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삭풍에 갇힌 진실

핏빛 노을이 진 서산 너머로 마지막 햇살이 뼈아프게 스러지고 있었다. 청풍문(清風門)의 웅장한 기와지붕 위로 검푸른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평소 같으면 검결을 익히는 문도들의 기합 소리로 가득했을 본산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공기 중에는 스산한 찬 기운과 함께 묵직한 절망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 나절 전, 강호 무림에서 덕망 높기로 이름난 청풍문의 문주, 이강(李剛)이 자신의 서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서재가 안팎으로 완벽하게 걸어 잠긴 밀실이었다는 사실이다.

강호에는 그림자 진실을 꿰뚫는 자, ‘설무진(雪無塵)’이라는 이름이 떠돌았다. 그는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종종 출현하여, 보통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하곤 했다. 그의 행적은 눈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고, 누구도 그의 본거지를 알지 못했다. 오직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 그를 수소문할 뿐이었다.

청풍문은 한때 문주 이강의 지혜와 무력으로 강호에 우뚝 선 명문이었다. 그런 청풍문이 문주의 죽음 앞에서 혼란에 빠지자, 문주를 따르던 장로들은 결국 설무진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의했다. 급히 전서구를 띄우고, 전령을 파견한 지 꼬박 하루 만에, 그들은 그림자처럼 나타난 설무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설무진은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아하고 맑은 푸른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지만, 거창한 무인의 풍모는 아니었다. 마른 체격에 길게 뻗은 손가락, 그리고 안개처럼 흐릿한 인상 속에 빛나는 두 눈동자만이 그의 비범함을 짐작케 했다. 그의 눈은 마치 세상의 모든 혼란을 꿰뚫어보는 듯, 깊고 차분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청풍문 대전 앞에 섰다가, 곧바로 시신이 있는 서재로 향했다. 그를 따르는 이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고 무거웠다.

문주의 서재는 청풍문 본당의 가장 깊숙한 곳,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고요한 공간이었다. 높은 누각의 층계참을 지나 마주한 그곳은 이미 살기를 뿜어내는 듯 서늘했다. 육십 줄에 들어선 장로 ‘백무건’이 입을 열었다.

“설 진사(進士)… 아니, 설 대사(大師). 소인, 백무건입니다. 문주님의 시신은 아직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다만,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무건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책감이 배어 있었다. 설무진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문짝 너머, 어둠 속에 잠긴 서재 안으로 향했다.

문은 묵직한 오동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내부에서 걸어 잠근 빗장은 쇠로 단단히 보강되어 있었다. 백무건이 이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서자, 서재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목재 책상 위로, 문주 이강이 고개를 숙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맑고 예리한 검이 박혀 있었는데, 칼자루만이 밖으로 나와 있을 뿐, 칼날은 완전히 몸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피는 이미 굳어 검붉은 흔적을 남겼고,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신은 참혹했다.

설무진은 방의 입구에 선 채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시신에 고정된 듯했으나, 실제로는 서재의 모든 구석을 훑는 듯했다. 흙먼지 하나, 책 한 권의 기울기, 탁자 위의 찻잔 위치,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의 작은 흠집까지.

“발견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설무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으나, 서재의 냉기를 가르는 듯 명료했다.

백무건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예. 매일 아침 문주께 차를 올리는 문도 운비(雲飛)가 발견했습니다. 어제 저녁 문주께서 서재로 드신 후로 아무도 뵙지 못했고, 오늘 아침 운비가 차를 들고 왔으나 문이 안에서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주를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자, 급히 제게 알렸고… 제가 다른 장로들과 함께 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 문을 부수기 전에는, 창문 등 다른 통로를 확인하셨습니까?” 설무진이 물었다.

“당연합니다! 이 누각의 창들은 모두 쇠창살로 굳게 막혀 있고, 창밖은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문주께서는 늘 서재에 드시면 안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시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범인이 문주를 해한 후 사라졌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재는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백무건의 목소리에 답답함과 분노가 뒤섞였다.

설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서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소리는 먼지 한 톨 깨우지 않을 듯 가벼웠다. 그는 먼저 문주 이강의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검상 외에는 그 어떤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주변의 물건들은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문주가 마지막까지 읽던 듯한 고서가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맑은 차가 담긴 찻잔이 놓여 있었다.

“문주님의 검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설무진이 찻잔을 보며 물었다.

“문주께서는 늘 호신용으로 옆에 검을 두셨습니다만… 시신 발견 당시에는 검집이 책상 옆에 기대어 있었을 뿐, 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무건이 답했다.

설무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삐걱거리는 마루, 천장의 틈, 그리고 벽의 미세한 균열까지 놓치지 않았다. 특히 그의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책상 뒤쪽 벽이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산수화가 걸려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이 그림은…” 설무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주께서 생전에 아끼시던 그림입니다. 강호의 명인, 운묵(雲墨) 대가의 작품으로…” 백무건이 설명하려 했지만, 설무진은 이미 그림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림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쓸어보았다.

“문주님의 검은 분명 이 안에 있을 겁니다.” 설무진의 말이 서재 안에 메아리쳤다.

백무건을 비롯한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이지 않는데…”

설무진은 시신에 박힌 검을 가리켰다. “문주님의 시신에 박힌 검은… 이 그림 속에 감춰진 칼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그는 시선을 돌려 다시 부서진 문을 바라보았다. “범인은 이 문으로 당당히 걸어 나갔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모두가 경악했다. 완벽한 밀실에서 범인이 문을 열고 나갔다니,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장로들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설무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혜는 폭풍우처럼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밀실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완벽해 보였을 뿐이죠.” 설무진은 그림에 가려진 벽의 미세한 흔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실은 항상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는 법이니.”

그의 말은 거대한 파문처럼 서재를 뒤흔들었다. 모두의 눈은 설무진이 가리킨 벽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범인이 문을 열고 나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의문은, 이제부터 그들이 풀어야 할 거대한 미스터리의 서막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