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찢겨진 맹세

삭막한 바람이 뼈만 남은 숲을 훑고 지나며 묵직한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카인은 그 소리에 익숙했다. 지난 수 년간 그의 곁을 맴돌았던 절망의 자장가였다. 얼어붙은 흙바닥을 밟는 그의 발걸음마다 서걱이는 소리가 났다. 뿌연 김이 되어 흩어지는 숨결과는 달리, 손에 쥔 검의 손잡이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그의 심장은 끓어오르는 용암과 같았다. 닳아 해진 검은 망토에 가려진 앙상한 얼굴에는 흉터가 길게 그어져 있었고, 그 너머로 번뜩이는 두 눈은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굶주려 있었다.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감히, 잊을 리가 없었다. 그날, 피로 물든 백탑의 마루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비웃음 섞인 얼굴을. 아벨. 너는 내게 세상의 전부였다. 형제였고, 유일한 벗이었으며, 함께 꿈꾸었던 왕국의 빛이었다. 하지만 너는 그 모든 것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내 가문의 명예를, 내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그리고 나 자신의 영혼마저도.

_“카인, 어리석은 친구여. 네게는 과분한 자리였다.”_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칼날의 감촉과 함께. 그 한 마디에 세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피 냄새가 났다. 썩어가는 흙과 짐승의 내장 냄새, 그리고 낡은 철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였다. 이곳은 ‘망자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 한때는 생명이 넘치던 숲이었지만, 아벨이 왕좌에 오른 후 온 세상이 그 독기에 물들어버린 것처럼, 이곳 또한 죽음의 그림자에 잠식되었다. 카인의 목표는 이 계곡의 심장부에 위치한 ‘어둠의 심연’이라 불리는 옛 유적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는 모든 생명을 재로 만들고, 모든 마법을 무효화하는 파괴의 힘을 가진 고대의 유물, ‘나락의 심장’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아벨, 너의 강대한 마력과 네가 거느린 그림자 기사단도 그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할 것이다.

유적의 입구는 거대한 바위들이 기괴하게 얽힌 형태였다. 흡사 입을 벌린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였다. ‘크르르릉….’ 짐승의 으르렁거림과는 다른, 쇳소리가 섞인 기괴한 소음이 동굴 안에서 울려 퍼졌다. 거대한 그림자, 마치 뒤틀린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녀석의 전신은 시커먼 덩굴과 날카로운 뼈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온몸에서는 부패한 시체 냄새가 진동했다. ‘파멸의 수호자’. 아벨이 자신의 힘으로 창조해낸 역겨운 피조물 중 하나였다. 그의 저주받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피조물들이었다.

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수호자의 붉은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공포 또한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열망뿐.

괴물은 으르렁거리며 덮쳐왔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도 놀라울 만큼 민첩했다. ‘쉬이이익!’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촉수가 날아들었다. 촉수 끝에는 날카로운 뼈 가시들이 돋아 있었다. 카인은 몸을 틀어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밤의 비명’은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한때는 정의를 위한 성스러운 검이었으나, 이제는 오직 복수만을 갈구하는 마검이 되어버린 검이었다.

‘챙!’

금속성 마찰음이 귓가를 때렸다. 수호자의 뼈 가시와 검이 부딪히며 섬광이 터졌다. 카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괴물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팔에 짜릿한 통증이 스쳤다.

“네놈도, 아벨의 개에 불과할 뿐.”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증오는 동굴의 냉기를 데울 정도였다. 카인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아벨에게 모든 것을 잃은 후, 그는 그림자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그의 친구이자 무기였다.

수호자가 혼란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봤다. 그 찰나의 순간, 카인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괴물의 등 뒤였다. ‘콰아앙!’ 밤의 비명이 괴물의 등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검은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호자의 생명력이 아닌, 썩은 짐승의 그것처럼 검고 역겨웠다. 괴물은 아랑곳 않고 몸을 뒤틀었다. 카인은 검을 뽑아내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크르르르륵!”

괴물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주변의 바위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녀석의 전신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등에서 튀어나왔던 뼈 조각들이 다시 채워지는 듯했다. 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아벨의 마력으로 유지되는, 불완전한 불멸성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카인에게 후퇴란 없었다. 그의 팔에는 이미 깊은 상처가 생겼다. 찢겨진 살 사이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고통이 신경을 갉아먹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아벨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까짓 상처가 대수랴. 죽음마저 기꺼이 감수할 터였다.

그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죽어라.’ 그의 입술 사이로 작게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마치 주문처럼, 그의 눈이 더욱 깊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림자 마법이었다. 그는 한때 빛을 숭배하던 기사였으나, 이제는 가장 깊은 어둠과 거래하는 사냥꾼이 되었다.

괴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카인은 그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림자는 그를 삼키는 듯했고, 이내 괴물의 바로 아래에서 솟아났다. ‘으아아악!’ 카인이 외침과 함께 밤의 비명을 위로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괴물의 목이었다. 취약한 부위. 아벨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불멸할 수는 없다. 심장이나 머리, 또는 가장 깊숙한 마력의 핵을 파괴해야 했다.

‘쉬이이익!’

밤의 비명이 괴물의 목을 깊게 베었다. 뼈 조각이 부서지고, 살이 찢기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크르르륵….’ 짧은 단말마와 함께 괴물은 형체를 잃고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스르륵 사라졌다.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붉고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수호자의 공격으로 생긴 깊은 상처였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온몸을 지배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동굴 깊숙한 곳, 수호자가 지키던 자리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묘한 빛을 내뿜는 검은 수정. 그 흑요석 같은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동굴 전체를 감싸는 듯했다.

‘나락의 심장.’

그것이었다.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힘. 과거의 지혜가 경고했던 금단의 유물.

카인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수정에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가 수정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는 순간, 차가운 전율이 온몸을 훑었다. 동시에 귓가에 수많은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과거의 파멸된 영혼들이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_“너도 결국 파멸할 것이다.”_
_“이 힘은 너를 삼킬 것이다.”_

고통은 극심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까짓 고통쯤이야. 그는 이미 지옥을 겪어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림자 마력이 수정과 반응하며, 검은 결정체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어둠이 어둠을 집어삼키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의 눈은 더욱 깊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아벨.”

그의 목소리는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공기에 섞여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복수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세상은 또다시 피로 물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