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검은 숨결이 스며드는 곳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제7고서고.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책들이 잠든 곳’이라는 설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곳은 지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차갑고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천장에는 마력으로 밝혀지는 희미한 수정 등불이 몇 개 걸려 있었지만, 그 빛은 거대한 어둠을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치 빛이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공간처럼, 모든 것이 잿빛 그림자에 갇혀 있었다.

“으으, 또 감기 걸리겠네.”

유진은 얇은 어깨를 스스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하필 자신에게 이 낡고 먼지투성이인 고서들을 정리하는 임무가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화려한 실험실이나 햇살이 드는 도서관에서 신비로운 마법을 익히고 있을 터인데. 유진은 자신이 맡은 이 ‘고대 문명 마법 유물 분류 및 재배치’라는 명목의 임무가 사실은 ‘기피 임무’에 가깝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손끝에 묻어나는 끈적한 먼지를 털어내며, 유진은 한 손으로 거대한 양피지 뭉치를 들어 올렸다. 고대 칼레미르 왕국의 기록물. 굳이 마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쇠퇴한 유물들이었다.

“이게 대체 몇 세기 전 물건이야….”

책장에 꽂힌 양피지들을 정리하던 중, 유진의 손끝에 닿은 것이 있었다. 일반적인 양피지와는 다른, 차가우면서도 끈적한 감촉. 마치 오래된 피가 굳어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불쾌한 느낌에 손을 떼려다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이질적인 표면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그것은 책이 아니었다. 책장과 책장 사이, 깊숙한 틈새에 숨겨져 있던 아주 얇고 길쭉한 형태의 나무 조각이었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고, 겉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문자들이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 단순히 낡은 나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정교하고, 또 너무나도 불길했다.

순간, 유진의 등골에 차가운 기운이 훅 끼쳐왔다. 고서고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른,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숨결 같은 싸늘함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희미한 등불만이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착각이겠지.’

고개를 젓고 나무 조각을 뽑아내려던 순간이었다.

*스르륵…*

나무 조각이 꽂혀 있던 틈새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젖은 천이 바닥을 스치는 듯한 소리였다. 유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고서고의 어떠한 소음과도 달랐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호기심, 혹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이 그녀를 움직였다. 유진은 나무 조각을 완전히 뽑아내자마자, 손전등 마법을 사용해 틈새 안쪽을 비추었다.

틈새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 이건…!’

유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틈새의 끝은 견고한 벽이 아니었다. 어둡고 깊은 통로로 이어지는 입구였다. 벽돌과 시멘트로 대충 막아둔 듯한 흔적이 보였으나, 그 틈새를 비집고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둠 그 자체인 듯한 검은 그림자. 마치 심연이 틈새를 통해 숨을 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통로 안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읊조림처럼, 아주 낮고 기이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소리는 유진의 뇌리를 파고들어 가장 깊은 공포를 자극했다.

“누… 누구 없어요?”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더욱 짙어진 어둠과, 심장을 옥죄는 듯한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그녀는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통로는 분명 학원 지도에 없었다. 금지된 공간, 혹은 존재해서는 안 될 공간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발은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나무 조각에 박혀버렸다. 손에 든 그것은 마치 심장처럼 미세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각 표면에 새겨진 기묘한 문자들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붉은 나무 조각에서 피어나는 옅은 붉은빛.

유진은 그 빛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나무 조각을 통로 안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통로 안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그림자가 마치 그녀의 손짓에 반응이라도 하듯 꿈틀거리며 더욱 거세게 밀려들었다. 동시에 속삭임도 더욱 또렷해졌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비명과 탄식,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뒤섞인 듯한 소리였다. 유진의 머릿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소리가 들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수많은 존재들이 한꺼번에 절규하는 듯한 그 소리는 고통스러웠다.

유진은 고개를 숙여 귀를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통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발목을 휘감는 것을 보았다. 차갑고 끈적한 기운이 발목을 조여왔다.

“흐읍!”

유진은 비명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림자는 뱀처럼 빠르게 그녀의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다. 숨이 막혔다. 이 그림자는 그저 어둠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무언가였다.

그녀의 손에서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쨍그랑!* 하고 고서고의 고요함을 깨는 소리와 함께 나무 조각은 통로 입구 앞에 떨어져 빛을 잃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유진의 허벅지를 지나 허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차가운 기운이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공포로 질식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림자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번쩍하고 나타났다. 아주 작지만, 마치 심연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듯한 섬뜩한 빛이었다. 그 눈동자는 유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기다려왔던 먹잇감을 만난 것처럼.

동시에 귀에 박히는 소리. 환청이라 생각했던 그 속삭임이, 이제는 분명한 하나의 의지로 유진의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_돌아와라…_**
**_나의 아이야…_**
**_지하… 나의 품으로…_**

그 목소리는 유진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러나 뼛속 깊이 익숙한 듯한 기묘한 감각. 그녀의 의식이 흐려졌다. 눈앞의 고서고가 흔들리고, 희미한 수정 등불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듯했다.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목을 감쌌다. 차가움과 동시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유진은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통로로 향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완전한 형태, 그러나 그 자체로 끔찍한 위압감을 풍기는 존재.

그것은 마치… 학교 지하에 숨겨진, 살아있는 재앙 그 자체처럼 보였다.

유진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뇌리에 박힌 것은, 학교의 휘황찬란한 교훈이 적힌 현판이 머릿속에서 비웃는 듯 춤추는 환상이었다.

‘지혜와 영광은… 어둠에서 시작되나니….’

하지만 그녀가 보았던 것은, 지혜나 영광이 아닌, 순수한 공포와 절망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진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그녀는 검은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어 버렸다. 고서고는 다시 정적에 잠겼다. 오직 바닥에 떨어진 검붉은 나무 조각만이 희미하게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는 파수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