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내 집이, 내 집이 아니야!
“하아… 드디어 금요일이다!”
이서아는 등 뒤로 아파트 현관문을 닫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칙칙한 회색빛 빌딩 숲에서 온종일 시달리다 돌아온 그녀에게, 이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폭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려는데, 찌릿한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라, 리모컨 어디 갔지?”
분명 아침에 소파 위, 저 무늬 없는 쿠션 옆에 두었었는데. 서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소파 주변을 더듬었다. 없다. 테이블 위도, 바닥도, 심지어 TV 선반 위까지 확인했지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뭐야, 아침엔 분명 여기 있었는데… 설마 내가 착각했나?”
서아는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서류는 엉뚱한 곳에서 나오고, 립밤은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고. 본인이 워낙 건망증이 심하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했다.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리모컨은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다름 아닌, 화장실 변기 옆 작은 선반 위. 누가 봐도 이상한 위치였다.
“아니, 리모컨이 왜 여기서 나와? 내가 꿈에서 화장실에 들고 왔다가 놓고 갔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리모컨을 챙겨 나온 서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이 작은 공간에 숨을 곳이라곤 벽장과 화장실이 전부였다. ‘내가 분명 어딘가에 잘못 뒀을 거야…’ 합리적인 척 스스로를 설득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 밤, 서아는 냉동 피자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TV를 보며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늘 그렇듯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칫솔이 놓여있던 컵의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칫솔을 제자리에 놓으려는 순간, 컵이 갑자기 *툭* 하고 기울며 칫솔이 세면대 위로 떨어졌다.
“악! 깜짝이야!”
놀란 서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컵은 마치 누가 일부러 건드린 것처럼 서아의 손이 닿기도 전에 기울어진 뒤였다. 투명한 아크릴 컵이라 무게 중심이 불안정했나? 아니면… 본인이 너무 피곤해서 손이 미끄러진 건가?
“아니야,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잠이나 자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칫솔을 주워 컵에 다시 꽂은 서아는 후다닥 침실로 향했다. 그러나 침대에 눕고도 한참 동안, 칫솔 컵이 혼자 기울었던 그 순간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설마, 설마 귀신 같은 건 아니겠지? 도시 한복판, 고층 아파트에 무슨 귀신이…. 그녀는 오들오들 떨면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
다음 날 아침. 서아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으음… 벌써 아침이야?”
화면을 확인한 서아는 눈을 비비며 다시 시계를 보았다. 오전 5시 30분.
“뭐? 5시 반?! 아니, 내 알람은 7시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제 설정해둔 알람 시각은 분명 7시였다. 서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알람 설정 창을 눌렀다. 어젯밤 분명 7시로 맞춰두었던 알람이 5시 30분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그것도 매일 아침으로.
“미쳤나 봐, 내가 잠결에 뭘 누른 거지?”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상황이란 말인가. 평소 같으면 알람이 울려도 몇 번이나 껐다 켰다 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한 번에 깨어버렸다. 잠이 확 달아난 서아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에 잠이 오지도 않았다.
강제로 일찍 일어난 김에 일찍 출근할 준비나 해야겠다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릴 생각이었다. 토스터에 식빵을 두 조각 넣고 ‘약’으로 맞춰두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구수한 빵 냄새가 나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피융!*
갑자기 토스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틱!* 하고 꺼져버렸다. 깜짝 놀라 뚜껑을 열자, 시커멓게 타버린 식빵 두 조각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악! 내 빵!”
분명 ‘약’으로 맞춰두었는데. 설마 토스터가 고장 난 건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서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 작은 오피스텔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마치고, 현관을 나설 준비를 했다. 가방을 챙겨들고, 언제나처럼 현관 옆 작은 선반 위에 두었던 차 키를 집으려는데.
“어, 내 차 키… 어디 갔지?”
분명 어제 퇴근하고 돌아와서 여기에 두었는데. 서아는 가방 안을 뒤지고, 코트 주머니를 뒤지고, 급기야 어지럽게 놓여있는 책상 위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차 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말도 안 돼…! 나 오늘 진짜 중요한 미팅인데!”
서아는 머리가 아파왔다. 어제부터 뭔가 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사소한 실수라고 하기엔 뭔가 찜찜한 기분. 초조하게 집안을 뒤적이다, 문득 냉장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번쩍.*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높이 2m는 족히 되는 냉장고 꼭대기, 먼지 쌓인 곳에, 서아의 은색 차 키가 놓여 있었다.
“……?”
서아는 벙찐 얼굴로 냉장고를 올려다봤다. 본인의 키로는 냉장고 꼭대기에 물건을 올릴 수도 없었다. 사다리나 의자 없이는 불가능한 높이였다. 게다가 냉장고 위는 늘 먼지가 쌓여 있어, 보통은 물건을 두지 않는 곳이었다. 대체 누가, 왜, 언제, 차 키를 저기에 올려둔 거지?
“이건 진짜 내가 한 게 아니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왔다가 장난을 치고 간 건가? 하지만 현관문 잠금장치는 멀쩡했고, 창문도 닫혀 있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세상에, 설마… 설마 진짜 폴터가이스트 현상 같은 거야?”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제 칫솔 컵 사건부터, 리모컨, 알람, 토스트, 그리고 이 차 키까지. 사소하지만, 분명히 비정상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 너머 복도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서아 씨? 혹시 괜찮으세요? 아침부터 집이 좀 시끄러운 것 같아서요.”
이웃집 남자, 강지호 씨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차분하고, 늘 깔끔한 차림에, 이웃치고는 너무 잘생겨서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인 남자. 서아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목소리를 냈다.
“아, 네! 강지호 씨? 네, 괜찮아요! 그… 그냥 제가 좀 정신이 없어서요!”
차마 냉장고 위 차 키를 발견하고 소름 돋아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현관문을 열면 저 차분한 남자가 자신을 이상한 여자로 볼 게 뻔했다. 겨우 식탁 의자를 끌어와 발판 삼아 차 키를 회수한 서아는 후다닥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예상대로 멀끔한 차림의 강지호가 서 있었다. 아침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일찍 나가시는군요.”
“네,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요. 하하… 죄송해요,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서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지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아의 집 안쪽을 흘끗 보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서아 씨, 얼굴이 좀 하얗네요.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고요?”
걱정스러운 그의 말에 서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삐죽 내밀 뻔했다. 편찮은 게 아니라, 지금 이 집에서 귀신 들린 것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잠을 좀 설쳐서요.”
“아, 그러세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지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실 안쪽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아의 눈은 저절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으로 향했다. 몬스테라 잎이 축 늘어진, 오래된 화분이었다. 그 화분이 마치 진동이라도 하는 양 *덜컹, 덜컹* 떨리고 있었다.
“어…? 저거…”
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분을 가리켰다. 지호의 시선도 자연스레 화분으로 향했다. 순간, 화분 속 흙이 한 움큼 튀어 오르더니, 몬스테라 잎이 *툭* 하고 통째로 떨어져 버렸다. 화분은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적.
서아와 지호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서아의 눈은 ‘이것 봐요! 내가 미친 게 아니라고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지호의 눈은 ‘…세상에, 저 화분이 혼자 움직였다고요?’라고 묻는 듯했다.
“서아 씨… 저게… 혼자 움직인 겁니까?”
지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함께 미묘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서아를 이상한 여자로 보지 않았다. 대신, 뭔가 아주 흥미로운 사건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처럼 보았다.
“네! 봤죠! 저 어제부터 계속 이런다니까요! 냉장고 위에서 차 키가 나오고, 토스터가 혼자 타버리고, 알람도 멋대로 울리고, 심지어 칫솔 컵도 혼자 기울고… 이 집, 뭔가 이상해요!”
서아는 그동안 쌓아왔던 답답함을 일시에 토해냈다. 얼굴은 울상이 되어 있었지만, 지호는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서아를 향한 걱정보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탐구심 같은 것이 더 강하게 깃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유리 테이블 위에서, 서아의 립밤이 굴러떨어지더니 바닥에 *또르르* 소리를 내며 멈췄다. 립밤은 테이블 위에서 저절로 굴러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식으로?”
지호는 립밤을 내려다보더니, 픽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웃음소리에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푸핫. 서아 씨, 집에서 제법 스펙터클한 삶을 사시는군요.”
“웃지 마요!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고요! 저 무서워 죽겠다고요!”
서아는 울먹였다. 그러나 지호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보아하니 해코지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냥 심심한가 보네요.”
그의 무심한 한 마디에 서아는 더욱 기가 막혔다. 심심하다니! 자신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존재가 심심하다니!
“심심하면 딴 데 가서 놀라고 해요! 왜 남의 집에서 이러냐고요!”
서아는 결국 소리쳤다. 마치 눈앞에 유령이라도 있는 것처럼. 강지호는 그런 서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한발짝 서아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글쎄요. 어쩌면… 서아 씨가 마음에 든 걸 수도 있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실 창문 밖에서 갑자기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방충망이 저절로 위로 스르륵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방충망만 기이하게 움직였다. 서아와 지호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이 기이한 현상 속에서, 서아는 강지호의 말과, 그의 미소와, 그리고 방금 움직인 방충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태연한 걸까? 그리고 이놈의 폴터가이스트는 또 뭘 원하는 걸까?
오늘도 출근은 글렀다. 서아는 확신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강지호의 얼굴에는, 이제 막 시작될 로맨틱 코미디의 서막을 알리는 듯한, 묘한 기대감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아는, 그 기대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설렜나? 아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덜컹.*
그때, 거실 한구석에 놓여있던 작은 액자가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지며, 액자 속 인물의 얼굴이 바닥을 향해 엎어졌다. 서아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리고 그녀의 비명과 동시에, 강지호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요, 서아 씨. 아무래도 이 친구, 질투하는 것 같은데요?”
그의 시선은 액자가 떨어진 바닥, 그리고 액자 속의 인물을 향해 있었다. 서아는 그의 장난스러운 시선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폴터가이스트 현상,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 그리고, 이 옆집 남자는 왜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그녀의 아파트에서, 진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