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붉은 각인

밤은 깊고, 숲은 침묵했다. 고요는 짙은 안개처럼 땅을 기었고, 차가운 습기가 지우의 뺨을 스쳤다. 숨소리마저 죄가 될 것 같은 적막 속에서, 지우는 이경의 품에 파묻혀 떨리는 숨을 삭였다. 며칠째 이어지는 도피 생활. 쫓기는 자의 비명은 들리지 않고, 쫓는 자의 그림자만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괜찮아, 지우야.”

이경의 목소리는 귓가에 닿는 속삭임이었지만, 그 속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같은 불안이 서려 있었다. 그의 손이 지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단단한 근육 아래로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이 격렬했다. 그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토록 강한 존재마저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앞에서 몸서리치는 것을 지우는 똑똑히 느꼈다.

그들의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금기였다. 인간과 신수(神獸). 그것은 강물이 바다와 섞이듯 자연스러울 수 없는 이치였다. 하지만 지우는 기꺼이 그 이치를 거부했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와 만난 이 남자, 아니 이 신수를, 그녀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숲의 저편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날카로운 그 소리는 얼어붙은 밤공기를 찢는 칼날 같았다. 이경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푸른 빛이 스치듯 지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깊은 밤하늘처럼 검게 물들었다.

“왔어….”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본능적인 경고가 담긴 음성이었다. 지우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 안의 모든 피가 역류하는 듯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이경….”

그녀의 손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놓치면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경은 지우를 품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의 손이 지우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를 지킬 거야.”

그의 눈빛은 비장했다. 지우는 그 눈빛 속에서 용의 기개를 보았다. 아직은 미완의 존재, 이무기. 하지만 그 안에 잠재된 용의 힘은 이미 세상의 어떤 존재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지우는 알고 있었다. 그가 용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인간과의 연정은 신수의 승천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었다.

“어디 숨어봤자 소용없다! 이무기, 천명(天命)을 거스른 죄를 달게 받아라!”

숲의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메아리쳐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밤의 장막을 뚫고 지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천명회(天命會)’. 신수들의 질서를 수호하고, 인간계와의 간섭을 엄격히 금하는 비밀스러운 조직. 그들의 추격은 집요했고, 잔인했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불분명한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넷, 아니 다섯. 모두 검은 도포를 두르고 얼굴을 깊이 감춘 채였다. 그들의 손에는 영적인 기운이 서린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칼, 창, 그리고 알 수 없는 빛을 내뿜는 옥패.

“지우야, 내 뒤에 있어.” 이경은 지우를 등 뒤로 감추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지우는 느꼈다. 숲의 모든 생명이 순간 숨을 멈추는 듯한 압도적인 기세였다.

“인간 여인을 탐한 죄는 네 승천의 길을 영원히 막을 것이다. 어리석은 이무기여, 네가 용이 되기를 포기했단 말인가!” 천명회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고, 그의 온몸에서는 푸른 비늘이 번뜩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의 손톱은 날카롭게 변했고, 피부 아래로 꿈틀거리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이것은 너의 선택이다! 인간의 정을 쫓다 천명을 저버린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자 지우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경의 선택이 자신의 존재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가 용이 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의 균형이 깨진다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었다.

“아니야!” 지우는 이경의 등 뒤에서 뛰쳐나오려 했다. “이경, 괜찮아! 나는… 나는 괜찮아….”

“닥쳐!” 이경의 목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내가 괜찮다.”

그의 말은 지우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짐하는 듯했다. 그는 지우를 다시 한 번 뒤로 밀어냈다. 이 순간, 이경은 오직 지우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승천의 길도, 천명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이 여인만을 살려야 한다는 원초적인 본능만이 들끓었다.

천명회의 일원들이 동시에 이경에게 달려들었다. 칼날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이경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그의 움직임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다.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적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상대는 넷. 그들의 협공은 빈틈이 없었다. 한 명이 이경의 앞을 가로막는 사이, 다른 한 명이 그의 옆구리를 노렸다. 이경은 거대한 팔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숲의 나무들이 뿌리째 흔들렸다.

지우는 숨을 헐떡이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인간의 눈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싸움이었다. 이경은 싸우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고.

그때, 천명회 우두머리가 손에 든 옥패를 하늘로 던졌다. 옥패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숲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결계를 형성했다. 푸른빛이 번쩍이는 결계 속에서 이경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용의 기운을 봉하는 결계다! 네 미약한 힘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이무기!” 우두머리의 목소리에 승리의 확신이 서렸다.

이경은 결계의 압박에 신음했다. 그의 어깨와 팔에서 푸른 비늘이 더욱 선명하게 돋아났고, 그의 얼굴마저도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만은 여전히 지우를 향해 있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맹렬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경…!” 지우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천명회 일원들이 결계 속에서 움직임이 둔해진 이경에게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칼날이 번뜩이며 그의 몸을 향했다. 이경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쉬이익!’ 그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칼날이 그의 살을 베었다. 검은 피가 튀어 올랐다.

그 피는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숲의 모든 풀들이 순간적으로 시들고, 땅이 메마르는 듯한 끔찍한 기운을 내뿜었다. 지우는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이경은 고통으로 신음했지만, 그의 눈은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감히… 나의 여인 앞에서… 피를 흘리게 한 죄….”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깊은 심연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거대한 포효였다. 이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결계가 흔들렸다. 마치 유리잔에 금이 가듯, 푸른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명회 일원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럴 수가! 결계가…!”

이경의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그의 어깨와 팔은 이미 푸른 비늘로 뒤덮였고, 얼굴은 용의 형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손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해 있었다. 거대한 꼬리가 숲의 바닥을 쓸자, 늙은 나무들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그는 용이었다. 비록 아직은 온전한 용이 아니었지만, 그 안에 잠재된 용의 힘은 이미 압도적이었다.

“나는… 이무기, 아니, 나는 용이다…!” 이경의 외침이 숲 전체를 흔들었다. “나의 길은 내가 정한다! 그 어떤 천명도, 운명도, 나의 여인을 건드릴 수 없다!”

그의 분노는 숲을 태울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타올랐고, 그 눈은 오직 지우만을 향해 있었다.

지우는 눈물을 흘렸다. 이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녀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지우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가 어떤 존재가 되든, 어떤 운명을 맞든, 자신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경!” 지우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결계의 틈을 비집고 나아가려 했다.

천명회 우두머리가 이경의 뒤를 노리고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이경의 심장을 향했다. “어리석은 놈!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과의 연정은 죄악이다!”

그 순간, 지우의 눈앞에 이경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안 돼!” 이경의 절규가 숲을 갈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우는 이경의 등 뒤로 몸을 던졌다.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꽂혔다.

“크흑…!”

고통스러운 신음이 지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은 이경을 향해 있었다.

“지우…!” 이경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그의 여인이, 자신 때문에…!

푸른 비늘로 뒤덮인 그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진 지우의 몸을 조심스럽게 받쳐 안았다. 핏빛이 그의 손을 적셨다. 뜨거운 피가 그의 차가운 비늘 위로 스며들었다.

붉은 피가 그의 팔 위로 흐르는 것을 보며, 이경의 눈동자가 완전히 검은 심연으로 변했다. 그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나의… 나의 여인에게… 감히….”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슬픔이 아닌, 순수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천명회 일원들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알았다. 그들의 칼날이 베었던 것은 단순히 인간의 살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의 심장에 새겨진 붉은 각인이었다.

이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결계를 산산조각 냈다. 숲의 모든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땅이 갈라지고, 거대한 폭풍이 일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피를 뒤집어쓴 채, 용은 광분했다.

이 지독한 금기를 깨부순 대가는 이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우의 의식이 흐릿해지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이경의 눈에서 섬광처럼 타오르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것은 용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