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침묵하는 유물
광활한 우주, 그 무한의 심연 속을 유영하는 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카시오페이아 호였다. 미지의 성간 먼지 구름을 가르며 나아가던 함선은 인류의 발길이 닿은 가장 먼 변방을 한참이나 넘어선 곳에 있었다. 빛조차 도달하지 못해 이름 붙여지길 거부당한 심우주 17구역. 이곳에서의 임무는 오직 하나, 인류 문명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다.
함교의 푸른 조명 아래, 이서진 함장은 투명한 정보창 너머로 펼쳐진 어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점으로 박힌 검은 비단 같은 풍경은 언제 보아도 경외로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차가운 고독을 품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관측병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함장님, 장거리 스캔에… 이상 징후 포착되었습니다!”
이서진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용 보고해.”
“좌측 람다 섹터, 좌표 3-7-델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미확인 개체입니다. 자연 현상은 아닙니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면?” 박선우 수석 과학자의 목소리에 미묘한 기대와 긴장이 섞였다. 그의 눈은 이미 함교 중앙의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현수 부함장이 침착하게 스크린을 조작했다. “에너지 방출은 없습니다. 질량은… 어마어마합니다. 기존 탐사선이 발견했던 소행성이나 행성체와는 스캔 패턴이 전혀 다릅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희미한 형체가 떠올랐다. 검은색 구형의 그림자. 거대했지만, 너무나도 멀리 있어 아직은 그저 불분명한 얼룩처럼 보였다.
“최민준, 최하층부 스캔 돌려봐.” 이서진 함장이 지시했다. “모든 가능한 주파수로. 정확한 정보를 원한다.”
최민준 엔지니어가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얼마 후,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당혹감이 섞였다. “이상합니다, 함장님. 모든 대역에서 완전한 침묵입니다. 어떠한 전자기적 신호도, 열 에너지 방출도, 심지어 중력 변동조차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존재하지 않는데 스캔에 잡혔단 말인가?” 정혜원 보안 책임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언제나 현실적인 위협에 초점을 맞추는 인물이었다.
박선우가 스크린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명백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아는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완벽한 은폐 기술이거나, 혹은 우리가 모르는 전혀 새로운 물질로 이루어져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경로 수정, 해당 개체로 접근한다.” 이서진 함장이 짧게 명령했다. “최소 안전거리 유지하고, 모든 센서 최대로 가동해. 혜원, 보안 등급 3단계로 올려.”
“예, 함장님.”
카시오페이아 호는 방향을 틀어 미지의 개체를 향해 나아갔다. 수천 킬로미터를 더 비행한 후, 홀로그램 스크린 속 불분명한 얼룩은 점차 선명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했다. 직경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완벽한 구체. 표면은 칠흑 같았고, 빛을 뿜기는커녕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어떤 기하학적인 무늬도, 틈새도, 추진 장치의 흔적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 우주 공간에 완벽하게 매끄러운 흑요석 구슬을 놓아둔 것만 같았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최민준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록에 없습니다.” 김현수가 중얼거렸다. “어떤 문명도, 어떤 종족도 이런 규모의 구조물을 이런 방식으로 건설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서진 함장은 스크린에 손을 뻗어 마치 만져보려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심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지구의 나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겠군.”
“표면 온도는 절대 영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내부 온도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박선우가 보고했다. “외부 장갑은 우리가 아는 어떤 재료의 분자 구조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검은색, 그러나 빛의 스펙트럼을 흡수하는 방식이… 비정상적입니다.”
“선우, 직접 탐사를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이서진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소형 무인 탐사정을 발사하겠습니다. 표면 착륙 시도 후, 샘플 채취.”
“너무 가깝게 붙지 마.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도록.”
무인 탐사정 ‘스프라이트-7’이 카시오페이아 호에서 분리되어 검은 구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대형 스크린에는 스프라이트-7의 시점에서 본 구체의 모습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압도적인 크기와 완벽한 매끄러움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표면은 거울처럼 매끄러웠고, 우주의 먼지 한 톨 앉아있지 않았다.
스프라이트-7이 구체 표면까지 10미터 거리로 접근했을 때였다.
“함장님!” 최민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스프라이트-7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했습니다! 통신 두절, 동력 상실!”
대형 스크린에 스프라이트-7의 영상이 멈춰 선 채 고정되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스프라이트-7은 검은 구체 표면 10미터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이서진이 날카롭게 물었다.
“모릅니다! 어떤 간섭 신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마치… 꺼버린 것처럼요!” 최민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선우의 얼굴에서 호기심은 사라지고 심각한 표정이 떠올랐다. “접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일까요?”
그때, 함교 전체를 감싸던 고요함이 깨졌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 함선 전체를 타고 흘렀다. 그 진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치 뇌리 속에서 울리는 아주 낮은 주파수의 소리 같았다.
*흐으음…*
어떤 소리라고 확신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감지되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귀가 아닌, 피부와 뼈를 통해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방금… 느꼈습니까?” 정혜원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이서진 함장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희미한 두통이 찾아왔다. “함선 시스템에 이상 징후는 없나?”
“없습니다, 함장님. 모든 것이 정상 작동 중입니다. 하지만… 저도 느꼈습니다.” 김현수가 말했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바로 그 순간, 검은 구체의 표면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아무것도 없던 완벽한 검은 표면에, 셀 수 없이 많은 아주 작은 점들이 섬광처럼 반짝였다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를 압축하여 구체 안에 가둬 놓은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섬광들은 모여 어떤 복잡한 무늬를 형성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무늬들이 형성되는 찰나의 순간, 이서진 함장의 뇌리에 섬뜩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드넓은 우주의 심연,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사이로 유영하는 거대한 눈동자. 그 눈동자는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없이 깊고, 고요하며, 그리고… *굶주린* 눈동자였다.
함장은 순간적으로 숨을 헙 들이켰다. 환각인가?
“저것… 움직이는 건가?” 박선우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검은 구체의 표면에서 점멸하던 섬광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구체는 다시 완벽한 흑요석 구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짧은 변화는 함교의 모든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남겼다. 그들은 이제 확신했다. 저것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침묵하던 유물은, 이제 그들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이서진 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은 어느새 팔걸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후퇴 준비해.”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낮고 무거웠다. “최대 속도로. 지금 당장.”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는지도 몰랐다. 카시오페이아 호의 주 동력 코어에서 갑작스러운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선명한 붉은색 경고등이 함교를 비추며, 통제불능의 상황을 알렸다.
“함장님! 주 동력이… 50% 급감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최민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뭐라고? 비상 동력으로 전환해!”
“안 됩니다! 비상 동력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뭔가가 동력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비치던 검은 구체가, 마치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시오페이아 호는 더 이상 미지의 유물로부터 멀어질 수 없었다. 그들은 칠흑 같은 심연 속에 갇혔다.
그리고 유물은… 침묵을 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