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메마른 바람이 닳아버린 도시의 뼈대 사이를 휘돌아 나갔다. 낮게 깔린 회색빛 하늘 아래, 유나는 작은 손을 잡고 묵묵히 걸었다. 한때는 번잡했을 아스팔트 도로는 이제 뿌리 깊은 풀과 이름 모를 덩굴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 길 위에 남아있는 유일한 흔적이라곤, 녹슨 차량의 잔해들뿐이었다.

“콜록, 콜록.”

지훈의 마른기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유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훈의 얼굴은 며칠 전부터 미열에 상기되어 있었고, 작은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괜찮아, 지훈아?”

유나가 손등으로 지훈의 이마를 짚었다. 여전히 뜨거웠다. 맑은 눈망울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응, 누나. 괜찮아요.”

애써 괜찮은 척 하는 지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유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지훈의 작은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며칠 전 찾아낸 낡은 수첩에 적혀 있던 희미한 글씨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래된 약초 도감의 일부인 듯한 그것에는, ‘쇠뜨기’라는 이름과 함께 기침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폐허가 된 병원 건물 뒤편 언덕에 많았다는 작은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거기 가면 지훈이 기침 싹 낫게 해 줄 약초가 있을 거야.”

유나는 지훈을 안심시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인 병원 건물은 한때는 도시의 심장부였던 곳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멀리서도 앙상한 갈비뼈처럼 드러난 철골 구조가 보였다. 도심의 외곽에서 주로 생활하던 유나와 지훈에게, 이곳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오래된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바람 소리만이 길동무였다. 흙먼지가 풀썩이는 길을 걷던 지훈이 다시 한번 기침을 터트렸다. 유나는 등 뒤의 낡은 배낭을 고쳐 메며 주위를 살폈다. 이 근방에는 다른 생존자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폐허 속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야생 동물, 무너져 내리는 건물 잔해, 혹은 자신들처럼 자원을 찾아 헤매는 다른 이들.

낡은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위용이 있었다. 넝쿨과 이끼로 뒤덮인 외벽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피부 같았다. 유나는 건물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목표는 건물 안이 아니라, 건물 뒤편에 있는 언덕이었다. 낡은 수첩에 따르면, 그곳은 과거에 약초를 키우던 작은 정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 건물의 왼쪽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발밑의 흙이 축 꺼지는 것을 느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유나의 발이 깊숙이 빠져들었다.

“누나!”

지훈의 비명 같은 외침에 유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발을 빼보니, 낡은 시멘트 바닥이 그대로 푹 꺼져 있었다. 아래는 어둠만이 보였다. 오래된 지하실이나 붕괴된 배수구 같았다. 자칫 잘못했으면 둘 다 그대로 추락할 뻔했다.

“조심해, 지훈아. 손 놓지 마.”

유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지훈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위태로운 균열이 발밑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유나는 최대한 바깥쪽으로, 즉 풀이 무성하게 자라 단단해 보이는 흙길 쪽으로 붙어 걸었다. 몇 걸음 옮기자 삐걱이는 소리가 멈추고 단단한 땅이 느껴졌다.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침내 건물 뒤편에 다다랐을 때, 유나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낡은 수첩의 그림처럼, 햇볕이 잘 드는 작은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 비탈에는 초록색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중에는 분명 ‘쇠뜨기’도 섞여 있었다. 뾰족한 줄기와 층층이 쌓인 마디가 특징적인 그 풀은, 마치 작은 소나무 같았다.

“쇠뜨기다!”

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아픈 것도 잊은 듯 흥분한 지훈이 성큼성큼 언덕으로 다가가려 했다.

“잠깐만, 지훈아. 여기도 조심해야 해.”

유나는 지훈을 붙잡고 먼저 언덕으로 올라섰다. 언덕은 생각보다 경사가 가팔랐고, 흙은 비에 쓸려 군데군데 패여 있었다. 게다가 언덕의 정상은 병원 건물의 부서진 외벽과 맞닿아 있었다. 위태롭게 매달린 콘크리트 조각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위협적이었다. 유나는 신중하게 발을 디뎠다.

‘쇠뜨기’는 언덕 중턱,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무리 지어 자라고 있었다. 가장 풍성하고 싱싱해 보이는 것들을 찾아 유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한 뿌리, 한 뿌리, 땅에 박힌 줄기를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지훈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유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작은 얼굴에는 기침이 멎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유나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그때, 유나가 기대고 있던 낡은 벽에서 ‘툭’하는 소리가 났다. 유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바로 머리 위,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콘크리트 조각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누나, 조심해요!”

지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유나는 몸을 휙 돌리며 언덕 아래로 몸을 던졌다. 거의 동시에 ‘콰르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낡은 콘크리트 조각이 유나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져 내렸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유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잔해는 그녀를 비껴갔다. 흙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키며 숨을 골랐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손안에는 다행히 뽑아낸 쇠뜨기들이 꽉 쥐어져 있었다.

“누나,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지훈이 울먹이며 달려왔다. 그의 작은 몸이 와락 안겨들었다. 유나는 지훈을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이 봐, 쇠뜨기 잔뜩 찾았지?”

유나는 지훈에게 쇠뜨기를 보여주며 애써 웃었다. 지훈은 유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흙먼지가 살짝 묻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유나와 지훈은 임시 거처로 돌아왔다. 낡은 버스 내부를 개조한 그곳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유나는 조심스럽게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타고 남은 나무 조각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꽃을 일으켰다.

유나는 깨끗하게 씻은 쇠뜨기를 낡은 냄비에 넣고 물을 부었다. 이내 은은한 풀 내음이 버스 안에 퍼졌다. 냄비 속의 물이 팔팔 끓어오르자, 쇠뜨기에서 우러나온 녹색 빛이 더욱 진해졌다.

“자, 따뜻할 때 마셔야 해.”

유나가 낡은 양은 컵에 쇠뜨기 차를 따라 지훈에게 건넸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컵을 받아 들고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마셨다. 쌉쌀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유나는 배낭에서 아껴두었던 건포도와 오래된 비스킷 조각을 꺼냈다. 투박하지만 달콤한 건포도는 지친 몸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지훈은 쇠뜨기 차를 마시며 비스킷을 오독오독 씹었다. 왠지 모르게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누나, 이거 진짜 약 같아요. 목이 따뜻하고, 훨씬 편안해졌어요.”

지훈의 말에 유나는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기침이 조금 잦아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불꽃이 흔들리는 작은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바깥은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했지만, 이 작은 공간에는 따스한 온기와 잔잔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지훈은 쇠뜨기 차를 마신 후, 잠시 후 유나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버스 안에 고요하게 울렸다. 유나는 잠든 지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어린 지훈의 어깨에 너무 많은 무게를 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있기에 이 황폐한 세상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보이는 도시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고요하고, 거대했다. 저 안에 또 어떤 위험과 어떤 작은 희망이 숨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나는 알았다. 내일 아침, 태양이 다시 떠오르면, 자신은 다시 지훈의 손을 잡고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서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작은 쇠뜨기 한 포기처럼, 언젠가 다시 희망이 싹틀 것이라는 것을.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희미해진 불씨가 잦아드는 가운데, 유나는 조용히 다음 날의 계획을 떠올렸다. 식량은 다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내일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강줄기를 따라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했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했지만, 유나는 익숙한 불안감 속에서도 굳건하게 내일을 준비했다. 작은 버스 안, 지훈의 옅은 숨소리와 유나의 심장 소리만이 조용히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