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사막의 조우
숨이 턱 막히는 열기와 찢어질 듯한 경보음이 조종석을 가득 채웠다. 눈앞의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붉은 사막 위를 질주하는 적 기체의 잔상이 흐릿하게 번졌다. 류하는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틀었다. 기체 ‘섬광’이 마치 살아있는 철새처럼 붉은 모래폭풍을 뚫고 솟구쳤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이 고막을 두드렸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밤의 그림자’ 놈들! 혼자서는 무리라고 했잖아!”
통신 채널에서 들려오는 아군의 절규는 류하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눈앞의 적, 짙은 흑색 외피에 보랏빛 섬광을 뿜어내는 ‘심연의 추적자’ 기체에 집중했다. 인류 연합과 ‘그림자의 아이들’ 종족은 수백 년간 서로를 멸절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 증오는 피와 살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았다. 저들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고, 태양의 후예인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이형의 존재였다.
류하는 ‘섬광’의 기동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적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적 기체는 마치 기생하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며 회피했지만, 류하의 손끝에서 발사된 플라즈마 캐논이 적의 날개를 스쳤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고, 흑색 외피가 녹아내리며 파편들이 붉은 사막 위로 흩어졌다.
“한 방 더!”
류하의 입술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섬광’의 주포가 뿜어낸 에너지 탄환이 정확히 적 기체의 심장을 꿰뚫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보랏빛 불꽃이 사막 하늘을 수놓았다. 승리였다.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 쾌감은 잠시였다.
“섬광, 기체 이상 감지! 좌측 날개 손상 심각! 비상 착륙 모드 전환!”
인공지능 비서의 경고음이 울렸다. 류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의 집중 사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던 모양이다. 제기랄, 너무 무리했어.
‘섬광’은 마치 날개를 잃은 거대한 새로 변한 듯 붉은 사막 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류하는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붙들었다. 착륙은 실패. 거대한 굉음과 함께 기체가 지면을 갈고 미끄러졌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치솟아 올랐고, 충격이 온몸을 때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조종석 내부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부러진 패널, 꺼져버린 스크린, 삐걱거리는 금속음.
“류하, 괜찮습니까? 응답하십시오!”
통신 채널 너머에서 아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직거리는 노이즈 때문에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류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셨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비상 해치 레버를 당기자,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리며 붉은 모래와 뜨거운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기체 밖으로 기어 나온 류하는 붉은 사막 위에 거꾸로 박힌 ‘섬광’을 바라봤다. 망연자실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불타는 석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언덕만이 그를 맞이했다. 여긴… ‘그림자 종족’의 영역 깊숙한 곳이었다. 인류 연합의 정찰 기체조차 쉽사리 넘어오지 않는 곳.
‘망했군. 제대로 망했어.’
그때였다.
삭막한 모래 언덕 너머, 섬광의 잔해가 뿌려진 곳에서 낯선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류하는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블래스터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타는 잔해 옆에, 그의 기체에 격추당했던 ‘심연의 추적자’가 아닌, 또 다른 기체가 추락해 있었다. 훨씬 작고 날렵한 형태.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 있는… 존재.
“설마…”
류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모래를 밟는 그의 군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잔해에 가까워질수록 형체는 더욱 또렷해졌다.
그것은 ‘그림자의 아이들’ 종족의 생명체였다.
류하는 블래스터를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의 적을 상대했지만, 항상 그들은 기체 안에 있었다. 이렇게 맨몸으로 조우한 것은 처음이었다. 인류 연합의 교본에는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림자의 아이들’은 지독한 독성을 가진 존재이며, 인류의 생체 반응을 교란하고 영혼을 잠식하는 악마와 같다고.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내용이었다.
쓰러진 존재는 푸른빛의 혈액을 흘리며 축 늘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그들의 피부는 태양의 마지막 잔광을 받아 반사되며 짙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사지에, 인간과 흡사하지만 훨씬 유려한 곡선을 가진 몸. 그리고 등 뒤에는 마치 나비처럼 접혀 있는, 거대한 날개 한 쌍이 보였다. 그 날개는 마치 짙은 밤하늘을 옮겨놓은 듯, 셀 수 없는 별들이 박힌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류하는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인류 연합이 배포한 홀로그램 이미지 속 ‘그림자의 아이들’은 섬뜩하고 기괴한 형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그녀’라고 느껴졌다. 류하의 기체 파편에 맞아 날개가 찢겨나가고 푸른 피를 흘리고 있었음에도, 그 모습은 끔찍하기는커녕 묘하게 신비로웠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 피부에 살짝 솟아오른 듯한 광대뼈, 가늘고 긴 눈매, 그리고 코는 없고 입술은 옅은 자주색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깊은 밤하늘을 닮은 듯한 검은 눈동자. 그 안에는 마치 살아있는 별처럼 은은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별빛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고통으로 인해 흐려진 초점 속에서도, 그녀의 눈은 류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증오도, 공포도 아닌, 그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류하는 블래스터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인류의 적. 눈앞의 이 생명체는 그의 동족을 죽이고 인류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귀였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그제야 류하는 깨달았다. 그녀의 존재가, 홀로그램 이미지 속 괴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을. 그녀는 고통받고 있었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 순간, 류하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늘 위에서, 익숙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림자의 아이들’의 대형 수송선이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배가 붉은 모래 폭풍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동족을 찾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 곧이어 인류 연합의 추격 기체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 또한 잔해를 보고 몰려오는 것이리라.
류하는 패닉에 휩싸였다. 그는 인류 연합에게도, ‘그림자의 아이들’에게도 발각되어서는 안 됐다. 지금 발각되면 그는 두 종족 모두에게 제거될 것이 분명했다.
눈앞의 쓰러진 ‘그림자의 아이들’ 생명체. 그녀의 별빛 같은 눈동자가 다시 한번 류하를 향했다. 그 눈빛은 이제 희미한 간청을 담고 있는 듯했다.
류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바위가 바람에 깎여 기묘한 형태로 서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두 종족의 무자비한 추격자들 사이에서, 그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인류의 적을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류하는 망설임 없이 블래스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쓰러진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무기를 쥐는 대신,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마음속에서, 수백 년간 쌓여온 증오와 편견의 장벽이 마치 붉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미지의 존재가 인류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그리고 가장 금지된 선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