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 심장의 미궁 (鋼鐵心臟의 迷宮)
## 1화. 증기와 회색 도시의 밀실
새벽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제국 수도 아르카디아는 거대한 강철 심장처럼 웅웅거렸다. 수십 겹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끓어오르는 증기가 거친 숨을 내쉬는 듯한 쉭쉭거림, 그리고 하늘을 수놓은 비행선들의 낮고 둔탁한 엔진음이 도시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황동과 구리로 치장된 고층 건물들은 짙은 안개와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처럼 솟아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새벽을 좋아했다. 잠에 취한 도시의 소음은 아직 불협화음이 되지 못하고 몽롱한 교향곡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침대에서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다급한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선생님! 유한 선생님! 큰일입니다!”
늘상 허둥대는 재하의 목소리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태엽식 시계는 정확히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이른 시간에 재하가 찾아올 일은 대개 세 가지 중 하나였다. 골동품 경매에서 엄청난 희귀 부품이 나왔거나, 그의 태엽 장치 인형이 오작동을 일으켰거나, 혹은… 살인 사건.
삐걱이는 나무 마루를 밟고 문을 열자, 재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덥수룩한 갈색 머리는 평소보다 더 엉망이었고, 눈은 잠 한숨 못 잔 사람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손에는 아직 식지 않은 듯한 차 한 잔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새벽부터 난리법석인가?” 내가 묻자 재하는 허둥지둥 손에 든 컵을 내밀었다.
“아, 차 드십시오, 선생님! 방금 식지 않은 겁니다! 그보다, 시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고요!”
나는 그의 손에서 컵을 받아 들었다. 향긋한 홍차 향이 코끝을 스쳤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도 내 취향을 잊지 않는 재하는 제법 쓸 만한 조수였다.
“엄청난 사건이라. 또 누구 성에 박힌 대도금고가 사라지기라도 했나?”
“아닙니다! 밀실 살인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밀실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시경의 탐정들은 모두 머리를 싸매고 있고, 급기야 프랭크 경감님께서 직접 선생님을 찾아달라고…”
밀실 살인. 그 단어에 나의 뇌리 속 톱니바퀴들이 조금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따분하고 예측 가능한 도시에서, 그런 불가능한 사건은 오랜만에 찾아온 흥밋거리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서재로 걸어 들어갔다. 벽면 가득한 서가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황동빛 계측기와 정밀한 태엽 장치들은 이 방이 단순한 서재가 아님을 말해주었다. 나는 낡은 가죽 의자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셨다.
“자세히 말해 보게. 피해자는 누구고,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
재하는 잔뜩 긴장한 채 내 앞을 서성였다.
“피해자는… 제국 상공회의소 부회장 라그너 백작입니다. 그… ‘황금의 연금술사’라 불리던 분 말입니다. 어젯밤, 자신의 개인 서재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서재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눈을 감고 라그너 백작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자.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물 중 하나. 그런 이가 밀실에서 살해당했다니.
“밀폐라… 창문은? 문은? 환기구는?”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창문은 철창살로 막혀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요. 심지어 서재로 통하는 유일한 문은 백작만이 여는 특수한 증기 압력 자물쇠로 잠겨 있었답니다. 유리는 모두 완벽했고, 환기구는 너무 좁아 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재하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에 사건 현장을 그려보았다. 완벽히 밀폐된 공간, 안에서 잠긴 문, 외부 침입 흔적 없음. 그리고 살해당한 백작. 보통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랭크 경감 말로는, 심지어 외부에서 문을 강제로 뜯어낸 흔적도 없었고, 시신이 발견된 후에도 자물쇠는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부검의는 사망 시각이 자정 무렵으로 추정된다고 하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하게, 재하. 흥미로운 퍼즐이군. 프랭크 경감에게 전하게. 곧 도착할 테니,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라고.”
***
라그너 백작의 저택은 아르카디아에서도 손꼽히는 부유층 거주지에 위치해 있었다. 높게 솟은 첨탑과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들은 마치 하늘에 닿으려는 듯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백작의 저택은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증기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위치한 서재 앞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는 이미 시경의 수사관들로 북적였다. 복도 한가운데에는 덩치 큰 프랭크 경감이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콧수염은 평소보다 더 축 처져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유한 선생, 오실 줄 알았습니다.”
“경감. 이른 아침부터 소동이더군.”
“소동 정도가 아닙니다, 선생. 이건… 이건 악몽입니다.” 프랭크 경감은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시피, 현장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철창살 뒤로 단단히 걸쇠가 채워져 있었죠. 게다가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는 조금의 손상도 없었습니다. 시신은 서재 중앙에서 발견되었고, 옆에는 살해 도구로 보이는 단검이 떨어져 있었지요. 단검에는 오직 백작의 지문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서재 문을 응시했다. 육중한 강철 문은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그 견고함은 쉬이 깨지지 않을 벽처럼 느껴졌다. 문고리 근처에는 복잡한 증기 압력 게이지와 황동 레버가 달려 있었다.
“문을 강제로 뜯어낸 흔적은 없었나?” 내가 물었다.
“전혀요. 증기 압력 자물쇠는 외부에서 강제로 해제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백작 본인이 직접 조작하거나, 백작의 전용 열쇠로만 해제할 수 있지요. 문이 열린 건 시신을 발견한 하인이 백작의 침실에서 전용 열쇠를 찾아낸 후였습니다.”
“하인이라…” 나는 콧잔등을 긁었다. “백작은 평소에 그 열쇠를 침실에 보관했나?”
“네. 아주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곳이라며 늘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재하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랐다. 서재 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공기 중에 미묘하게 비릿한 철 냄새가 맴돌았다.
방 중앙에는 덩치 큰 라그너 백작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셔츠는 붉은 얼룩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은 공포에 질린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마치 무언가를 움켜쥐려다 만 듯 허공에 굳어 있었다. 백작의 시신 옆에는 화려한 은장 단검이 떨어져 있었다. 단검의 손잡이는 정교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날카로운 칼날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면 가득한 서가, 거대한 태엽식 지구본, 정교하게 세공된 망원경,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황동 샹들리에.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창문은 두껍고 튼튼한 철창살로 가려져 있었고, 창틀에는 단단한 걸쇠가 채워져 있었다. 외부에서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프랭크 경감이 내 옆에 서서 말했다. “선생. 어떻습니까? 완벽한 밀실입니다. 자살일 가능성도 검토했지만… 등에 칼이 박혀 있었습니다. 백작이 스스로 등에 칼을 꽂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백작의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등 뒤에서 심장을 관통한 듯 깊게 박힌 상처는 확실히 자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시신 주변을 맴돌며 바닥, 가구, 벽, 그리고 천장을 꼼꼼히 살폈다. 재하는 수첩을 꺼내 들고 내 움직임을 쫓았다. 나의 시선은 서재의 모든 것을 스캔하듯 훑어갔다.
“증거는?” 내가 묻자 프랭크 경감은 한숨을 쉬었다.
“외부인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문은 오직 백작의 것만 나왔고, 발자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먼지조차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샹들리에는 태엽 장치로 작동하는 정교한 기계식 조명이었다.
“이 샹들리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했지?”
프랭크 경감은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까지는… 하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마 정기적으로 청소했을 겁니다.”
나는 샹들리에의 복잡한 톱니바퀴와 황동 프레임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다시 시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작의 오른손이 무언가를 움켜쥐려다 만 듯한 자세.
“재하. 백작의 손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나?”
재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 선생님. 시경에서 이미 확인했습니다만…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허공을 움켜쥔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나는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했다. 모든 사람이 놓치고 있는, 아주 작은 진실의 조각.
나는 다시 한번 서재의 전체적인 구조를 머릿속에 그렸다. 완벽하게 닫힌 공간. 그러나 살인자는 존재했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어떻게 들어와 어떻게 나갔을까?
문, 창문, 환기구. 이 세 가지가 아닌 다른 경로가 존재할까? 아니면…
나는 백작의 시신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프랭크 경감. 이 밀실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나의 말에 재하와 프랭크 경감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무슨 말씀이신지…?” 프랭크 경감의 목소리에는 의심과 희망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나는 백작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살인자는… 애초에 이 방에서 나가지 않았으니까.”
복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충격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재하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프랭크 경감은 콧수염을 매만지던 손을 멈췄다.
“네…? 나가지 않았다니요? 하지만 저희가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는 백작 시신밖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살인자는 아직 이 방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증기와 강철의 도시, 아르카디아의 거대한 미궁 속에서, 유한은 첫 번째 톱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견고한 밀실의 비밀은 서서히 해체될 터였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이미 보이지 않는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