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국력 427년, 겨울의 끝자락. 한때 찬란했던 황금빛 수도는 이제 차가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가 탐욕과 부패로 썩어 들어가는 동안, 변방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반란의 불씨는 마침내 도시의 그림자 깊숙이 스며들었다. 오늘 밤, 그 불씨가 또 한 번 위험천만한 도전을 감행하려 했다.

“아니, 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저긴 좀… 너무하잖아요?”

어둠 속을 잽싸게 가로지르던 사내, ‘제이’가 불평 어린 목소리를 냈다. 그의 등 뒤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또 다른 사내, ‘카이’가 나직이 읊조렸다.

“불평할 시간에 발이나 놀려라. 제국 경비대 순찰이 코앞이다.”

“제 발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저기, 저 높이 좀 보십시오!”

제이가 가리킨 곳은 황제의 비자금 창고로 알려진, 견고한 요새나 다름없는 별궁의 벽이었다. 족히 10장은 될 법한 높이, 그 위로 촘촘히 박힌 날카로운 가시 철사,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감시탑의 불빛까지. 언뜻 보기에도 인간의 접근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저기에 무슨 거미줄이라도 쳐서 올라가라는 겁니까? 아님 제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시는 거예요?”

제이의 투덜거림에도 카이는 묵묵히 허리춤에서 얇은 갈고리와 밧줄을 꺼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이미 별궁의 가장 취약해 보이는 지점을 꿰뚫고 있었다.

“네가 거미가 아닌 건 분명하니, 나중에 실컷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될 거다.”

“이봐, 카이. 잔말 말고 집중해.”

그때,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아린’. 반란군 ‘새벽의 별’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이 모든 계획의 총책임자였다. 그녀는 검은색 두건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제국이 황금빛 오락장에 돈을 쏟아붓는 동안, 시민들은 굶주리고 있어. 저 안에는 백성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더러운 돈이 쌓여 있을 거야. 반드시 가져와야 해.”

아린의 말에 제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한없이 진지해지는 아린의 카리스마에 늘 압도당하곤 했다.

카이는 아린의 명령에 따라 망설임 없이 갈고리를 던졌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갈고리가 별궁 벽의 틈새에 정확히 박혔다. 그는 능숙하게 밧줄을 고정하고, 먼저 벽을 타기 시작했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몸은 벽에 착 달라붙어 순식간에 높이 솟아올랐다.

“제이, 다음은 너다.” 아린이 제이에게 손짓했다.

“네… 넷!” 제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밧줄을 잡았다. “젠장, 제가 고소공포증이 약간 있다는 걸 깜빡했어요… 아주 약간요!”

그가 겨우 몇 미터 오르자, 아래에서 ‘크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제국 경비대의 마차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왔다.

“젠장, 벌써 온 건가?” 아린이 이를 악물었다.

카이가 위에서 급히 외쳤다. “제이! 빨리 올라와! 아린, 엄폐!”

제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발을 놀렸다. 그러나 이미 고소공포증과 다가오는 경비대의 압박감에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어, 어어… 발이… 미끄러져요!”

그 순간, 그의 손에서 밧줄이 풀리는가 싶더니 몸이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제이!” 아린이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간신히 추락하는 제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쿵! 충격이 그녀의 어깨를 강타했다.

“하아… 하아… 대, 대장님… 죄송합니다…” 제이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아린은 이를 악물었다. 한 손으로는 제이의 다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의 작은 돌출부를 간신히 움켜쥐고 버티는 중이었다. 경비대 마차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이! 서둘러!” 아린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카이는 이미 벽을 타고 거의 꼭대기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지체 없이 밧줄을 당겨 갈고리를 회수하고, 다른 밧줄을 꺼내 다시 던졌다. 이번엔 정확히 아린의 어깨 위를 지나 제이의 허리춤에 감겼다.

“꽉 잡아! 당긴다!” 카이의 짧은 외침과 함께 밧줄이 팽팽해졌다. 아린은 그제야 제이를 놓아주었다. 제이는 마치 물고기가 낚이듯 허둥지둥 벽 위로 끌려 올라갔다.

“크윽…!” 아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벽에 기대섰다. 경비대 마차가 바로 그녀 옆을 지나쳤지만, 어둠 속에 숨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별궁 담장 안쪽에 무사히 착지했다.

“제이, 너 진짜… 한 번만 더 그랬다간 내가 널 저기 탑 꼭대기에 매달아 버릴 줄 알아.” 아린이 숨을 헐떡이며 제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다시는 고소공포증 같은 거 안 걸리겠습니다!” 제이가 고개를 숙였다.

카이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고소공포증이 네 마음대로 걸리고 안 걸리고 할 수 있는 거였나?”

“웃지 마, 카이. 너도 고생했잖아.” 아린이 카이를 노려봤다.

카이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덕분에 팔 운동은 제대로 했다.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저쪽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별궁의 뒷문이었다. 이곳은 평소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아 감시가 소홀할 것이라고 아린이 예측한 곳이었다. 카이는 능숙하게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찰칵! 예상보다 쉽게 문이 열렸다.

“역시 우리 카이, 손재주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아린이 작게 칭찬했다.

카이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재주가 좋아서 잡범 취급은 아니겠지?”

“하, 잡범이라니? 이건 혁명이지!” 아린이 발끈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퀘퀘한 먼지 냄새와 함께 거대한 금고가 그들을 맞이했다. 황제가 제국민의 혈세를 빼돌려 은밀하게 축적해둔 비자금 창고가 분명했다.

“젠장… 이게 다 얼마야…” 제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금고는 보통의 자물쇠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교한 장치로 잠겨 있었다. 번호 다이얼, 복잡한 기어, 그리고 빛이 닿으면 반응하는 마법적인 보호막까지.

“이건 좀 어려운데….” 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가진 도구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때였다. 쿵! 쿵! 쿵! 멀리서 들려오던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비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아린이 창밖을 내다보며 속삭였다. “빨리 열어야 해, 카이!”

카이는 초조하게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금고는 그 어떤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번호 조합을 맞추다 손가락이 미끄러지자, 작은 경고음이 울렸다.

“젠장!” 카이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러다 잡히겠어! 내가 뭔가 도울 일은 없을까?” 아린이 안절부절못하며 금고를 훑어봤다. 그녀의 시선이 금고 상단에 새겨진 황실 문양에 멈췄다. 용의 발톱이 보석을 움켜쥔 형상.

“잠깐… 이거…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갑자기 금고에 손을 얹더니, 용의 발톱 문양을 특정 순서대로 누르기 시작했다.

“대장님, 지금 뭐 하시는…?” 제이가 의아해했다.

‘딸깍!’

놀랍게도, 금고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카이와 제이는 물론, 아린 자신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카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린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예전에… 황궁 연회에 잠입했을 때, 술에 취한 후작 부인이 남편 욕을 하면서 자기 가문의 비밀 금고 문 여는 방법을 주절거리는 걸 들었거든. 황실 문양이 비슷한 종류면 작동 방식도 비슷하다고.”

카이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네 정보력은 가끔 상식을 초월하는군.”

금고 안에는 눈부신 금화와 보석, 그리고… 낡은 양피지 문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린은 망설임 없이 금화와 보석을 챙기기 시작했다. 제이는 눈을 떼지 못하고 보석을 주워 담았다.

“이런 걸 백성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아린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그때, 카이의 시선이 양피지 문서에 꽂혔다. 그는 다른 보물들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 낡은 문서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이건… 제국 전역의 식량 배급량과 세율 변동에 대한 보고서군. 게다가… 반란군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적혀 있어.” 카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내부에도 첩자가 있는 모양이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침입자다! 모두 잡아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시간이 없어!” 아린이 외쳤다.

창밖으로 수많은 경비병들이 별궁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린은 재빨리 금고 안의 내용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금화 몇 자루와 보석을 챙겼다. 제이는 잔뜩 겁에 질려 허둥거렸지만, 카이가 챙긴 양피지 문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조용히 아린을 따랐다.

“우선 저 옥상으로!” 아린이 손짓했다.

세 사람은 부리나케 금고를 빠져나와 별궁의 좁은 복도를 달렸다.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린은 망설임 없이 문을 박차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강타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그들은 수도의 야경과 함께 수많은 경비병들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섬뜩한 광경을 마주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모두 항복해라!” 한 경비대장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아린은 품에 안은 금화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제국이 아무리 강대하다 한들, 백성들의 염원을 막을 수는 없을 터.

“웃기지 마! 우리는 도망치는 게 아니야!” 아린이 외쳤다. “우리는 이 썩어 빠진 제국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거다!”

그녀의 눈빛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카이는 아린의 옆에 서서,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그의 시선은 아린에게 향하지 않았지만, 그 손길에서 묘한 안정감이 전해졌다.

“싸울 준비는 됐겠지?” 카이가 나직이 물었다.

아린은 그를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늘 그랬잖아, 얼음 왕자.”

경비병들이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아린은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 들었다. 카이 역시 등에 맨 긴 검을 뽑아 들었다. 제이는 겁에 질렸지만, 이내 작은 투석기를 꺼내 들고 어딘가로 조준했다.

“자, 그럼 쇼를 시작해 볼까?” 아린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과연 그들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첩자의 존재는 그들의 반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차가운 밤공기 속, 세 사람의 그림자가 경비병들과 뒤엉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