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한밤중이었다. 현우는 자정이 넘도록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기획안의 마지막 문장을 끝내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몸이 축 늘어졌다. 낡은 원룸 오피스텔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현우는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창밖을 바라봤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은 밤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이곳에 산 지 어언 3년째, 이제는 이 빛도 소음도 익숙했다.

탁.

작은 소음이 현우의 귓가를 스쳤다. 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서 들린 소리일까? 잠시 후, 주방 쪽에서 다시 한번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삐걱.’ 마치 마루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젠장, 윗집에서 또 뭐하나.”

현우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 소음이 심한 편이었다.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무시하려 했으나, 묘하게 신경이 거슬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위에는 어제 저녁 먹고 씻지 않은 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 며칠 전 새로 산 소금병이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뭐지? 내가 이렇게 뒀나?”

현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똑바로 세워뒀던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소금병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컵을 씻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갑자기 주방 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팟, 팟, 팟…’

기분 나쁜 불빛이 잠시 이어지다 이내 멈췄다. 현우는 한숨을 쉬었다.

“이놈의 건물은 고칠 때가 된 건가.”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왠지 모르게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창밖은 여전히 도시의 생명력으로 번잡했지만, 그의 방 안은 묘하게 싸늘하고 정적에 잠긴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 기묘한 일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현관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잠금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잠금쇠가 걸린 채로 문이 삐딱하게 반쯤 열려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문을 제대로 안 잠갔나?’ 하고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몇 번이고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분명히 잠그고 잠금쇠까지 걸었는데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어제 분명 책상 위에 두었던 열쇠가 침대 아래에서 발견되거나, 욕실에 두었던 칫솔이 주방 싱크대에 놓여 있는 식이었다. 마치 누가 몰래 들어와 물건을 옮겨 놓는 것 같았다.

“이거 진짜 뭔가 이상한데…”

현우는 중얼거렸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친구에게 연락했다.
「야, 너 혹시 집에 도둑 들었을 때 물건 훔쳐가는 것 말고 다른 이상한 짓도 하냐?」
친구에게서 바로 답이 왔다.
「무슨 헛소리야?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헛것이 보이나 보네.」
친구의 말에 현우는 기운 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놓을 리가 없지. 그가 이사를 온 지 3년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아파트였다. 게다가 오피스텔이라 외부인 침입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날 밤, 현우는 잠이 오지 않았다. 미세한 소음에 잠이 들었다가도 깜짝 놀라 깨기를 반복했다. 새벽 3시쯤이었을까. 거실에서 ‘콰당!’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도둑인가? 드디어 도둑이 든 건가? 그는 숨을 죽인 채 침실 문을 조금 열었다.

거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희미한 달빛과 도시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거실 한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화분이 엎어져 있었다. 흙과 깨진 화분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현우는 천천히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섬뜩한 한기가 발목을 감쌌다. 그는 조심스럽게 화분으로 다가갔다. 어제 분명히 창틀에 올려뒀던 화분이었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떨어진 거지?

그때였다. 뒤에서 ‘쉬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숨 쉬는 소리 같기도, 바람이 새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거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 누구세요?”

현우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묘하게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거실 불을 켰다. 환하게 밝혀진 거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위협은 없었다.

현우는 잠을 포기하고 거실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 날, 현우는 집에서 탈출하다시피 뛰쳐나왔다. 그는 친구에게 어제 밤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친구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결국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너 혹시 집에 너무 혼자 있었던 거 아니냐? 우울증 같은 거 아니야? 병원에 가보던가. 아니면 그냥 이사를 해.”

친구의 조언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이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사하면 이 현상들이 멈출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이 집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자신에게 들러붙은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집으로 돌아온 현우는 다시금 그 기묘한 침묵과 마주했다. 아파트는 그의 모든 기척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는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상한 소리는 더욱 빈번해졌다. 주방에서 접시가 저절로 떨어져 깨지고, 침실에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렸다. ‘…혼자… 외로워…’ 같은 기분 나쁜 소리였다.

그날 밤, 현우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에 닿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때, 욕실 거울이 뿌옇게 흐려졌다. 김이 서린 건가 싶어 손으로 닦으려는데, 거울 속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

거울 속 현우는 눈을 크게 뜨고 이를 드러낸 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분명 그의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었는데, 거울 속 남자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그를 비웃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현우는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가 손을 뻗어 거울을 만지려는 순간, 거울 속 남자는 사라지고 다시 그의 평범한 얼굴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가득했다.

그는 샤워기를 끄고 황급히 욕실을 나왔다.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거실로 뛰어나왔다. 거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실의 모든 물건들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컨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소파 등받이의 천이 마치 숨 쉬는 듯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벽에 걸린 그림 속 풍경은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이… 이건 뭐야…”

현우는 공포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았다. 차가운 벽이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차가운 감각과 동시에, 벽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벽이, 그의 아파트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웅… 웅…’

낮은 울림이 현우의 귀청을 때렸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심장을 뛰게 하는 소리 같았다. 아파트의 벽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벽지가 찢어지고, 그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꿈틀거렸다.

“아아악!”

현우는 소리를 질렀다. 그는 필사적으로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렸다. 잠겨 있었다. 잠금쇠를 풀려고 했지만, 그의 손은 공포에 마비된 듯 떨려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현관문이 스스로 ‘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문을 부수고 나오려는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문틈 사이로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끈적하고 역겨운 냄새가 현우의 코를 찔렀다.

거실의 모든 것이 살아 움직였다. 가구들은 삐걱거리며 제자리에서 조금씩 비틀렸다. 바닥의 마루판은 들썩이며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천장에서는 미세한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으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살려줘…!”

현우는 애원했다. 그는 주저앉아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더 이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아파트가, 이 빌어먹을 공간이, 그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속삭임이 더욱 또렷해졌다.

‘…외롭지… 않아… 이제… 우리와… 함께… 할… 거야…’

그 속삭임은 그의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수십, 수백 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앞에서 거실 테이블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검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형체가 없는, 검고 끈적한 그림자였다. 그것은 서서히 현우에게로 다가왔다.

현우는 저항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의 몸은 이미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 무기력했다. 그림자가 그의 발목을 감쌌다. 차갑고 역겨운 감촉이 피부에 닿자, 현우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림자는 그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몸 전체를 감쌌다.

점점 그의 시야가 어둠에 잠식되어 갔다. 아파트의 소음과 울림이 그의 귀를 가득 채웠다. 마지막 순간, 현우는 자신의 아파트 창밖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도시의 야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불빛마저도 이제는 자신을 향해 서서히 꺼져가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현우의 오피스텔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깨진 화분도, 엉망이 된 가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완벽하게 고요했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 오피스텔에서는 이따금 미세한 ‘삐걱’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리고 가끔씩, 어두워진 창문 안쪽에서, 섬뜩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잠시 동안 번득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그 오피스텔을 비췄지만, 그 안에 숨겨진 어둠은 더욱 깊고 끈적해져 가고 있었다. 다음 세입자를 기다리면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