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하늘 아래, 금이 간 콘크리트 빌딩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서 있었다. 한때는 번화했을 도시의 잔해 위로, 거대한 철의 그림자가 느리게 움직였다. 삐걱이는 관절음이 적막을 깨고 퍼져 나갔다. ‘망각’. 나의 철갑 친구이자 유일한 동반자. 녀석의 콕핏 안, 나는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숨을 쉬었다.

콘솔의 스크린은 모래 폭풍이 덮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남은 동력은 겨우 30퍼센트. 식량은 사흘치, 물은 이틀치. 이 폐허에선 그마저도 사치였다. 꼬박 이틀을 탐색했지만 얻은 건 부식된 금속 파편 몇 조각뿐이었다.

“젠장, 오늘은 운도 지지리 없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망각의 기계음이 낮게 울리며 내 불안감을 더했다. 이 거대한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녀석은 나의 눈이었고, 발이었으며, 때로는 귀가 먹먹할 만큼 강력한 주먹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외로운 시간을 채워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망각의 센서가 미약한 신호를 포착했다. 오래된 통신탑 잔해였다. 저곳이라면 혹시, 전력 코어 같은 귀한 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최소한, 녹슬지 않은 부품이라도. 망각의 움직임이 조금 빨라졌다. 희미한 희망이 나를 이끌었다.

통신탑 잔해는 거대한 괴물의 뼈대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무너진 건물들의 파편과 뒤틀린 철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망각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잔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발밑에서 낡은 금속 조각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라면… 숨어있을 만한 게 있을지도.”

내 촉은 꽤 정확한 편이었다. 수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갈고닦은 생존자의 본능. 망각의 팔에서 섬광등이 뻗어 나가 어둠을 찢었다. 눅눅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콕핏 안으로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호흡기 마스크를 고쳐 썼다.

그때였다. 망각의 센서가 경고음을 토해냈다. 진동, 열원 감지. 서쪽 폐쇄된 통신실 구역.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열원은 일반적인 변이체와는 달랐다. 훨씬 크고, 훨씬 뜨거웠다.

“젠장, 또 놈들인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통신탑 주변은 늘 위험했다. 희귀한 자원을 노리고 온 다른 생존자들이거나, 아니면 이 폐허의 진정한 지배자들. 변이된 생물체들. 나는 망각의 왼팔에 달린 개틀링을 준비시켰다.

열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육중한 몸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턱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 몸은 단단한 갑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척추를 따라 솟아오른 뼈 조각들은 위협적으로 빛났다.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민첩했다. 놈은 곧바로 망각을 향해 돌진했다.

“이 미친놈!”

나는 망각의 왼팔에 달린 개틀링을 발사했다. 탄환이 빗발처럼 쏟아지며 변이체의 단단한 껍질을 긁어댔다. ‘철컥, 철컥’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지만, 놈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육중한 몸체가 망각을 덮쳤다. 망각의 팔이 휘청이며 강철을 긁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콕핏 안, 나는 거친 진동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크윽!”

변이체의 발톱이 망각의 어깨 장갑을 찢었다. 삐빅, 삐빅!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다. 손상 부위가 스크린에 붉게 표시됐다. 동력 코어가 위험했다. 이대로라면 망각이 고철 덩어리가 될 터였다.

나는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망각 없이는 나 또한 이 폐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녀석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나의 생존 그 자체였다.

“이대로 끝낼 순 없어!”

나는 망각의 오른팔에 장착된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거대한 칼날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전기를 머금었다. 변이체가 다시 덮쳐왔다. 나는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고,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콰앙!’

전기가 흐르는 칼날이 갑각을 찢고 들어가는 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변이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녹색 피가 뿜어져 나오며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하지만 놈은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한 듯 온몸의 뼈 조각들이 더욱 솟아오르며 위협적으로 변했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려 포효했고, 역겨운 악취가 진동했다. 나는 망각의 다리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체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나는 변이체의 머리 위로 그대로 내려찍었다.

‘쉬이이이잉- 콰직!’

강철 블레이드가 변이체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놈은 몸부림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잠시 후, 거대한 몸체는 미동도 없이 굳어버렸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콕핏 안은 땀으로 축축했다. 망각의 경고음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목숨은 건진 듯했다. 망각의 어깨 장갑은 너덜너덜해졌고, 동력도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또다시.

“휴우…”

나는 망각의 콘솔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고독한 생존자의 의지를 일깨웠다. 스크린에는 여전히 미약한 통신탑의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놈이 나타난 곳, 그 뒤편에는 아직 탐색하지 못한 구역이 남아 있었다.

나는 땀을 닦고 망각의 시스템을 재부팅했다. 녀석의 심장 소리 같은 기계음이 다시 낮게 울렸다.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나는 이 잿빛 세상에서 망각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파편들만이 가득한 이 황폐한 세계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우리의 궤적을 그려나갈 것이다. 희미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