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의 장막 아래, 첫 번째 비명
짙푸른 안개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던 밤이었다. 오래된 석조 건물들의 날카로운 실루엣이 거친 숨을 내쉬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고, 축축한 공기는 잿빛 폐허의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발레리우스 백작의 저택은 그 정점이었다. 뾰족한 고딕 양식의 첨탑들이 밤하늘을 찢을 듯 솟아 있었고, 낡은 창문들은 수많은 눈처럼 도시의 고통을 묵묵히 응시하는 듯했다.
그 침묵을 갈랐던 것은 비명이었다.
“악!”
지하실에서 울려 퍼진 끔찍한 절규는 곧이어 계단을 따라 층층이 울려 퍼지며 저택의 심장을 꿰뚫었다. 잠들어 있던 하인들이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졌고, 야간 순찰을 돌던 경비병들은 무거운 갑옷을 부딪치며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소리가 멎은 곳은 백작의 서재였다. 묵직한 오크나무 문 앞에 도착한 경비대장 로반은 이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하녀장으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았다.
“대… 대장님. 백작님이… 백작님이…!”
하녀장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로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열쇠를 자물쇠에 꽂았다. 묵직한 쇳소리가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울렸다. 잠금쇠가 풀리는 순간, 서재 안에서 기괴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깊은 겨울의 심장부가 이곳으로 옮겨진 듯한 차가움이었다.
“비켜!”
로반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서재 안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으나, 복도에서 쏟아져 들어간 횃불의 불빛이 그 안의 광경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그리고 모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충격적인 죽음의 그림자였다.
벽난로 앞에 놓인 최고급 비단 카펫 위, 백작 발레리우스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붉은색 벨벳 의자에 기댄 채 죽어 있었는데, 그의 눈은 공포로 크게 뜨여 있었고, 입은 벌어져 비명이라도 지르려다 굳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정말 섬뜩한 것은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아니었다.
“이게… 대체…?”
한 경비병이 헛구역질을 했다. 백작의 가슴에는 날카로운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문제는 칼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것은 단단하고 투명한 얼음 조각이었다. 마치 깎아놓은 수정처럼 빛나는 얼음 칼날은 핏방울 하나 묻히지 않은 채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작은 얼음 조각들이 서리처럼 흩어져 반짝이고 있었다.
로반은 경악하며 방 안을 둘러봤다.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은 안쪽에서 단단히 걸쇠가 채워져 있었다. 유리는 깨진 흔적 하나 없었다. 유일한 문인 서재 문 또한 자신이 열기 전까지는 밖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안쪽에서 걸어 잠근 형태가 아니라, 밖에서 열쇠로 잠겨 있었다.
“이건… 밀실이다.” 로반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바닥의 얼음 조각들을 발로 건드렸다. 순식간에 녹아내려 축축한 물방울만 남겼다. 살인 무기가 사라진 것이다.
“마법인가… 아니면, 악마의 짓인가…”
공포에 질린 경비병들이 웅성거렸다. 이성을 초월한 상황에 모두의 얼굴에는 경멸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의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저택의 정문에서부터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굳고, 차가운 것이 바닥을 긁는 소리.
곧이어 서재 문가에 기묘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키가 컸으나 어딘가 비틀린 듯 앙상한 몸매를 지녔다.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검은색 코트 자락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바닥을 쓸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뺨은 깊게 패여 마치 해골 같았지만, 그 안에 박힌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처럼 번뜩였다. 날카로운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예민한 감각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 손에는 은색 손잡이가 박힌 흑단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항상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카이사르’라고 불렀다.
“흥미롭군요.”
카이사르가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는 시체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고,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방 안을 쭉 훑어봤다. 그 시선은 가구, 벽, 천장, 그리고 죽은 백작의 시신까지, 모든 것을 관통하는 듯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읽어내는 듯한 섬뜩함이 있었다.
“카이사르 경,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반 대장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이 도시에서 ‘밀실 살인’이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이 기묘한 천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명성은 너무나도 독보적이었다. “보시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개탄스럽기 그지없군. 경비대장은 문만 열어젖히고 서 있었다는 말인가? 이 중요한 현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카이사르의 눈이 로반을 향했다. 그의 시선에 로반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직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것은… 인간의 소행으로는 도저히…” 로반은 말을 더듬었다.
카이사르는 피식 웃었다. 실소를 참지 못한 듯한 웃음이었다.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자네는 이 백작을 죽인 것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 망령이나, 벽을 뚫고 들어온 악마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방은 안팎으로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게다가 살인 도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로반이 손을 휘저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사르는 대답 없이 다시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발걸음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팡이 끝이 바닥에 닿는 미세한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그는 창문 가까이 다가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두꺼운 강철 격자가 창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밖에서는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구조였다.
“흥미롭군.” 카이사르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활기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흥미로워.”
그의 시선이 죽은 백작에게로 향했다. 그는 백작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굳어버린 표정, 공포에 질린 눈. 그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로반 대장, 백작은 생전에 딱히 원한을 살 만한 자는 아니었습니까? 혹은 마법사들과 교류가 있었다거나, 기묘한 저주에 걸릴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습니까?” 카이사르가 물었다.
“백작은 온화한 분이었습니다. 사업 수완이 좋았고, 최근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권 다툼에서 큰 이득을 보셨습니다만… 원한이라고 할 만한 것은… 글쎄요.” 로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들과는 거리를 두셨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분이셨죠.”
“현실적…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밀실은, 그 지극히 현실적인 백작에게 어떤 환영을 보여주려 했던 걸까요?” 카이사르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백작의 시신과 주변의 얼음 조각들이 녹아 흔적만 남은 바닥을 오갔다.
그의 눈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단서를, 불가능해 보이는 트릭의 실마리를. 이 밀실은 그에게 있어 거대한 퍼즐 상자였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그 퍼즐을 풀기에 최적화된, 섬뜩하도록 예리한 이성의 칼날을 가진 사냥꾼이었다.
“대장, 경비병들을 문 밖에 세워두고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카이사르가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지휘관의 권위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하녀장을 다시 데려오십시오. 백작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엇인지, 그 공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로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카이사르 홀로 서재에 남았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듯한 그의 눈은 죽음이 드리운 공간을 집요하게 탐색했다. 핏자국 하나 없이 완벽하게 얼어붙은 죽음,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살인 도구. 모든 것이 불가능을 외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지팡이 끝으로 바닥의 희미한 물기를 가볍게 건드렸다.
“불가능한 것은 없지. 단지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을 뿐.”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미소와 같았다. 이 밤, 발레리우스 저택의 안개 속에서, 천재 탐정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던져진 첫 번째 퍼즐 앞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