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충격, 약함. 선체 이상 없음.”
지아의 건조한 목소리가 함선 ‘방랑자호’의 조종석을 채웠다. 바깥은 온통 잿빛이었다. 행성 67-델타, 한때 ‘녹색의 심장’이라 불렸던 곳은 이제 죽음의 재로 뒤덮인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수십 년 전, 대분열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붉은 태양은 그저 차가운 감시자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폐허를 떠돌며 한 조각의 희망이라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상태 보고.” 카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며칠 밤낮을 쉬지 못한 탓이다. 잠재울 수 없는 피로와 불안이 그림자처럼 그를 덮치고 있었다.
“외부 센서, 중력 이상 없음. 대기 조성은… 예상대로 최악입니다. 호흡기 없인 5분도 못 버틸 겁니다.” 지아가 패드를 훑으며 답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초점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표적 건물은 정면에 보입니다. 옛 채굴 단지 발전소.”
카이는 낡은 스크린 너머로 거대한 뼈대만 남은 구조물을 응시했다. 폐허. 그들의 삶은 언제나 폐허 속을 헤매는 여정이었다. 닳아빠진 동력 코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방랑자호’의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여기까지 왔다.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이 죽은 별에서 서서히 썩어갈 터였다.
“렉스, 사야. 준비됐나?” 카이가 물었다.
“언제든.” 렉스는 묵묵히 중장비 소총을 점검했다. 그의 닳고 닳은 전투복은 수많은 전투와 생존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굵고 거친 그의 손이 무기를 다루는 모습은 언제나 든든함을 주었다.
사야는 고글을 고쳐 쓰고 들떴는지 살짝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는 가장 어렸지만, 이 지옥 같은 우주에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희미한 전파나 미세한 기류의 변화까지 감지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여러 번 일행의 목숨을 구했다.
“방사선 수치, 허용 범위 초과.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지아의 경고가 다시 울렸다. 함선 내부의 경고등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알고 있다.” 카이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방사능은 그들에게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동력 코어 없이는 움직일 수도, 숨 쉴 수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헬멧을 착용하고, 램프가 열리는 소리를 신호 삼아, 그들은 잿빛 행성의 죽은 대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폐허가 된 발전소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다. 무너진 천장, 부식된 기계들, 먼지 쌓인 잔해들이 마치 거대한 고래의 뼈처럼 널려 있었다. 헬멧 안으로 들어오는 무전 소리는 잡음으로 가득했지만, 지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선명하게 들렸다.
“지하 2층, 발전기실로 향한다. 사야, 통로 확인해.” 카이가 지시했다. 그의 시야는 흐릿한 먼지와 잔해를 뚫고 나아갈 길을 찾았다.
사야는 능숙하게 홀로그램 지도를 조작하며 앞장섰다. 얇고 긴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삐걱거리는 철골을 밟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곳은 죽은 곳이지만, 완전히 고요하지는 않았다. 낡은 배관에서 새는 증기 소리, 알 수 없는 금속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치 죽은 건물 자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
“저기, 뭔가 보여요.” 사야가 속삭였다. 그녀의 손전등이 한쪽 구석을 비췄다. 거대한 동력 코어가 박혀 있어야 할 자리, 거기에 검고 불길한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래된 동력 코어의 형상은 알아보겠는데, 그 위에 들러붙은 것이 영 좋지 않았다.
“코어인가?” 렉스가 총구를 겨누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훈련받은 병사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코어는 분명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었지만, 그 표면에는 이상한 점액질이 덮여 있었고,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거대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이건… 좀 다릅니다.” 지아의 목소리가 무전 너머로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에너지 패턴이 기록된 것과 일치하지 않아요. 미약하지만… 생체 반응이 감지됩니다.”
“생체 반응?” 카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행성은 수십 년 전 ‘정화’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환경이었다. 대분열의 여파로 모든 것이 죽어버린 곳. 그런데 생체 반응이라니?
렉스가 경계하며 코어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의 소총 끝이 검은 점액질을 건드리는 순간, 점액질 덩어리들이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끈적한 검은 촉수들이 순식간에 뻗어 나와 렉스의 팔을 휘감았다.
“젠장! 이건 뭐야!” 렉스가 비명을 질렀다. 촉수들은 삽시간에 그의 팔을 조여들어갔다.
“렉스!” 카이가 급히 달려들며 총을 발사했다. 타겟은 촉수.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촉수들이 찢겨 나갔지만, 그 속에서 더 많은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코어 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고대 기계와 끔찍한 변종 생명체가 뒤섞인 끔찍한 광경이었다.
“물러서! 이건 함정이다!” 카이가 소리쳤다. 사야는 이미 뒤로 물러나 렉스와 카이의 퇴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
그들은 간신히 렉스를 끌어내 발전소 입구로 도망쳤다. 렉스의 팔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검은 점액질이 그의 피부에 스며들어 있었다. 헬멧 안에서 렉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저게 대체 뭐야!” 렉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표정에는 고통과 함께 혐오감이 섞여 있었다.
“모릅니다… 탐사 기록에 없는 미확인 생명체예요.”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사능과 극심한 환경 변화가…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낸 걸까요? 코어를 오염시킨 것도 모자라, 하나의 생명체로 변이시킨 건가요?”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동력 코어를 얻는 것도 실패했고, 심지어 새로운 위협과 마주했다. 그의 눈은 다시 폐허가 된 도시를 향했다. 멀리 보이는, 뿌연 먼지 너머의 실루엣들. 그곳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언제나 더 큰 위험을 숨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함장님! 저것 좀 보세요!” 사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먼지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었다. 먼지 속에서 번뜩이는 금속 빛깔.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
“젠장, 저건… 다른 배다.” 카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 죽은 행성에 자신들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특히 저런 속도로 다가오는 존재라면.
“확인합니다. 미확인 함선 접근 중! 속도… 엄청납니다! 식별 코드 없음!” 지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느껴졌다. “방랑자호까지 120초! 무장 상태… 식별 불가능!”
그것은 사냥꾼의 움직임이었다. 이 죽은 행성에 그들과 같은 사냥꾼들이 있었다. 그것도 훨씬 빠르고, 훨씬 위험해 보이는 사냥꾼들이. 그들의 위치가 노출된 것이 분명했다.
“방랑자호로! 전원 탑승!” 카이가 소리쳤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사야와 렉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함선을 향해 달렸다. 카이는 뒤따르며 혹시 모를 추격에 대비해 소총을 굳게 쥐었다. 그들의 발밑에서 낡은 땅이 흔들렸다. 미확인 함선이 발사한 포격이었다. 폭발음이 귓전을 때렸다. 쾅! 쾅!
“피해! 서둘러!” 카이가 외쳤다. 함선 ‘방랑자호’의 선체에 포격이 작렬하는 소리가 헬멧 너머로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방랑자호의 램프가 급하게 닫히고, 지아는 이미 이륙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엔진이 굉음을 내며 뜨거워졌다. 선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륙! 최대한 빨리!” 카이가 소리쳤다. 그의 손은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함선이 덜컹거리며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거대한 먼지 구름과 함께. 뒤따라오는 미확인 함선은 이미 발포를 시작했다. 붉은 에너지탄이 방랑자호의 보호막에 연달아 작렬했다. 함선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보호막 30% 손상! 주 엔진 출력 불안정!” 지아의 절규가 들렸다. 시스템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추격 함선, 예상 침로로 접근 중! 발사 준비!”
카이는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폐허가 된 행성, 알 수 없는 변종 생명체, 그리고 이제는 미지의 추격자까지. 생존은 마치 저 먼지 가득한 우주만큼이나 막막했다. 그들의 앞날은 또 어떤 절망으로 채워질까.
“젠장…!” 카이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우주의 심연에서. 붉은 섬광이 함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