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서울은 한때 거대한 빌딩 숲이었으나, 이제는 거대한 무덤과 다름없었다. 유리와 콘크리트 잔해가 뼈대만 남은 건물들 사이로 뒹굴고, 곳곳에는 검붉은 혈흔과 부패한 살덩어리가 말라붙어 있었다.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생존은 기적이었고, 그 기적을 이어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탑’이라고 불리는 재건축된 고층 빌딩에 둥지를 틀었다. 탑은 외곽이 두터운 철판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층층이 망루와 조명탑이 설치되어 밤낮없이 경계를 섰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믿는 피난처였다.

오늘 아침, 그 견고한 탑의 심장부에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10층, 자원 관리부장 박 소장의 집무실. 그곳에서 박 소장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시체는 책상에 엎드린 채 차가워져 있었고, 등에는 서류를 고정하는 데 쓰였을 법한 날카로운 금속 막대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문제는 그 집무실이 완벽하게 봉쇄된 밀실이었다는 점이었다.

“강 형사님. 제발,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김 경사는 땀으로 젖은 얼굴로 강진우 형사에게 애원했다. 강진우는 탑의 가장 외곽, 버려진 도서관을 개조한 자신의 거처에서 느긋하게 먼지 쌓인 고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어지럽게 쌓인 책더미와 퀴퀴한 종이 냄새가 진동했다.

“박 소장이라… 그 사람이 얼마나 잘나가는 인간이었는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살인이라니. 이 망할 세상에 아직도 그런 한가한 짓을 하는 놈이 있다니, 흥미롭군.”

진우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의 말투는 늘 비꼬는 듯 무심했지만, 그 속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찰력이 숨어 있었다. 김 경사는 그의 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한가한 짓이라뇨! 지금 탑 전체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박 소장은 자원 분배의 핵심 인물이었고, 그의 죽음은 우리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할 겁니다. 더군다나… 밀실입니다. 완벽한 밀실이에요!”

김 경사의 말에 진우는 그제야 책을 덮었다. 얇고 긴 손가락이 책 표면을 쓸었다.

“밀실이라… 그럼 가보시죠. 오랜만에 머리 좀 써볼까.”

진우는 일어섰다. 그의 키는 컸지만, 몸은 마른 편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지저분한 옷차림은 그가 얼마나 외부의 시선에 무관심한지 보여주는 듯했다.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를 가로질러 10층의 현장으로 가는 길은 꽤나 길었다. 탑 내부 복도는 어둡고 습했으며, 이따금 들려오는 저층부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긴장을 더했다.

사건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굳게 닫혔던 박 소장의 집무실 문은 강제로 부수어진 상태였다. 무거운 강철문은 경첩이 뒤틀리고, 전자 잠금장치는 부서져 있었다.

“보십시오, 강 형사님. 이 문은 전자 잠금장치와 별도로 수동 잠금장치인 데드볼트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내부에서 완벽하게 잠긴 상태였어요. 그리고 이 집무실의 창문들은 모두 두꺼운 방탄 강화유리로 막혀 있고, 바깥으로는 낭떠러지입니다. 도망갈 길은 없어요.”

김 경사가 흥분해서 설명했지만, 진우는 묵묵히 시신에 다가갔다. 박 소장의 시신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등에는 육중한 금속제 레터 오프너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시각은?”

진우가 나지막이 물었다.

“탑 의료진 최 박사의 소견으로는 어젯밤 10시에서 12시 사이입니다.”

“흠… 부검은 했나?”

“아니요. 아직… 시신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진우는 시신을 꼼꼼히 살폈다. 피는 이미 말라붙어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는 시선을 들어 방 전체를 스캔했다.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와 커다란 목재 책장, 그리고 벽에는 공동체 설립 당시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모두 폐허 속에서는 사치스러운 물건들이었다.

“문은 누가 열었습니까?”

“저와 제 대원들이 열었습니다. 새벽 3시경, 박 소장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던 이 비서가 도움을 요청해서요. 박 소장님은 평소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분이었지만, 새벽까지 연락이 안 되는 건 이례적이었습니다.”

“이 비서?”

진우의 시선이 방 한쪽에서 훌쩍거리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향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네. 박 소장님의 개인 비서입니다. 이수아 비서.”

진우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비서님, 박 소장님은 어젯밤에 마지막으로 언제 보셨습니까?”

수아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밤 9시쯤… 제가 퇴근할 때였습니다. 그때도 소장님은 서류에 파묻혀 계셨어요. 제가 먼저 가겠다고 인사드리자, 괜찮다며 조심해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문은 잠겨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열려 있었죠. 소장님은 제가 나가고 나서야 잠그셨을 겁니다. 늘 그러셨으니까요. 워낙 보안에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혹시 박 소장님 주변에 특이한 사람이나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소장님은 항상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물론 자원 분배 문제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설마 살인까지 저지를 만큼의 원한이 있었을 리는 없습니다.”

진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잠금장치가 부서진 문을 살폈다. 전자 잠금장치는 박 소장의 지문과 비밀번호로만 열리게 되어 있었고, 기록에는 박 소장이 마지막으로 밤 9시 30분에 문을 잠그고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어떠한 출입 기록도 없었다. 그리고 데드볼트는 내부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범인은 어떻게 이 방에 들어왔고, 어떻게 나갔을까요?” 김 경사가 고뇌에 찬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말없이 방 한쪽 벽을 유심히 살폈다. 그곳에는 거대한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먼지 쌓인 환기구 덮개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 속은 사람 하나 지나가기 힘들 만큼 좁아 보였다.

“아무리 봐도 외부 침입 흔적은 없습니다. 내부 소행이라고 해도, 범인이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진우는 환기구에서 시선을 떼고 책상 근처로 다가갔다. 박 소장의 시신 옆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시신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책상 아래, 바닥에 떨어진 아주 미세한 반짝임을 발견했다.

“이게 뭡니까?”

진우는 김 경사에게 돋보기를 건네받아 바닥의 반짝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실 같은 것이었다. 한쪽 끝은 미세하게 뭉개져 있었고, 다른 한쪽 끝은 끊어져 있었다. 마치 실을 잡아당기다 끊어진 것처럼.

“글쎄요… 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김 경사가 당황한 기색으로 답했다.

진우는 그 실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리곤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망가진 데드볼트의 잔해를 살펴보았다. 데드볼트는 내부에서 손잡이를 돌려 잠그는 방식이었다.

“이 데드볼트가 내부에서 잠겨 있었다는 게 핵심이로군요.”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간 후에 데드볼트를 잠갔습니다.”

진우의 말에 김 경사와 다른 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밖에서 안을 잠급니까?”

“이것으로 말입니다.” 진우는 손에 든 얇은 플라스틱 실을 들어 보였다. “이 방탄유리는 너무나 완벽하게 막혀 있어서, 바깥과 통하는 유일한 틈새가 있습니다. 바로 이 문틈이죠.”

진우는 부서진 문틀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을 가리켰다. “박 소장은 늘 완벽한 밀실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보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방에 들어오면 전자 잠금장치를 잠그고, 데드볼트까지 걸었습니다.”

“그럼 범인은 어떻게 나갔다는 겁니까?”

“범인은 이 플라스틱 실을 이용했습니다. 이 실은 보기보다 강도가 강하고 유연합니다. 범인은 박 소장이 문을 잠그기 전에, 혹은 잠그고 난 후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데드볼트 손잡이에 이 실의 한쪽 끝을 묶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끝은 문틈 아래로 조심스럽게 빼내어 바깥으로 연결했겠죠.”

진우의 설명에 김 경사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범인은 박 소장을 살해한 후, 이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온 범인은 문을 닫고, 문틈 아래로 빼놓았던 실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면 안에 있던 데드볼트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게 되는 거죠.”

“그럼… 이 실은?”

“데드볼트가 완전히 잠기고 나면, 범인은 이 실을 다시 잡아당겨서 손잡이에서 분리했을 겁니다. 완벽하게 밀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실의 한쪽 끝이 뭉개지고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져 남게 된 거죠. 아마도 범인은 이 실이 너무나 얇아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우의 기상천외한 추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범인은 누구죠? 이런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자는….”

진우의 시선은 다시 이수아 비서에게로 향했다. 수아는 진우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 소장의 습관을 가장 잘 알고, 그가 언제 잠그고 들어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잠그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런 특수 재질의 실을 구할 수 있었던 사람… 이 재질은 의료용 실과 비슷하군요. 탑 의료진 최 박사에게 이 실의 출처를 물어보면 답이 나오겠죠.”

진우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비서님. 박 소장은 당신에게 어떤 불행을 안겨주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계획에 어떤 방해가 되었죠?”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우의 말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소장님은… 소장님은 냉혈한이었어요! 모두를 위한다면서! 사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다구요! 제 동생… 제 동생은 약이 없어서 죽어갔는데, 소장님은 그 약을 창고에 쌓아두고 풀지 않았어요!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요! 제 동생은… 그 때를 기다리다가 죽었다구요!”

그녀는 울부짖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절규는 무너진 도시의 비명처럼 허망하게 울려 퍼졌다. 좀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은 여전히 인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 소장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 뒤틀린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해 파생된 절망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강진우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웅크린 수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승리감 대신, 이 절망적인 세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풀렸지만, 인간 내면의 어두운 밀실은 여전히 견고하게 닫혀 있었다. 탑은 여전히 좀비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가장 큰 위협은 늘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날 밤, 진우는 또다시 먼지 쌓인 책 더미 속으로 파묻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수께끼가, 어쩌면 그 책 속에 답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해답을 찾는다 해도,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