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지옥이 강림한 지 3년, 폐허가 된 도심 한복판에 겨우 세운 요새 도시 ‘새벽’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두꺼운 강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녀석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지만, 정작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 건 바로 내 눈앞의 광경이었다.

중앙 보급창의 육중한 강철문이 간신히 열리고, 안에서 피 냄새와 함께 섬뜩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문 앞에 모여든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좀비도 무섭지만, 인간만큼 잔인한 존재는 없다. 이 묵시록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때가 많았다.

“선우 씨, 들어가 봐야 해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곁을 스쳤다. 돌아보니, 강하준이었다. 그의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은 늘 그랬듯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길게 자라 목덜미를 덮었고, 얇은 안경 너머의 눈은 언제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비쩍 마른 체구는 언제 좀비에게 잡혀 먹혀도 이상하지 않을 듯 보였지만, 그는 누구보다 위험한 존재였다. 살아있는 모든 논리를 꿰뚫는 천재, 강하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탐정’이라는 해괴한 직업을 가진 남자.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하준 씨.”

내 목소리엔 피곤함이 역력했다. 며칠 밤낮을 좀비 떼와 사투 벌인 끝에 겨우 눈 붙일 틈을 찾았는데, 기어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중앙 보급창 관리자 김상현 씨가 사망했습니다. 밀실 살인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말은 늘 칼날처럼 정교하고 무미건조했다. 밀실 살인이라니. 이 좁고 절박한 공간에서 또 얼마나 기괴한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한숨을 쉬며 그를 따라 보급창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퀴퀴한 먼지 냄새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비상 발전기로 겨우 불을 밝힌 실내는 어둡고 습했다. 창고의 한가운데, 수십 개의 보급 상자들 사이에 김상현이 쓰러져 있었다. 심장에 깊이 박힌 칼날은 섬뜩하게 빛을 반사했고, 주변 바닥은 흥건한 핏물로 젖어 있었다.

“어이, 박 경장님! 보시다시피 완벽한 밀실입니다.”

경비를 담당하던 이병장(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계급으로 불렀다.)이 나를 향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얼굴에 잔뜩 겁먹은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이 문은 안에서 걸쇠를 여러 개 걸고, 보안 시스템으로 이중 잠금 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잠그는 건 불가능하죠. 창문은 모두 용접으로 막혀 있습니다. 환풍구도, 사람 몸이 통과할 만한 곳은 없습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들어와서 김상현을 죽이고 나간 겁니까?”

나는 이병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현장을 둘러보며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방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좀비는 고사하고, 파리 한 마리도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의 보안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 게다가 칼에 찔린 자국 외에는 어떤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마치 김상현이 스스로 칼을 받아들인 것처럼.

강하준은 아무 말 없이 시신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눈은 주변의 어떤 것 하나 놓치지 않는 듯했다. 바닥의 핏자국, 흩어진 상자들, 벽의 작은 흠집, 심지어 천장의 에어컨 통풍구까지. 다른 사람들이 범인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는 마치 세상의 모든 퍼즐을 맞추는 듯한 표정으로 단서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하준 씨, 대체 뭐가 보여요?” 내가 물었다.

그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시신 옆에 떨어진 낡은 랜턴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렌즈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리고 다시 시신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나무 상자를 건드렸다. 상자 안에는 식량 배급표가 가득 들어 있었다.

“김상현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언제입니까?”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병장이 대답했다.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밤 12시 순찰 때였습니다. 그때도 그는 혼자서 보급품을 정리하고 있었죠.”

“새벽 2시에서 3시. 문은 언제 발견됐죠?”

“아침 6시 순찰 때입니다.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무 응답이 없자 대원들이 강제로 문을 열었습니다.”

강하준은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육중한 강철문은 내부에서 잠금쇠가 여러 개 걸려 있었고, 디지털 잠금장치도 ‘잠김’ 상태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으로 잠금쇠와 문틀 사이의 틈을 꼼꼼히 살폈다.

“이건…” 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그가 짚어냈다. 문틀과 문 사이의 미세한 간극. 성인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좁았지만, 분명 완벽하게 밀착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시신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핏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핏자국은 김상현의 시신에서 시작해 문 쪽으로 향하다가, 문턱 근처에서 뚝 끊겨 있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하준이 내게 물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피해자는 심장에 칼이 꽂혔습니다. 저항의 흔적이 없습니다. 이는 갑작스러운 기습이었거나, 피해자가 범인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칼이 박힌 채 움직였습니다. 짧은 거리지만, 문 쪽으로 말이죠.”

“그럴 여력이 있었을까요? 치명상이었을 텐데요.”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끈질깁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죠. 하지만 왜 문 쪽으로 갔을까요? 도망치려고? 아니면… 무언가를 하려고?”

그는 다시 문으로 돌아가, 잠금쇠 하나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돌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 밀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언에 주변에 모여 있던 경비대원들과 생존자들이 술렁거렸다. 이병장이 반발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직접 문을 뜯고 들어왔습니다!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고요!”

“이 문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강하준은 이병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수동으로 걸쇠를 잠그고, 이어서 디지털 잠금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만, 그게 무슨….”

“피해자는 김상현입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급창에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보급창 문을 닫았을 때,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잠갔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김상현이 죽고 나서 누가 이 문을 잠갔다는 말입니까? 범인이 도망친 후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강하준은 다시 랜턴을 들어 문틀과 문 사이의 좁은 틈을 비췄다. “여기, 이 작은 공간을 보세요. 이 틈으로 무언가가 밀려 들어간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문틈 아주 깊숙한 곳에 희미하게 긁힌 자국과 함께 얇고 긴 이물질의 흔적이 보였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간 후에, *밖에서* 이 문을 잠갔습니다.” 강하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밖에서 안쪽 잠금쇠를 조작한 겁니다. 마치 실로 조종되는 꼭두각시처럼.”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밀실이 아니라고? 외부에서 잠갔다고? 이중 삼중으로 잠겨 있던 강철문을?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에 문 쪽으로 향했던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강하준은 시신을 다시 가리켰다. “그는 자신이 살해당한 후, 범인이 자신을 감추기 위해 어떤 짓을 할지 예견했거나, 혹은 그 수단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직전,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그는 숨을 고르더니,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피해자는 범인이 이 밀실 트릭을 완성하는 것을 *방해하려 했던 겁니다*.”

그의 말은 뇌리를 강타하는 섬광 같았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죽인 범인의 완전 범죄를 막으려 했던 피해자라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전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이 사용한 도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피해자는 무엇을 남기려 했던 걸까요?” 나는 절박하게 물었다.

강하준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승자의 미소이자, 새로운 퍼즐을 맞출 준비가 된 사냥꾼의 미소였다.

“그건 이제부터 밝혀낼 일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범인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밀실이, 실은 피해자의 마지막 저항으로 인해 처음부터 깨져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의 시선은 다시 김상현의 시신과, 그의 옆에 놓인 랜턴, 그리고 배급표가 든 작은 나무 상자에 머물렀다.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한 듯,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밤은 깊어가고,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내 심장을 더욱 거세게 때리는 것은 바깥의 위협이 아닌, 이 밀실 속에 숨겨진 잔인하고 치밀한 인간의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강하준은 차갑고도 날카로운 지성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이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논리를 따라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다음 한 수는, 모두의 운명을 바꿀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