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굶주린 들녘의 그림자

바람은 불었다. 꽃향기 대신 메마른 흙먼지와 절망의 냄새를 싣고 서한평야(西漢平野)를 가로질렀다. 한때 생명의 보고였던 태양은 이제 쩍쩍 갈라진 논밭 위로 대장장이의 망치처럼 뜨거운 빛을 내리찍었다.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작물들은 바싹 마른 껍데기만 남겨, 허기진 백성들의 눈을 조롱하는 듯했다.

강산(姜山)은 허리춤에 찬 낡은 낫을 고쳐 매며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올려다봤다. 스무 해를 갓 넘긴 그의 몸은 여느 또래의 사내들보다 다부지고 강인했으나, 그의 눈에는 굶주림으로 인한 피로와, 그러나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 공존했다. 그는 오늘도 새벽부터 들녘을 헤맸지만, 수확이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흙을 파헤쳐 겨우 찾아낸 마른 뿌리 몇 개가 전부였다.

저 멀리,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비포장도로 위로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검은 깃발을 나부끼며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 천하제국(天下帝國)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깃발에는 붉은 용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백성들의 눈에는 그저 굶주림과 약탈을 상징하는 검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병사들이 나타날 때마다 마을은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아이들의 울음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어이, 거기! 강산이 너 아니냐?”

선두에 선, 험상궂은 인상의 병사 하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강산을 불렀다. 그의 이름은 탁현(卓玄)으로, 이 일대에서 악명이 자자한 감찰관이었다. 강산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예, 감찰관님.”

강산의 목소리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들리려 애썼지만, 그의 주먹은 어느새 꽉 쥐어져 있었다.

탁현은 거만한 걸음으로 강산에게 다가와 그의 허리춤에 찬 곡식을 발로 툭 차버렸다. 겨우 모은 몇 줌의 곡식이 먼지 풀풀 날리는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이게 네가 오늘 거둬들인 전부냐? 이 한심한 놈아! 황제 폐하께 바칠 세금은 어디 갔어? 작년보다 더 줄었잖아!”

“감찰관님, 올해는 가뭄이 너무 심해서….”

강산은 애써 침착하게 답했지만, 탁현의 얼굴에는 듣기 싫다는 짜증만 가득했다.

“변명은 집어치워라! 너희 같은 벌레만도 못한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제국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리는 줄 아느냐? 게다가 지난달에는 흉년 탓에 세금을 내지 못한 마을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게 이 서한평야에 있는 마을이라던데, 혹시 네 놈들 마을은 아니겠지?”

탁현의 눈이 날카롭게 강산을 꿰뚫었다. 그의 시선은 강산의 등 뒤, 움푹 들어간 골목 어귀에 숨어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닿았다.

그때였다. 흙먼지 낀 골목에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강산의 할아버지인 김 영감(金老翁)이었다. 마른 몸에 뼈만 앙상한 노인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감찰관님, 제발… 제발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 마을은 정녕 먹을 것이 없습니다. 병든 아이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금은… 다음 수확 때… 제발 한 번만….”

김 영감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탁현의 얼굴에는 비웃음만 가득했다. 그는 삿대질하듯 김 영감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다음 수확? 그때까지 이 시궁창 같은 마을에서 무언가 나올 거라 기대하는 건가? 늙은이가 제정신이 아니군. 썩 꺼져!”

탁현은 조소를 띠며 김 영감을 거칠게 밀쳤다. 김 영감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낡은 지팡이가 부러지고, 그의 마른 기침 소리가 고통스럽게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

강산의 눈이 이글거렸다. 굳게 쥐었던 주먹의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분노가 피를 거꾸로 솟게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수십 명의 무장한 병사들 앞에서 객기 부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섣불리 나섰다가는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터였다.

“이보게, 감찰관. 그 정도면 됐소. 서한평야는 이제 그만 쥐어짜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겠어.”

병사 무리 뒤에서 또 다른 마차가 멈춰 섰고, 거기에서 사대감(師大監)이라고 불리는 자가 내렸다. 그는 탁현보다 더 높은 직책의 관리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사대감은 강산과 쓰러진 김 영감을 훑어보더니 탁현에게 눈짓했다.

탁현은 그제야 씨익 웃으며 강산에게 다가왔다.
“잘 들어라. 이달 안으로 밀린 세금을 모두 내지 못하면, 이 마을의 모든 논밭은 제국에 귀속될 것이며, 너희들은 노예가 되어 끌려갈 것이다. 명심해라.”
사대감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어떤 벼락보다도 섬뜩하게 마을 사람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마을에서 실행된 차가운 현실이었다.

병사들이 떠나고 난 뒤, 마을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부러진 지팡이와 흩뿌려진 곡식만이 그들의 횡포를 증명하는 듯했다. 강산은 쓰러진 할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켰다.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에는 눈물 대신 깊은 절망만이 가득했다.

“강산아… 우리는…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강산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시선은 멀리 병사들이 사라져간 먼지 구름을 좇았다. 텅 빈 들녘,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희망을 짓밟는 거대한 제국의 그림자. 강산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들끓었다.

‘제국… 천하제국… 너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때는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빛이 깊은 밤하늘의 별처럼 희미하지만 굳건하게 빛났다. 마른 들녘에 피어날 작은 들풀, 그 연약한 풀뿌리가 언젠가 거대한 바위를 흔들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서한평야에는 한 젊은이의 조용하지만 맹렬한 결심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