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받은 낙원: 7화 – 심연의 메아리**
장마가 시작되려는 듯, 검은 구름이 도시의 마천루 꼭대기를 집어삼킬 기세로 낮게 깔려 있었다. 불길한 정적이 공기를 짓누르는 가운데, 나는 허름한 건물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서 아래를 굽어봤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아래, 한때 내가 모든 것을 바쳤던,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겼던 이 거대한 도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현석….”
갈라진 목소리가 빗물 머금은 바람에 흩어졌다. 내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피 비린내가 나는 증오가 치솟았다. 최현석. 한때 나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고, 내 모든 것을 공유했던 유일한 친구. 그러나 그 이름은 이제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의 언어와도 같았다.
그는 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내 연구, 내 명예, 내 가족. 그 빌어먹을 고대 유물 ‘심연의 눈’을 함께 파헤쳤던 그날 밤 이후, 나의 삶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그 유물의 힘을 탐했고, 나를 미끼로 삼아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다. 나는 지옥 끝까지 추락했고, 그곳에서 나는 악마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악마의 그림자를 빌린, 그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래에 있는 건물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창고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달랐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끔찍하게 뒤틀린 에너지의 흐름이 건물을 휘감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이 도시의 어두운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의 울림과 공명하고 있었다. 내가 ‘심연의 눈’을 통해 얻은, 동시에 나의 영혼을 좀먹는 능력이었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현석이 이 창고 건물 지하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는 정확했다. 그의 어둠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겨우 초보적인 수준의 주술에 매달리던 녀석이, 이제는 감히 심연의 권능을 조작하려 들고 있었다. 분명 더 깊이, 더 위험한 존재와 접촉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복수는 단순히 현석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를 이토록 타락하게 만든 근원을 찾아 뿌리째 뽑아야 했다.
나는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무중력 상태처럼 몸이 공중에 잠시 떠올랐다가, 아래층 옥상으로 소리 없이 착지했다. 발밑의 콘크리트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강화된 신체 능력. 이것 또한 그 지옥 같은 심연의 문턱에서 내가 얻은 대가였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버리고 얻은 능력. 가끔은 내가 아직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창고 건물 뒷편의 낡은 환기구를 목표로 움직였다. 그림자 속을 유영하듯, 나는 마치 어둠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움직였다. 경비 시스템은 이미 한 시간 전, 내가 심어둔 바이러스에 의해 무력화된 상태였다. 인간의 눈으로 나를 막을 순 없었다. 진정한 위험은 언제나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었다.
환기구는 녹슬어 삐걱거렸지만,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한 소리를 내며 순순히 열렸다. 미로 같은 덕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약품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철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을 기어가는 동안, 내 시야는 환기구 내부를 투과하여 아래층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지하 3층,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심장이 불규칙하게 고동쳤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복수심과 함께, 미지의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나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기어 들어갔다.
마침내, 환기구 끝에 도달했다. 아래에는 지하 깊숙이 파인 거대한 원형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붉고 검은 문양이 바닥과 벽을 뒤덮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석판이 놓여 있었다. 석판 위에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만들어진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그 주위로 검은 로브를 걸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앙에, 최현석이 있었다.
그는 예전의 날카롭고 이성적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얼굴은 기묘하게 수척해졌고, 눈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검고 공허했다. 그의 손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흉측한 형상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가 내뱉는 주문은 인간의 언어라고 할 수 없었다. 혀가 뒤틀리고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그 소리는 내 두개골을 짓누르는 듯한 압력을 가했고, 정신을 교란시켰다.
**크툴루 신화**의 세계에서는, 이런 소리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의 이성을 붕괴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 또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소리를 견뎌냈다.
“현석… 네놈이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그의 변화된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이상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심연의 꼭두각시, 혹은 그들의 광기를 탐하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었다.
그때, 제단 위의 단검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석판 중앙의 균열에서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점차 거대한 형상을 갖춰갔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형태였다. 비늘인지 가죽인지 알 수 없는 피부, 수많은 눈동자가 박힌 머리, 뒤틀린 촉수들이 허공을 휘저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태초의 혼돈에서 기어 나온 듯한 존재였다.
제단 주변의 로브를 입은 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현석의 기괴한 주문과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현석은 감히 되살려서는 안 될 존재를 완전히 소환하고 말 것이다.
나 또한 심연의 힘을 다루는 자. 그들의 광란에 동참하는 척, 나의 어둠을 해방시키기로 했다.
나는 환기구의 격자를 조용히 뜯어냈다.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는 지하의 끔찍한 소음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나는 그대로 몸을 아래로 던졌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였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착지 직전, 내 몸을 감싼 그림자가 지면에 먼저 닿아 충격을 흡수했다.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내 발밑에서 춤을 추다가 다시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로브를 입은 자들 중 가장자리에 서 있던 한 명의 뒤에 소리 없이 섰다. 그는 심연의 존재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린 듯, 나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싸늘한 기운이 로브 입은 자의 몸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그는 경악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인간의 이성이 버텨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들이 그의 의식을 강타했다. 우주 저편의 차가운 진공, 기형적인 형상의 신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의 순환.
“크아아악!”
로브 입은 자의 비명이 지하 공간을 찢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손톱으로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그는 바닥에 쓰러져 발작하며 거품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다른 로브 입은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현석의 주문이 잠시 멈췄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향했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강준호… 네가 감히 여기까지 왔을 줄이야.”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눅진하고 비인간적인 울림을 담고 있었다. 마치 심연 그 자체가 말을 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나의 눈동자 또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네놈은 이 우주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뻔했지.”
말을 마치는 순간,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내 손바닥에서는 어둠이 응축되어, 작고 검은 구체가 형성되었다. 그것은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게 바로 네놈이 내게서 빼앗으려 했던 힘의 진정한 모습이다, 현석.”
나는 그 구체를 현석이 들고 있던 단검을 향해 날렸다. 검은 구체는 공간을 찢고 날아가, 정확히 단검에 명중했다.
콰앙!
귀청을 찢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단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현석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뒤로 휘청거렸다.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은 검은 구체의 힘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단검이 파괴되자, 제단 위에서 꿈틀대던 혐오스러운 존재의 형상이 흔들리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파동이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네 이놈! 감히 내 의식을 방해해?!”
현석이 피와 증오로 물든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이제 인간적인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완벽한 광기였다.
나는 그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로브 입은 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의 의지에 따라 그림자들이 그들의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그림자들은 그들의 발목을 휘감고, 몸을 조여들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네놈의 광기는 여기까지다, 최현석. 이제 네가 빼앗아간 모든 것을 되찾아줄 시간이다.”
나는 싸늘하게 선언했다. 하지만 현석은 나의 위협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착각하지 마라, 강준호. 너 또한 나처럼 이 심연의 일부가 되었을 뿐! 우리에게 도망칠 곳은 없어! 네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이 광기는 결코 끝나지 않아!”
그의 외침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혐오스러운 존재가 갑자기 거대한 촉수 하나를 휘둘렀다. 마치 분노에 찬 신의 채찍처럼, 촉수는 나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왔다.
나는 피할 수 없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촉수가 내 몸에 닿는 순간,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꿰뚫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감각.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내 몸에 흐르는 어둠의 힘이 촉수의 침식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게 네놈의 끝이 아닐 거야, 현석. 난 널 이 심연의 끝까지 끌고 갈 거니까.”**
나는 피를 토해내며 말했다. 현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서 광기와 함께 희미한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발을 들인 심연의 깊이를 깨달은 것처럼.
촉수에 의해 멀리 날아간 나는 거대한 기둥에 부딪혔다. 몸이 완전히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나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단검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하게나마 다시 형체를 잡아가려는 제단 위의 혐오스러운 존재와, 그 앞에서 나를 향해 절규하는 현석의 얼굴이었다.
나는 실패한 것인가? 아니.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내 복수는, 이제 막 심연의 문을 두드린 참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