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의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안은 낡은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어젯밤, 그녀를 둘러쌌던 혼란과 불안은 여전히 심장을 옥죄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기억의 파편조차 떠오르지 않는 공허한 머리는 무거운 쇠구슬 같았다. 자신은 누구인가. 왜 이곳에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마치 누군가 써 내려간 소설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녀의 손목에는 낡은 가죽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디자인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과거와 자신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인 양, 그녀는 팔찌를 매만졌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작은 은색 조약돌 같은 물건.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성 재질의 이 물체는 아무런 버튼이나 표시도 없었지만, 가끔 미세한 진동과 함께 연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놓을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도시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간판들은 이제 그 빛을 거두고, 대신 햇살이 비좁은 골목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의 옷차림은 다양했고, 손에 든 납작한 직사각형의 기기는 끊임없이 빛을 내며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안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그녀의 옷차림, 낡고 기묘한 소재의 회색 코트는 이곳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튀어 보일 터였다.
배고픔이 찾아왔다. 텅 빈 위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공원 입구 쪽, 붉은 벽돌 건물 1층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흘러나왔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향기가 이안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름의 그 카페 안은 따뜻하고 아늑해 보였다. 오래된 나무 탁자와 은은한 조명,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망설임 끝에 이안은 카페 문을 열었다. 짤랑, 하고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안에 있던 유일한 손님과 젊은 주인 남자가 동시에 이안을 돌아봤다.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낯선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따뜻한 온기가 얼어붙었던 그녀의 몸을 감쌌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주인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는 넉넉한 인상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메뉴판을 힐끗 봤지만, 온통 알 수 없는 글자와 그림으로 가득했다. 이안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메뉴판을 응시했다. ‘무엇을 주문해야 하지? 돈은? 나는 돈이 있나?’
“저…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는 처음이라…” 이안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았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예상대로, 지갑이나 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인 남자는 그녀의 초조한 표정을 읽었는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앉아서 좀 쉬세요. 제가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게요. 마침 빵도 막 나왔는데.”
그의 친절은 뜻밖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가 구석 자리로 향했다. 그에게서 경계심이나 의심의 눈초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배려뿐이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허브차와 노릇하게 구워진 빵 한 조각이 그녀의 테이블에 놓였다. 빵을 한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버터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지친 그녀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따뜻한 차는 차가웠던 속을 데웠다.
이안은 차를 마시며 창밖을 응시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그들이 손에 든 신기한 기기들. 특히, 거리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화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과 소리는 그녀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소음. 기억을 잃은 자신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그때, 그녀의 손에 들린 은색 조약돌이 다시 미세하게 진동하며 푸른빛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강렬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기계음,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하얀 섬광, 그리고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
“이안! 시간선을 벗어나!”
그것은 너무나도 짧고 강렬한 감각이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머리를 부여잡았다. 통증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듯한 깊은 울림이었다. ‘이안… 나를 부르는 소리인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안이 주위를 둘러보자, 카페 주인인 강지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데…”
이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의 환영은 너무나 생생했고, 동시에 너무나 흐릿했다. 모든 것이 조각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안’이라는 이름. 그것이 자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확신이 그녀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잃어버린 기억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인 듯했다.
그녀는 다시 손에 든 은색 조약돌을 꽉 쥐었다. 이 기묘한 물건이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이안’이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을 경고하려 했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피어났다. 이 낯선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야만 했다. 그녀의 어깨에 놓인 시간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