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재수 없는 운명은 원래 불시에 찾아오는 법

“크흐음… 천하제일 무예대회라….”

한소연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광경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애써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오색 찬란한 깃발들이 펄럭이고, 수십 개의 비무대가 거대한 평원에 드문드문 솟아 있었다. 사방에서 몰려든 무림인들의 기합 소리와 기운이 뒤섞여 웅장한 활기가 넘쳤다. 이곳이 바로,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그 유명한 ‘천하제일 무예대회’의 주 경기장이었다.

‘청운문’이라는, 이름만 거창하고 실상은 산골짜기에 처박힌 소문파의 막내딸인 소연에게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평생 비무라고는 기껏해야 문파 사람들과의 수련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이곳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동시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아니, 이렇게까지 거창할 필요가 있나? 다들 너무 힘주고 있는 거 아니야?”

소연은 제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에는 낡고 해진 비단 주머니가 쥐여 있었다. 주머니 안에는 비장의 무기, 아니, 비장의 간식거리가 들어있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선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떠밀림’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숙원이자, 문파의 마지막 희망. “이번 대회에서 일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청운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부르짖음에, 덩치 큰 사형들이 다 피하고 그녀에게 떠넘긴 숙명적인 임무였다. 물론, 그녀의 사부님은 “소연아, 가서 맛있는 거나 많이 먹고 와라. 승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라.”라며 은근히 포기한 눈치였지만.

“하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한 16강은 가야 아버지가 노망을 안 부리실 텐데.”

소연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녀의 주특기는 ‘청운 비풍검’이라는, 빠르고 날렵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검법이었다. 바람처럼 움직인다고 하지만, 보통은 바람처럼 휘청거린다는 평이 더 많았다.

경기장 입구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던 소연의 눈에,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그 중심에는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넓은 사내가 있었다. 검은 무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주위의 왁자지껄한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앞만 보며 걷고 있었다. 마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오오… 저 사람은 진짜 고수처럼 보이는데? 저 기세 좀 봐.’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무림인들이 일제히 길을 터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왕국의 왕자님 같은 위압감을 풍겼다. 소연은 살짝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제 순서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젠장, 늦었잖아!”

그녀는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워낙 인파가 많아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녀는 잰걸음으로 틈을 비집고 나아갔다. 그러다 그만, 너무 서두른 탓일까.

콰당!

앞을 미처 보지 못한 소연은 단단한 무언가에 그대로 부딪혔다.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낡은 비단 주머니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그 안에서 소중한 간식거리인 ‘호두과자’ 한 봉지가 튀어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고오… 내 호두과자!”

소연은 엉덩이의 통증보다 호두과자의 비극적인 운명에 더 큰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눈앞에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의 발이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부딪힌 것이 바로 그 ‘왕자님’이었다.

고개를 들자,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잘 깎아낸 조각상처럼 완벽했지만, 그만큼이나 무표정하고 싸늘했다.

“…방해되는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게감이 있었다. 마치 얼음장 같은 그의 말에 소연은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내 바닥에 흩어진 호두과자를 보고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내 정신적 지주인 호두과자가!!

“아니, 방해는 제가 아니라 그쪽이 더 방해되거든요? 사람이 오면 좀 비켜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길을 아주 독차지하셨네!”

소연은 저도 모르게 왈칵 짜증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림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경악에 찬 눈으로 소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연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조금의 동요도, 분노도 읽히지 않았다. 그저 무심함, 그뿐이었다.

“일어나라.”

그의 목소리는 명령에 가까웠다. 소연은 그제야 주변의 살벌한 시선들과 사내의 냉기 어린 기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저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그의 차가운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치만 호두과자는 물어내세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소연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아니, 대회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두과자 값이라니! 게다가 저런 엄청난 포스의 사람에게!

사내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 시선은 너무나 깊고 차가워서 소연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첫 비무 상대로 이 사람을 만나서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호두과자 때문에?!

그러나 그의 손은 소연의 얼굴이 아닌, 그의 품속으로 향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은자를 꺼내 바닥에 떨어진 호두과자 옆에 툭 던졌다.

쨍그랑.

은화가 돌바닥에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됐다.”

단 두 글자였다. 소연은 눈을 뜨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은화를 보고 경악했다. 호두과자 한 봉지에 은화라니! 이 정도면 호두과자 열 봉지는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어… 저… 저는….”

소연이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사내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쳐 경기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르던 무리들도 그녀를 경멸하듯 힐끗 바라보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소연은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은화와 으스러진 호두과자를 번갈아 보았다.

‘와, 저 사람 누구야? 진짜 재수 없네! 돈이 많으면 다인가?! 내가 길 막고 있다고 했더니 은화를 던지고 가? 그리고 재수 없게 잘생겼어!’

그때, 저 멀리서 한 무인 둘이 속삭이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방금 그분, 바로 ‘천마신궁’의 강진혁 대협 아니시오?”
“쉬잇! 누가 들을라! 그분이 곧 천하제일인이 되실 분이시다! 감히 그분께 불경한 말을 하다니!”

강진혁. 천마신궁의 강진혁.

소연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 듯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이자, 이미 무림에서 ‘천재’라는 칭송을 받는 젊은 고수였다. 그리고 그녀의 사형들이 그를 만나기만 해도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이라던, 그야말로 무림의 절대 강자!

‘강… 진혁…이라고?!’

소연은 바닥에 떨어진 은화와 호두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빨개졌다. 재수 없게 잘생긴 건 둘째 치고, 첫 만남부터 그 천마신궁의 강진혁에게 돈으로 굴욕을 당하고, 심지어 그에게 호두과자 값이나 받으려 했다니!

그녀는 황급히 은화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엉망이 된 호두과자를 주워 들었다.

“젠장! 재수 옴 붙었네! 하필 강진혁이라니!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어디 두고 봐! 내가 너한테 호두과자 값이 아니라 이 청운문의 이름값을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른 소연은 그대로 경기장 입구로 뛰어들어갔다. 그녀의 심장은 분노와 부끄러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오기 어린 열정으로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천하제일 무예대회의 첫날은, 그녀에게 이렇게 재수 없는 운명과의 불시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재수 없는 운명이, 앞으로 그녀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