이 모든 게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목숨이 걸린 싸움.

“지금이다!”

지혁의 신호와 동시에, 진우는 재빨리 발화기로 연막탄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막탄은 몇 초 만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농도로 짙어졌다. 진우가 알려준 방식대로, 몇 개의 연막탄이 차례로 불을 뿜으며 샛길 전체를 집어삼켰다.

“공격이다! 반란군이다!”

지혁의 외침과 함께 유인조는 몽둥이와 돌멩이를 던지며 혼란을 야기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소란을 피우는 것. 제국군 병사들은 순식간에 시야를 빼앗겼다. 눈앞이 보이지 않자 병사들은 당황하며 고함을 질렀다.

“뭐냐! 이게 무슨… 으악!”
“적이다! 사방에 적이 있다!”

연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병사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폐를 짓눌렀다. 짙은 연기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흡사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유인조는 연기 속을 이리저리 오가며 돌멩이를 던지고, 풀을 밟아 소리를 내며 병사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좋아… 잘 되고 있어.”

진우는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연막이, 이 소란이, 서연이 이끄는 주력조에게 귀중한 시간을 벌어줄 것이었다. 제국군의 무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통신은 오직 사람의 입이나 깃발로 이루어졌다. 샛길에서 발생한 대규모 습격(처럼 보이는) 소식은 본부에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본대는 방비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다.

연기가 자욱한 샛길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고함 소리와, 유인조의 기민한 움직임. 진우의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희망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과연, 이 작은 들불이 거대한 제국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을까.
그는 조용히 언덕을 내려와 연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그 자신도 이 들불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