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독립적인 단편 소설

“불가능해.”

김민준 경감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낡았지만 웅장함을 잃지 않은 서재 한가운데, 박 회장의 시신이 차갑게 누워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만년필이 쥐여 있었고, 핏자국이 희미하게 번진 원고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민준을 절망에 빠뜨린 것은 시신이 아니었다.

“문은 안에서 걸어 잠겼고, 창문은 밖에서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창문 틈새 하나 없이 밀봉되어 있어요. 이 방에서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애초에 누가 들어올 수도 없었고요.” 민준의 부하 직원이 절망적으로 보고했다.

완벽한 밀실. 범인은 대체 어떻게 박 회장을 살해하고 이 방을 나간 걸까? 아니, 애초에 들어오기는 한 걸까? 모두의 얼굴에 혼란과 공포가 뒤섞였다. 그때였다. 한쪽 구석에서 방금까지 책꽂이를 훑던 여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가능하긴요. 이 세상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아직 내가 방법을 모를 뿐이다’를 길게 늘여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강하영 씨.” 민준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농담은요.” 강하영은 그의 말을 싹둑 자르고는 고개를 들었다. 늘 그렇듯 무감한 표정, 하지만 그 눈빛은 예리한 칼날처럼 주변을 꿰뚫고 있었다. “팩트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제가 할 일을 방해하고 있어요.”

민준은 그녀를 노려봤다. 강하영. 천재적인 두뇌로 온갖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해결해 온 ‘탐정’이라는 괴짜였다. 협회에 소속되지도, 그렇다고 공식적인 탐정 사무실을 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강하영이 필요하다’는 소문이 돌면 어디선가 나타나 사건을 휘젓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존재. 민준은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불편했다. 늘 제멋대로였고, 타인의 감정에 무심했으며, 결정적으로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하는 현장입니다. 규칙을 지켜주세요.” 민준이 으르렁거렸다.

하영은 피식 웃었다. 아주 희미하고 건조한 웃음이었다. “규칙이요? 규칙은 범인이 만들지 않아요. 탐정만이 규칙을 깨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죠. 안 그런가요, 경감님?”

그녀는 더 이상 민준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서재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하영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섬세하고 긴 손가락이 피 묻은 원고지 위를 스쳤다.

“이 만년필로 쓰였군요.” 하영은 웅얼거렸다. “글자가 꽤 흐릿하네요. 마지막 글이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힘줘서 쓸 것이지.”

“자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은 ‘자살당한’ 겁니다.”

“자살당했다고요?” 민준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네. 범인은 박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위장하고 싶었겠죠.” 하영은 시신을 둘러싼 방을 천천히 훑었다. 짙은 마호가니 책상, 고풍스러운 책장, 그리고 육중한 철제 금고. 그녀의 눈은 어떤 미세한 흔적도 놓치지 않았다.

“이 방에는 환기구가 없습니다. 창문은 밀봉됐고요.” 그녀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환풍기도 없군요. 문 아래 틈은요?”

부하 직원이 급히 확인했다. “거의 없습니다. 종이 한 장 겨우 들어갈 정도입니다.”

“음…” 하영은 턱을 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뇌하는 철학자 같기도, 심각한 표정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는 아이 같기도 했다. “그럼 남은 건 이 문 하나뿐이군요.”

그녀는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만져봤다. “안에서 잠겼다고 했죠?”

“네. 자물쇠가 안으로 잠겨 있었습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자물쇠…” 하영의 시선이 문 안쪽에 달린 낡은 잠금장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금쇠가 너무 반짝이네요.”

민준은 그 말을 듣고 황당했다. “반짝인다니요? 낡은 자물쇠입니다만.”

“네, 낡았죠.” 하영은 손가락으로 잠금쇠의 작은 틈새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이 부분은 유독 깨끗합니다. 마치 최근에 누군가 강제로 만졌거나, 닦은 것처럼요. 그리고 여기.”

그녀의 손가락이 잠금쇠 옆, 문에 박힌 작은 못을 가리켰다. 아주 작고 평범한 못이었다.

“이 못은 원래 여기 있던 게 아니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민준이 다가섰다.

하영은 못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핀셋을 꺼내 그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못의 머리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어요. 그리고 못 주변의 나무 결이 아주 미세하게 손상되어 있습니다. 이 못은 단순히 박혀 있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용도로 사용된 흔적이에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책상 위를 뒤졌다. 그리고는 작은 돋보기를 찾아냈다. 그녀는 다시 못으로 돌아가 돋보기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역시.”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범인은 이 문을 통해 나갔어요.”

“말도 안 돼!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열쇠도 방 안에 있었다고요!” 민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황당한 주장에 현장의 모든 형사들이 술렁였다.

하영은 민준을 힐끗 보더니 다시 그 못을 가리켰다. “열쇠는 방 안에 있었죠. 하지만 열쇠가 ‘제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 열쇠의 위치, 보십시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가리켰다. 박 회장의 시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열쇠는 박 회장의 서랍에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그가 늘 몸에 지니고 다녔겠죠. 그런데 지금은 바닥에 떨어져 있어요. 마치 그가 죽기 직전 열쇠를 떨어뜨린 것처럼요.”

“그게 왜 문제죠?” 민준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자살을 시도했다면, 또는 범인에게 공격당해 저항했다면, 열쇠는 이런 식으로 얌전히 떨어지지 않아요. 최소한 멀리 굴러가거나, 어딘가 박혀 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이 열쇠는 아주 ‘전시하듯’ 놓여 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하영은 문 안쪽에 달린 잠금쇠를 다시 가리켰다. “이 못은 말이죠. 범인이 문을 잠그고 나가는 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장치’의 일부죠.”

그녀는 조용히 상황을 재연하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범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범인은 그 후 이 방을 밀실로 위장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겠죠. 우선, 그는 열쇠를 이용해 문을 안에서 잠급니다. 그리고 그 열쇠에 실을 묶어요.”

“실이요?”

“네. 아주 가늘고 튼튼한 실. 그리고 그 실의 다른 한쪽을 저 못에 연결합니다. 못에 홈이 파여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미세한 흠집으로도 충분해요. 실을 못에 단단히 고정한 뒤, 범인은 문 아래 틈으로 실을 통과시켜 밖으로 나갑니다.”

민준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좁은 틈으로 실을 통과시켜서요? 그리고 그걸 당겨서 문을 잠근다고요?”

“아니요. 그 반대죠.” 하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밖으로 나간 뒤,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실을 잡아당겨서 열쇠를 돌리는 게 아니에요. 이미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범인은 실을 잡아당겨서 열쇠를 ‘제자리’에 놓는 거죠.”

“제자리라니요?”

“문이 안에서 잠겨 있는 상태에서, 열쇠가 잠금쇠에 꽂혀 있되, 실에 연결되어 문 아래 틈으로 나와 있다면, 밖에서 실을 당겨 열쇠를 살짝 돌려 잠금쇠를 더 단단히 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실을 풀어 문틈 사이로 열쇠를 ‘떨어뜨리는’ 거죠. 이렇게.”

하영은 열쇠가 떨어진 바닥을 가리켰다. “이런 방식으로 열쇠를 떨어뜨리면, 마치 안에서 스스로 떨어뜨린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 못이 힌트죠. 실을 못에 묶고, 문이 닫히는 순간 실이 끊어지거나, 아니면 밖에서 문을 닫는 동시에 못과 실을 분리하여 회수하는 거죠. 이 못의 흠집은 그 과정에서 생긴 겁니다.”

“그럼 실은요? 실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주 미세한 실이었을 겁니다. 현장에서 흔적을 찾기 어려운 종류의 실. 혹은 범인이 회수했거나요.” 하영은 다시 한번 못을 자세히 살폈다. “여기, 아주 희미한 섬유 가닥이 있군요. 돋보기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입니다.”

민준은 그녀가 가리킨 곳을 돋보기로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아주 작은, 눈에 띄지 않는 실오라기 하나가 못의 머리에 걸려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돼.” 민준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놀라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존경심으로 물들었다.

“그럼 범인은 박 회장과 가까운 사람이겠군요. 이런 식으로 밀실 트릭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은…” 민준이 중얼거렸다.

“네. 이 집안 사람 중 한 명이겠죠. 박 회장의 조카인 박준영 씨. 며칠 전 박 회장과 재산 문제로 크게 다퉜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하영의 시선이 옆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박 회장의 조카를 향했다. 조카는 하영의 시선에 움찔하더니 땀을 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가 범인입니다.” 하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박 회장은 만년필로 유언을 쓰려 했으나, 조카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한 거죠. 만년필에 묻은 피는 박 회장의 것이지만, 그의 손에 묻은 피는 범인과 격투를 벌이던 중 범인의 상처에서 묻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준은 곧바로 조카 박준영을 심문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밀실 트릭은 하영이 말한 그대로였다. 박준영은 미리 준비한 낚싯줄과 못을 이용해 문을 잠그고,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려 자살로 위장했던 것이다.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현장 정리로 부산스러운 와중에 민준은 하영에게 다가섰다.

“강 탐정님…”

하영은 서재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다음 사건을 좇는 듯 멀리 있었다.

“오늘… 정말 대단했습니다.” 민준은 솔직한 찬사를 보냈다.

하영은 그제야 그를 돌아봤다. 늘 무표정했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듯한 미소였다. “뭐, 평범한 일상이죠.”

민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평범한 일상이라니요. 세상에 이런 평범함이 어디 있습니까.”

하영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진실은 눈앞에 놓여 있어요. 그저 사람들이 그걸 보지 못할 뿐이죠. 저는 단지 그걸 찾아낼 뿐입니다.”

“그… 혹시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실까요?” 민준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의 심장이 간만에 빠르게 뛰었다. “제가 맛있는 해물찜 집을 압니다. 오늘 수고하셨는데…”

하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준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 민준은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거절당할 것을 예상했다. 그녀는 늘 모든 개인적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해왔으니까.

“해물찜이요?” 하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안에서 어딘가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작은 흥미가 엿보였다. “음… 민준 씨가 사는 거라면, 생각해 보죠.”

“민준 씨…?” 민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그녀가 자신을 ‘경감님’도 ‘김 형사’도 아닌 ‘민준 씨’라고 불렀다. 그것도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하영은 더 이상 대답 없이 몸을 돌려 유유히 서재를 나섰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민준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심장이 여전히 쿵쾅거렸지만, 이번엔 긴장보다는 묘한 설렘 때문이었다.

“민준 씨라니… 젠장, 나 지금 설렌 건가?” 그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해물찜이든 뭐든, 일단 오늘은 내가 쏜다!”

밀실 살인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미스터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알쏭달쏭한 천재 탐정, 강하영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그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기꺼이 그녀의 뒤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물찜 냄새를 맡으며, 혹은 또 다른 예측 불가능한 사건 속에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