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작동하는 심장, 숨 쉬는 벽
오후 세 시 오십오 분. 하준은 습관처럼 벽에 박힌 거대한 황동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톱니바퀴들이 끈적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육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방금 그가 내려놓은 찻잔이 쟁반에 부딪히는 소리보다 더 크게 귀를 울렸다. 이곳, 13층짜리 아파트 ‘아이언 스파이어’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그렇듯 증기기관의 맥박 위에서 숨 쉬는 곳이었다. 벽 속에는 복잡한 구리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가끔씩 터져 나오는 증기압 조절음은 낡은 심장이 내쉬는 한숨 같았다.
하준은 제 나름대로 이런 기계적인 심미성을 좋아했다. 그의 작업실 겸 침실은 온통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램프와 크고 작은 톱니바퀴 장식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창문 밖에 설치된 환기구도 회전하는 날개와 증기 배출구를 겸하고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오후의 정적을 즐기던 하준은, 문득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테이블 위, 방금 그가 내려놓았던 찻잔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하?”
하준은 눈을 비볐다. 피곤했나? 어제 밤늦게까지 스팀펑크 비행선 스케치에 몰두한 탓일지도 몰랐다. 그는 찻잔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았다. 그때였다. 벽에 박힌 황동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갑자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대 방향으로* 한 칸 움직였다.
하준은 숨을 멈췄다. 세 시 오십오 분이었던 시계가 세 시 오십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농담이겠지.”
그는 시계로 다가갔다. 육중한 톱니바퀴들이 여전히 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시침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했지만, 시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 순간 멈춰버린 듯, 아니면 거꾸로 흐르기를 강요당하는 듯 뻣뻣했다.
그는 애써 웃었다. “이런 낡은 기계 같으니라고. 수리를 맡겨야겠군.”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게 떨리고 있었다.
밤이 되자, 아파트의 숨결은 더욱 선명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증기 파이프의 웅웅거림. 그 모든 소음이 하준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비행선 설계도를 펼쳤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똑. 똑.
싱크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준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분명히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갔는데?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위, 놋쇠로 된 수도꼭지가 뚝뚝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수도꼭지를 꽉 잠갔다. 다시는 물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힘을 주어 돌렸다.
그때였다. 씽크대 상부장, 튼튼한 나무와 금속 리벳으로 만들어진 장식용 톱니바퀴가 갑자기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틱, 틱, 틱. 불규칙한 소음을 내며 제멋대로 멈췄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마치 장난감 팽이가 저절로 돌아가다가 멈추는 것처럼.
하준은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한기가 솟아올랐다. 단순히 낡은 건물의 문제가 아니었다. 뭔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거기 누구… 있나?”
그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 거실 벽에 걸린 크고 작은 압력 게이지들이 갑자기 ‘쉬이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늘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보통은 건물 전체의 증기압을 보여주는 평화로운 지시계였지만, 지금은 마치 과부하된 보일러처럼 위험한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콰아아앙!**
갑자기 거실 중앙, 천장에 매달려 있던 증기 램프가 스스로 떨어져 내렸다. 육중한 금속 케이스가 바닥에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전등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램프에서 새어 나온 증기가 ‘푸쉬이익’ 하고 거실을 채웠다.
하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을 기대자, 등 뒤에서 싸늘한 금속의 냉기가 느껴졌다. 벽 속에 박힌 거대한 구리 파이프가, 평소라면 뜨끈해야 할 파이프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운 파이프를 타고 무언가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전해졌다.
“뭐야… 대체 뭐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공기 중에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감돌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이 아파트의 모든 기계장치를 주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의 눈앞, 방금 떨어져 나간 증기 램프가 있던 천장 한가운데서, 증기압이 미친 듯이 치솟으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를 띠는 듯했다. 형체는 희미했지만,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고 웅크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형체는 이내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새겨진 것처럼 또렷한 문양이 남았다.
**<도와줘요>**
검은 그을음으로 천장에 쓰인 글자는, 하준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장 난 기계의 오작동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는, 이 증기와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 장치는, 지금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하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찾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전화기는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끊겼다.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리고 하준은 알았다. 이 밤은 결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아파트가 더 이상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집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움직이는 유령의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