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어진다. 낡은 고택의 그림자가 검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강진우의 그림자 역시 그 밤의 장막 속으로 스며들었다. 축축한 대기 속에서 흙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쩌렁쩌렁 울리는 발소리를 내는 경찰들은 저택의 차가운 복도를 분주히 오갔지만, 그 소음마저도 기이하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강 형사님, 이쪽입니다.”
초조한 목소리가 진우의 귓가에 닿았다. 박성민 형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피로와 혼란으로 얼룩져 있었다. 진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건 현장에 대한 기본적인 보고는 들었다. 이번에도 ‘불가능한’ 밀실 살인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서재였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책들의 퀴퀴한 향이 먼저 진우를 맞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차갑고 끈적거리는 불쾌한 기운이었다. 마치 방 안의 공기가 무언가에 의해 진공 상태가 된 듯, 모든 소리가 흡수되는 듯한 정적.
“피해자는 김동준 교수입니다. 고고학 분야의 권위자시고요. 발견 당시… 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박 형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진우의 시선은 곧장 방 한가운데로 향했다. 낡은 오크나무 책상 앞에, 김동준 교수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워 보이는 자세와는 달리, 방 안을 채운 기운은 극한의 공포를 외치고 있었다.
교수의 늙은 목에는 마치 공기 중에 피어난 듯한, 아주 희미한 은색 실이 감겨 있었다. 빛을 받아 섬광처럼 반짝이는 듯했으나, 동시에 그 어떤 질감도 느껴지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 실은 교수의 목을 한 바퀴 휘감은 채,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실의 양 끝은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무(無)에서 시작되어 무(無)로 끝나는 환영 같았다.
그리고 교수의 눈.
희미하게 열린 그 눈동자는 어떤 것도 비추지 않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천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거기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깊이를 알 수 없는 ‘경외감’만이 깃들어 있었다. 극도의 경외감. 죽음의 순간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섬뜩하리만큼 고요한 감정이었다.
“밀실입니다.” 박 형사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 역시 안에서 빗장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심지어 창밖에는 낡은 철창이 덧대어져 있었고요.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교수님은 평소처럼 혼자 방에 계셨고요. 지병도 없으셨습니다. 사망 원인은… 질식사로 추정됩니다만, 저 실 때문에….”
진우는 대답 없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은 두껍고 튼튼했다. 천장 역시 마찬가지. 바닥에는 수십 년 된 먼지가 고스란히 쌓여 있었지만, 발자국 하나 없었다. 심지어 테이블 위, 교수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얇은 보고서 한 장도 바람에 날린 흔적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완벽하게 밀봉된 공간. 아무것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던, 완벽한 밀실.
그는 천천히 김 교수에게 다가섰다. 하얀 장갑을 낀 손가락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은색 실을 향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손끝에 닿는 순간, 차가운 전율이 손목을 타고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섬광.*
찰나의 순간, 진우의 시야에 정체 불명의 형체가 스쳐 지나갔다. 검은 장막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만 드러내는 그림자. 그 그림자는 형체가 없는 손으로 은색 실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 실은 김 교수의 목으로 이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에 진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거두었다.
“강 형사님, 괜찮으십니까?” 박 형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범죄’의 영역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그는 시선을 천장으로 옮겼다. 교수의 눈이 향했던 곳. 낡고 바랜 천장 벽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진우의 예리한 시선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미세한 흔적을 잡아냈다. 아주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 손톱 자국보다도 희미하게 새겨진 그 문양은 마치 누군가 칼날로 수십 번을 덧그린 듯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문양에서부터 미미한 냉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이 방에… 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진우가 나직이 물었다.
“특이한 점이라뇨? 밀실이라는 것 자체가 특이점입니다만….” 박 형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발견 당시, 방 안의 전등은 켜져 있었습니까? 아니면 꺼져 있었습니까?”
“켜져 있었습니다. 발견자가 방문을 열었을 때 이미 켜져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기구는 확인했습니까? 외부로 통하는 구멍은 작은 것이라도 전부 확인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방 안팎으로 모두 확인했지만, 밀폐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틈조차 없었습니다.”
진우는 김 교수의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고학자의 책상답게 오래된 지도와 양피지, 그리고 알 수 없는 상형문자가 적힌 책들이 쌓여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낡은 황동 나침반이 책상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자침은 일반적으로 북쪽을 가리키는 대신, 위쪽, 정확히는 천장의 희미한 문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침반 아래에는 얇은 종이 한 장이 깔려 있었다. 종이 위에는 교수가 직접 쓴 듯한 글씨가 또렷했다.
“‘…그것은 열릴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오래된 문은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다.’…이게 뭡니까?” 박 형사가 읽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우는 그 종이를 유심히 살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천장의 문양, 그리고 교수의 의미심장한 글귀.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느리게, 하지만 정확하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 문양… 불완전한 소환진이군요. 아니, 소환진이라기보다는… 어떤 존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혹은 봉인하기 위한 매개체에 가깝습니다.” 진우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은색 실을 다시 보았다. 환영 같았지만, 분명히 교수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물리적인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압박.
“교수님은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아니, 무엇을 *기다리고* 계셨을까요?” 진우가 천장의 문양과 김 교수의 눈동자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깜빡였다. 형광등의 수명이 다한 듯 희미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완벽한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정적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젠장! 정전인가?” 박 형사가 황급히 허리춤의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좁은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고 방 안을 헤집었다.
그 짧은 어둠 속에서, 진우는 무언가를 느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아주 희미한 속삭임. 오래된 벽 속에서 피어나는 듯한 그 속삭임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형태 없는 존재의 의지가 담긴, 원초적인 음파였다.
손전등 불빛이 다시 김 교수를 비추었다. 여전히 은색 실은 허공에 떠 있었고, 교수의 표정은 변함없이 기묘한 경외감에 잠겨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두꺼운 커튼을 걷어내자, 창문이 드러났다. 빗장이 안에서 굳게 걸려 있었고, 밖에는 낡은 철창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할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 그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창틀 안쪽을 쓸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아주 미세한 가루를 발견했다. 불투명한 회색빛의 가루. 흙먼지 같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먼지보다는 훨씬 입자가 고왔다.
진우는 그 가루를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톡톡 털어냈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안에서 잠긴 빗장, 그리고 묵직한 오크나무 문.
“박 형사.” 진우가 나직이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네, 강 형사님.”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어.” 진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오히려… 함정이었지.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혹은, *무언가를* 부르기 위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기운이 일순간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마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듯이. 박 형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었다. 이제 막, 그들은 무언가의 존재를 마주한 것이었다.
진우는 다시 은색 실에 시선을 주었다. 실은 여전히 허공에 떠서 교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아까 보았던, 형태 없는 검은 그림자의 잔상이 다시 떠올랐다. 밀실 속의 살인. 밀실을 만들지 않은 살인. 이 모든 의문이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대 문명과 오컬트적 지식에 해박했던 김 교수가 어쩌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무언가를 ‘스스로’ 이 방으로 불러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능성.
밤의 고택은 더욱 깊은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이제 공포의 전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