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오래된 먼지 속에서

김도윤의 하루는 늘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의 북적거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낡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그는 익숙한 인파에 휩쓸려 역 밖으로 밀려나왔다. 도심의 아침 공기는 희뿌연 먼지와 공장 매연이 뒤섞인 불쾌한 내음을 풍겼지만, 도윤은 이미 오래전에 그 냄새에 무감각해졌다. 스물아홉.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도윤에게는 그저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고단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배달 앱을 켜고 새로운 콜을 기다리며, 오래된 상가 건물 옥탑방으로 가는 길을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밤 늦게까지 이어진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방은 어둡고 눅눅했다. 간밤에 덮었던 얇은 이불은 여전히 침대 위에 구겨져 있었고, 코를 찌르는 라면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빌어먹을… 오늘은 또 뭘 해야 하나.”

도윤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반면 자신은, 그저 주어진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급급했다. 특별한 꿈도, 원대한 포부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평범함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때, 그의 낡은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는 외삼촌, 박상필. 고물상을 운영하는 외삼촌은 가끔 도윤에게 일당을 얹어주며 험한 일을 시키곤 했다.

“도윤아! 아직 자냐? 일거리 생겼다!”
수화기 너머 외삼촌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쩌렁쩌렁했다.
“아니요, 삼촌. 방금 일어났어요.”
“구로동에 철거 직전 아파트 정리할 게 좀 있는데, 사람 손이 부족하다. 너 와서 좀 도와라. 일당 후하게 쳐줄게.”
“구로동이요? 너무 먼데…”
“어차피 너 오늘 배달 없을 거 아니냐! 빨리 와. 주소 찍어줄 테니까!”

외삼촌의 말은 거의 명령에 가까웠고, 도윤은 토를 달지 못했다. 어차피 오늘 배달 수익도 불투명했고, 외삼촌의 ‘후한 일당’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낡은 작업복을 대충 걸치고 다시 집을 나섰다.

***

구로동의 낡은 아파트 단지는 흡사 유령 도시와 같았다. 곧 철거될 건물들이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잿빛 하늘 아래 서 있었고, 스산한 바람이 텅 빈 창문들을 휘파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외삼촌은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서 담배를 피우며 도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김도윤!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삼촌, 여긴 완전히 폐허네요.”
“다 철거할 건물들이니까 그렇지. 우리가 맡은 동은 저기, 저 7동 302호다. 집주인 양반이 몸이 불편해서 미처 못 치운 짐들이 좀 있다고 하네.”

외삼촌은 무거운 장갑을 건네주며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는 더욱 참담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에는 정체 모를 낙서들이 가득했고, 층마다 쌓인 먼지는 발자국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302호 현관문은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였고, 내부는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살림살이와 쓰레기가 뒤섞여 있었다.

“음… 대충 비워냈다고 하더니, 이건 뭐 고물상이 따로 없네. 도윤아, 너는 일단 저 안방부터 좀 봐라. 벽장 같은 데 숨겨진 것들이 많다고 들었거든.”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은 그나마 깔끔한 편이었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붙박이장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낡은 이불 더미, 비어 있는 액자, 그리고 먼지 쌓인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거 언제 다 치우지…”

한숨을 쉬며 차곡차곡 물건들을 정리해 나가던 도윤의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다. 붙박이장 깊숙한 곳, 나무판자로 가려진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는 호기심에 나무판자를 들어냈다. 그 안에는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품은 듯한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의 표면은 섬세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지만,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은 상태였다.

도윤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묵직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와 함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상자 안에는 빛바랜 종이 뭉치들과 함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마치 밤하늘을 압축해 놓은 듯, 어둠 속에서도 미묘한 광택을 띠는 돌이었다.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고, 손으로 쓸어보니 매끄러우면서도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또 뭐지?”

그는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외삼촌에게 물어봐도 아마 고물 취급하며 버리라고 할 것이 뻔했다. 이 알 수 없는 문양의 돌에는 왠지 모를 신비함이 깃들어 있었다. 도윤은 돌을 손에 쥐었다. 차갑던 감촉은 이내 체온에 반응하듯 은은하게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희미하게, 마치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쿵.
쿵.

귓가에 닿을 듯 말 듯한, 아주 낮은 울림이었다. 착각인가? 도윤은 눈을 비볐다. 피로가 쌓여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그는 다시 돌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검은 돌멩이처럼 보였다.

‘내가 너무 지쳤나 보다. 이런 폐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게 없지.’

그는 돌을 다시 상자 안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왠지 모를 끈적한 끌림이 있었다. 이 돌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결국 돌을 주머니에 넣었다.

***

일과를 마치고 다시 자신의 옥탑방으로 돌아온 도윤은 녹초가 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널브러지자, 주머니에 넣어둔 돌의 존재가 문득 떠올랐다. 그는 돌을 꺼내 침대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방금 전까지 무덤덤했던 돌은, 어두워진 방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도윤은 돌을 다시 손에 쥐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진동이 좀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아니, 착각일 리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돌은 분명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방 공기와 달리, 돌이 닿은 손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불씨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이거… 진짜 이상하잖아.”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그는 돌에 새겨진 문양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그 순간, 그의 등 뒤 벽면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눈이 부셔 몸을 돌린 도윤의 눈앞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낡은 벽지가 붙어 있는 시멘트 벽에, 돌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빛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은은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가 싶더니, 이내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몰려들었다. 도윤은 숨을 헐떡였다. 공포와 경이로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를 덮쳤다. 눈앞의 현상은 더 이상 피로에 의한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돌을 더 꽉 쥐었다. 그러자 벽면의 문양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방 전체가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찼고, 그의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고대 언어 같은 것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도윤은 혼란스러웠다. 이 돌은 대체 무엇이고, 이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이 낡은 아파트의 먼지 속에서 발견된 검은 돌멩이 하나로 인해 완전히 뒤집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발 딛고 선 현대라는 현실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새로운 밤의 시작이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문은, 이미 그의 손 안에서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