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이 하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굵고 거친 빗줄기가 밤을 찢을 듯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낡았지만 여전히 위엄을 잃지 않은 정회장의 저택은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저택의 굳게 닫힌 대문 안쪽으로는 이미 경찰차 몇 대가 비상등을 번쩍이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핏빛처럼 타오르는 비상등 불빛이 빗물에 반사되어 번뜩일 때마다, 저택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꿈틀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망할! 이런 밀실은 처음이야!”

저택 2층 서재 문 앞에서 김반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답답함과 초조함이 역력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이끄는 강력팀 형사들이 현장을 수색했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서재 안에서는 국내 굴지의 기업 회장이었던 정우진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가슴팍에 깊숙이 박힌 화려한 장식의 레터 오프너는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었다.

김반장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열쇠는 시신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창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특수 강화 유리라 깨뜨린 흔적도 없어. 환기구도, 벽난로도, 그 어떤 틈도 없어. 비상문 같은 건 더더욱 없고! 어떻게 살인범이 이 방을 빠져나갈 수 있었단 말인가?”

그때,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젖은 바바리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눈빛은 빗물처럼 차갑고 맑았다. 강태우. 그가 도착하자 웅성거리던 현장 요원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의 등장만으로도 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김반장의 얼굴에 짧은 안도감이 스쳤다.

“강탐정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반장의 말에 강태우는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서재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현장 통제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시신, 흩트러진 서류 몇 장, 그리고 완벽하게 정돈된 서재의 풍경.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그 어떤 외부 침입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사인은?” 강태우가 나직하게 물었다.

“흉기에 의한 심장 관통. 즉사했습니다. 예상 사망 시각은 밤 11시에서 자정 사이로 추정됩니다.” 김반장이 빠르게 보고했다.

강태우는 시신에 가까이 다가갔다. 정회장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경련 끝에 굳어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죽는 순간까지도 마치 누군가를 쫓는 듯, 문을 향하고 있었다. 강태우는 살인에 사용된 레터 오프너를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은빛 칼날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피 묻은 바닥 위에서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섬세한 감각이 과거의 잔상들을 더듬기 시작했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명(耳鳴) 같은 것,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빛의 왜곡. 그는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감각을 집중시키는 훈련된 능력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시간의 잔향(殘響) 읽기’라고 불렀다.

강태우는 고개를 들어 서재의 네 벽을 차례로 응시했다. 책장, 벽난로, 창문… 모두 완벽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방문에 시선을 던졌다. 김반장의 말대로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열쇠는 바닥에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는 문에 바싹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문틈과 문턱을 꼼꼼하게 살피던 그의 눈길이 문 하단 구석에 설치된 작은 황동색 환기구에 닿았다. 오래되어 낡은 환기구는 앤티크한 서재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물건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작은 장식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강태우는 손을 뻗어 환기구를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틈새에 미세한 흠집이 나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 불가능한, 아주 가늘고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힌 자국.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금속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마치 얇은 철사 같은 것에 긁혔을 때 나는 냄새와 유사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감각의 초점을 이 환기구와 문고리, 그리고 열쇠가 발견된 지점에 맞췄다. 그의 능력을 쓸 때마다 머릿속은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가는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밀실의 트릭을 깨부술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편린을 직접 목격하는 것뿐이었다.

정적. 빗소리마저 멎은 듯한 착각 속에 강태우의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색들이 번지고, 형태가 왜곡된다. 현장 요원들의 흐릿한 실루엣이 순간 뒤로 감기듯 빠르게 사라졌다.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역행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리고… 멈췄다.

모든 것이 정지된, 유령 같은 시간 속에 강태우는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과거의 순간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는 보았다.

어둠 속, 정회장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진 직후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문 안쪽에 서 있는 그림자.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일 뿐, 범인의 얼굴은 알 수 없었다. 범인은 차분하게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열쇠를 구멍에 넣어 안쪽에서 잠갔다.

밀실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충격적이었다. 범인은 열쇠에 미리 준비해둔 듯한 아주 가느다란 낚싯줄 같은 것을 묶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 줄을 환기구의 좁은 틈새 사이로 밀어 넣었다. 줄이 환기구 밖으로 빠져나오자, 범인은 다시 열쇠를 환기구 틈으로 밀어 넣었다. 열쇠는 그 미세한 틈새를 통해 서재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범인은 열쇠를 밖으로 빼낸 후, 문을 살짝 닫았다. 줄을 당겨 문밖에서 열쇠를 조작해 문을 ‘안에서’ 잠근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열쇠를 다시 환기구 틈으로 밀어 넣어 서재 안으로 떨어뜨렸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범인은 조용히 줄을 회수하고 사라졌다.

시간의 잔향이 끝났다. 강태우의 시야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강탐정님? 괜찮으십니까?” 김반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이었다.

강태우는 환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모든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김반장님, 범인은… 이 문을 통해 나갔습니다.”

김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열쇠도…!”

“이 틈을 이용해 열쇠를 조작했군.” 강태우는 환기구에 난 미세한 흠집을 짚었다. “범인은 회장님을 살해한 뒤, 문을 안에서 잠갔습니다. 그리고 이 환기구 틈을 이용해 열쇠를 밖으로 빼냈죠. 밖에서 열쇠를 조작해 ‘안에서 잠근 것처럼’ 보이게 한 뒤, 다시 이 환기구를 통해 열쇠를 안으로 밀어 넣어 떨어뜨린 겁니다. 그 누구도 이 방을 드나들 수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요.”

현장에 있던 모든 경찰들의 입이 벌어졌다. 완벽한 밀실이라고 생각했던 트릭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반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환기구를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얇은 틈으로 열쇠를 조작하고 다시 밀어 넣는다고요? 그것도 완벽하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강태우의 시선이 김반장 뒤에 서 있던, 창백하게 질린 정비서에게 향했다. 정비서는 정회장의 그림자처럼 항상 옆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아니죠.” 강태우의 눈빛이 정비서의 떨리는 손을 스쳤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아주 섬세하고 정확한 손놀림을 가진 자, 그리고 이런 저택의 구조와 환기구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정비서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김반장의 눈빛이 정비서에게로 향했다.

“그럼… 누가?” 김반장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실렸다.

강태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트릭은 깨졌습니다. 이제는 누가, 그리고 왜 그랬는지 밝혀낼 차례죠.” 그의 시선은 다시 정비서의 굳게 닫힌 입술에 닿았다. 침묵이 서재를 지배했다. 밖에서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