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까마귀는 유리창을 깨지 않는다

찬란한 햇살이 도시의 회색빛 빌딩 숲을 비집고 들어와, ‘갤러리 헤르메스’의 육중한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눈부신 빛은 갤러리 27층, 박선우 화가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참극의 비극성을 감추지는 못했다. 한유리 경감은 삐걱이는 구두 소리를 애써 죽이며 현장으로 향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 쿵, 불규칙하게 울렸다.

“경감님,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그녀를 맞은 것은 강력반 소속 김 형사였다. 그의 얼굴엔 밤샘 수색과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좌절감이 역력했다.

“상황은?” 유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이미 스튜디오 내부를 꿰뚫어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말 그대로 미궁입니다. 피해자 박선우 화가는 오늘 새벽 3시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인은 칼에 의한 과다 출혈이고요.” 김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현장이 완벽한 밀실이라는 겁니다.”

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밀실? 창문은? 출입구는?”

“창문은 특수 방탄 유리로 되어 있고, 환기구는 성인 남성이 통과할 수 없는 규격입니다. 출입문은 안에서 이중 잠금 되어 있었고, 디지털 도어락도 외부에서 강제 개방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유일한 마스터키는 박 화가 본인만 가지고 있었는데, 시신 옆에서 발견됐습니다.”

유리의 뇌리에는 수십 년간 숱한 사건을 해결하며 쌓아온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밀실 살인. 이토록 고전적이고, 동시에 악랄한 트릭은 그녀를 언제나 시험에 들게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된 스튜디오는 평소 박선우 화가의 기괴한 작품 세계와는 사뭇 달랐다. 온통 흰색과 회색 톤으로 꾸며진 공간 한가운데, 캔버스 이젤과 함께 쓰러져 있는 남자가 박선우였다. 희뿌연 조명 아래, 그의 핏자국은 섬뜩할 정도로 선명했다. 그의 손에는 붓이, 그리고 바닥에는 날카로운 커터 칼이 떨어져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감식반 팀장이 고무장갑을 낀 채 설명했다. “CCTV 영상도 확인했습니다. 어젯밤 10시에 박 화가가 스튜디오에 들어간 후로, 오늘 아침 7시까지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내부 CCTV는 박 화가가 잠자리에 들기 전 꺼놓은 상태고요. 비상구도 잠겨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27층에는 정지하지 않았습니다.”

유리는 스튜디오 내부를 천천히 걸었다. 붓, 물감, 캔버스, 완성된 작품들.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마치 박선우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하지만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자살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유리가 물었다.

“상처 부위가 등 쪽입니다. 스스로 찌르기 힘든 각도입니다. 그리고 그의 유작으로 보이는 캔버스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발견됐습니다.” 감식반 팀장이 덮개로 가려진 캔버스 쪽을 가리켰다.

유리가 캔버스 덮개를 걷어내자, 거대한 캔버스 위로 거칠게 휘갈겨진 붉은 글씨가 드러났다.
**“까마귀가 유리창을 깬다.”**
그 아래로는 박선우 특유의 서명이 선명했다.

“까마귀…?” 유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때, 현장 한쪽에서 난데없는 소란이 들려왔다.

“저기, 감식반 여러분! 이 초코바는 왜 여기 있는 거죠? 범인은 이런 걸 먹지 않습니다!”

유리가 고개를 돌리자, 엉망으로 구겨진 셔츠에 흘러내린 안경을 쓰고, 한 손에는 뜯다 만 초코바를 든 채 스튜디오에 불쑥 들어서는 남자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잔뜩 질린 얼굴의 김 형사가 서 있었다.

“강진우 씨! 현장 훼손하시면 안 됩니다!” 김 형사가 당황하여 외쳤다.

“오, 훼손이요? 아뇨, 아뇨. 훼손이 아니라… 분석 중입니다. 이 초코바가 왜 여기에 떨어져 있는가를요.” 남자는 태연하게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음… 피스타치오 맛이군요. 이 화가, 피스타치오를 좋아했나?”

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진우. 이 시대 최고의 천재 탐정이라 불리는 남자. 괴짜 중의 괴짜, 하지만 그의 추리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경찰들에게 늘 골칫거리였다.

“강진우 씨!” 유리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사전 허가 없이 현장에 진입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강진우는 그제야 유리를 발견한 듯, 초코바를 든 채 헤실 웃었다. “어라? 한 경감님이셨군요. 음… 제가 약속 시간을 착각한 건가요? 아니면 한 경감님이 저를 너무 보고 싶어서 미리 오신 건가요? 뭐, 후자 쪽이 더 가능성이 높겠군요.”

유리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헛소리 말고, 당장 초코바 치우고 현장 감식에 방해되지 않게 움직이세요.”

“흐음, 헛소리라니. 여자의 직감은 무시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만.” 강진우는 피식 웃으며 스튜디오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은 초코바를 우물거리는 입과는 별개로, 이미 스튜디오 전체를 스캔하고 있었다.

“박선우 씨는… 까마귀를 싫어했군요.” 강진우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유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지금 이 사건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그건 피해자의 유작에 쓰여 있던 문구입니다. 뭘 안다고 벌써부터 단정 지으십니까?”

강진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죽은 박선우 화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음… 턱이 약간 비뚤어졌고, 왼쪽 눈꺼풀이 살짝 부어 있군요. 어젯밤 숙면을 취하지 못했거나, 어딘가 불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혹시, 치통을 앓고 있었나요?”

김 형사가 놀라며 외쳤다.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이틀 전에 병원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강진우의 추리력은 매번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럼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강진우는 자만에 찬 표정으로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스튜디오의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밀실이라… 이 고전적인 트릭을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그는 창문 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무언가를 긁어냈다. 그리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묘한 냄새가 나는군요. 마치… 아주 미세한 연기처럼.”

감식반 팀장이 급히 다가갔다. “저희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만…”

강진우는 작게 웃었다. “그건 여러분의 코가 평범하기 때문이죠. 저는 이 향기를 맡을 때마다, 제 어릴 적에 쓰던… 아주 오래된 연필 깎이 기계가 생각납니다.”

유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강진우를 바라봤다. “강진우 씨. 지금 사건 현장에서 개인적인 향수병에 젖으신 겁니까?”

“아뇨, 아뇨. 한 경감님. 이 연필 깎이 기계는, 아주 특별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강한 마찰을 겪으면 이와 같은 독특한 향을 내죠.” 강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누군가가 아주 미세한 홈을 파낼 때처럼.”

그는 창문 프레임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 창문은 외부에서 강제로 열린 흔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조작된 흔적은 있습니다.”

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작이라뇨? 이중 잠금 장치가 외부에서 열릴 수는 없습니다.”

“물론이죠. 완벽한 밀실은 범인이 *밖으로 나간* 후에 완성됩니다. 중요한 건, 범인이 *어떻게 밖으로 나갔느냐*가 아닙니다. 범인이 *어떻게 이 문을 닫았느냐*죠.” 강진우가 빙긋 웃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본 듯 여유로웠다. “그리고 그 트릭은, 이 까마귀가 유리창을 깬다는 문구와 완벽하게 연결됩니다.”

그는 손에 든 초코바를 깨물며 유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한 경감님. 범인은… 아주 작은 까마귀였습니다.”

유리는 그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작은 까마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녀의 머릿속은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찼지만, 강진우의 눈빛은 이미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지나, 스튜디오 한쪽 벽에 걸린 박선우 화가의 기괴한 작품 하나에 멈춰 있었다. 캔버스에는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검은 새 한 마리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유리창을 쪼고 있었다.

“자, 이제… 이 작은 까마귀를 잡으러 가볼까요?” 강진우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유리는 그 웃음이 소름 끼치도록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괴짜 탐정과의 수사는, 분명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밀실의 진실만큼이나, 그의 기행도 그녀를 더 깊은 미궁으로 빠뜨릴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