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고요와 적막이 지배하던 한민준 건축가의 저택에 난데없이 경보음이 울려 퍼진 것은. 눈발이 거세게 휘몰아치던 밤, 저택은 두꺼운 눈으로 뒤덮여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섬 같았다. 경보음은 고독한 예술가의 심장 박동처럼 불규칙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울렸다.
“젠장, 또 뭐야!”
최은경이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거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한민준의 여동생이었다. 뾰족한 눈매와 날카로운 언변은 오빠와 쏙 닮아 있었다.
김지혜, 한민준의 비서가 이미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하려 애쓰는 기색이었다.
“경비 시스템 오류인 것 같습니다. 곧 본사에 연락해서…”
“오류? 이 폭설에? 지혜 씨, 어제부터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했잖아. 망할 오빠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외딴곳에 이딴 집을 지었는지.” 은경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덧붙였다.
그때, 집안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이진우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한때 한민준의 수제자였으나 지금은 앙숙 관계에 가까웠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경보음이… 서재 쪽에서 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재 문을 향했다. 한민준의 서재는 그에게 있어 성역과 같은 곳이었다. 완벽한 방음과 최첨단 보안 시스템으로 무장된 그 공간은 그 누구도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굳건한 문 안에서부터 희미하지만 끈질긴 비상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김지혜가 조심스럽게 서재 문에 다가섰다. 늘 자동 잠금 상태인 문은 육중한 철문처럼 닫혀 있었다. 그녀는 주저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요지부동.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한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 선생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만 경보음만 더 맹렬하게 울릴 뿐이었다. 은경이 초조하게 벽을 쳤다.
“망할 오빠! 대체 뭘 하는 거야? 문을 따!”
이진우가 망설이는 김지혜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비밀번호를 알아도 지문 인식이 필수입니다. 매뉴얼 키는 어디 있죠?”
“선생님께서… 항상 서재 안에 있는 서랍에 보관하셨습니다.” 지혜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에 있다고? 그럼 밖에서는 열 수 없다는 거잖아!” 은경이 소리쳤다.
결국 이진우가 나서서 도끼를 찾아와 문을 부쉈다. 육중한 나무와 강철로 된 문이 힘없이 뜯겨 나가자,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민준은 책상에 엎드린 채 미동도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짙은 금색의 비단 카펫이 깔려 있었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서류 더미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완벽함 속에서, 한민준의 창백한 얼굴과 싸늘한 기운은 명백한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찻잔을 잡은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찻잔에는 아직 반쯤 채워진 차가 담겨 있었고, 그 주위에는 미세한 흰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독극물…!” 이진우가 찻잔을 보며 경악했다.
김지혜가 비명을 삼켰고, 최은경은 주저앉아 떨기 시작했다.
밀실 살인. 그것도 완벽한.
사건 현장에 나타난 강선우 탐정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짙은 코트 차림의 그는 눈보라를 뚫고 온 흔적조차 없는 듯 단정했다.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 날카로웠다.
경찰은 이미 초동 수사를 마친 상태였다. 서재 문은 밖에서 부서지기 전까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밀폐되어 있었다. 환기 시스템 역시 외부와의 연결이 불가능했다. 현관의 지문 인식 기록에는 사망 전날 밤 10시 이후 한민준 본인의 출입 기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은 일찍이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는 분위기였다. 명백한 밀실, 피해자의 손에 들린 독극물이 든 찻잔. 모든 것이 자살을 가리키는 듯 보였다.
“강 탐정님, 보시다시피 명백한 자살입니다.” 담당 형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선우는 아무 말 없이 서재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의 시선은 가구 하나, 그림 한 점, 그리고 바닥의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는 듯했다.
“죽기 전까지 마시던 차군요.” 그가 조용히 찻잔을 가리켰다.
“네. 지혜 씨 증언에 따르면, 한민준 씨는 매일 밤 서재에 들어가기 전 비서에게 직접 우린 허브차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자살이라면 직접 독극물을 탔겠죠.”
강선우는 시선을 내려 한민준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피해자는 오른손잡이였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찻잔은… 그가 늘 사용하던 것이 아닙니다.”
모두의 시선이 찻잔에 꽂혔다. 평범한 흰색 도자기 찻잔이었다.
“피해자는 자신만을 위한 특별 제작 머그컵을 고집했습니다. 완벽한 형태와 그립감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컵이었죠. 이 컵은… 저택의 손님용 세트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 씨, 맞습니까?” 강선우의 시선이 김지혜에게 향했다.
김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어제 저녁엔 제가… 제가 직접 그의 머그컵에 차를 우려다 드렸습니다. 늘 하던 대로요.”
“그렇군요. 그럼 이 찻잔은 누가 사용한 걸까요? 한민준 씨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마신 차가 담긴 찻잔인데 말이죠.” 강선우는 의문을 던졌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로 옮겨갔다. 죽은 건축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의 설계도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설계도는 섬세한 선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건축 모형이 놓여 있었다. 모형은 아직 미완성인 듯 보였지만,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피해자는 이 작품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보였겠군요.”
“네, 선생님께서 평생을 바친 꿈의 프로젝트라고 하셨습니다.” 김지혜가 답했다.
강선우는 모형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작은 구조물이 들어설 자리였는데, 그 구조물은 모형 옆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마치 막 조립될 차례를 기다리는 듯이.
“한민준 씨는 극도의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보는 성격이었죠. 이 모형을 여기까지 만들어두고, 마지막 한 조각을 남겨둔 채 작업을 멈출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말이죠. 그는 미완성된 것을 남겨두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강선우의 말에 모두가 다시 모형을 응시했다. 과연, 그 작은 조각 하나만 완성하면 한 부분의 작업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마무리될 직전의 작업을 남겨두었을 리가 없습니다. 이는 그가 작업을 계속할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강선우는 천천히 서재 내부를 다시 살폈다. 책장에는 희귀한 서적들이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었고, 그의 시선은 마침내 책상 아래의 작은 쓰레기통에서 멈췄다. 그 안에는 구겨진 휴지 몇 장과 함께, 얇은 투명 비닐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이것은… 독극물을 담았던 봉투가 아닙니다.” 강선우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아주 얇고 작은… 보석류를 포장할 때 쓰는 비닐 봉투군요. 서재 안에서 보석이 발견된 것은 없죠?”
“네, 선생님께서는 보석 같은 사치품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김지혜가 말했다.
강선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비닐봉투를 손에 든 채, 다시 김지혜를 향했다.
“지혜 씨, 어제 저녁, 한민준 씨가 서재에 들어가기 전 차를 가져다줄 때, 이 손님용 찻잔을 사용했습니까?”
김지혜는 잠시 망설였다. “아닙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머그컵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민준 씨는 어제 저녁 서재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머그컵에 우린 차를 마셨다는 거군요. 그리고 서재 문을 잠그고 밤을 보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찻잔이… 여기에 있을까요?”
강선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울림은 서재 안의 공기를 압도했다.
“한민준 씨는 평생 습관대로, 서재에 들어간 뒤 문을 굳게 잠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독극물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면, 밀실 트릭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는 다시 모형과 찻잔, 그리고 비닐봉투를 차례로 짚었다.
“범인은 한민준 씨가 서재에 들어가기 전, 이미 서재 안에 독극물이 든 찻잔을 놓아두었습니다. 한민준 씨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서재에 들어와 문을 잠갔을 겁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작업을 시작했겠죠.”
“하지만 그가 쓰던 컵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진우가 물었다.
“맞습니다. 그래서 범인은 한민준 씨가 의심하지 않도록, 평소 그의 손에 잘 닿지 않는 손님용 찻잔에 독극물을 담아두고, 다른 곳에 미리 준비된 평범한 차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강선우는 비닐봉투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 비닐봉투는… 독극물을 옮기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독극물은 이미 찻잔에 담겨 있었을 겁니다. 이 봉투는… 아주 미세한,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김지혜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김지혜는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지혜 씨, 당신은 한민준 씨의 완벽주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머그컵 외에는 그 어떤 컵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래서 당신은 그가 독극물 든 차를 마시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의 머그컵에 차를 가져다주고, 손님용 찻잔에 든 독극물은 그저 실패작으로 남을 것이라 예상했겠죠.”
김지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한민준 씨가 그 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강선우는 한민준의 시신을 다시 가리켰다. “죽은 한민준 씨는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있습니다. 그가 평생 사용하던 특별 제작 머그컵이 아니라, 손님용 찻잔을요.”
“한민준 씨는 아마 당신이 건넨 머그컵에 든 차를 마신 후, 잠시 서재를 비웠을 겁니다. 그리고 서재로 돌아와 작업을 재개하려 했겠죠. 그때, 그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손님용 찻잔이 눈에 띄었을 겁니다. 그는 혹시 당신이 실수로 두고 갔을 다른 차인 줄 알고, 습관적으로 그 찻잔을 비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신의 작업 도중에 목이 말라 또 다른 차를 마시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그는 그 손님용 찻잔에 든 독극물을 마셨고, 그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을 겁니다.”
강선우는 김지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은 한민준 씨가 죽기 직전, 자신만의 완벽한 서재를 정리하고, 미완성된 모형을 끝까지 마무리하려 할 것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독극물은 그의 의지를 꺾었죠.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우지 못한 채, 그는 죽음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가 자살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가 늘 마시던 차 대신, 우연히 마셨을 손님용 찻잔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당신의 계략에 의해 마신 차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요.”
“그리고 이 비닐봉투…” 강선우가 봉투를 흔들었다. “독극물을 담은 것이 아니라, 한민준 씨의 지문으로 전자 잠금장치를 조작할 무언가를 담았던 겁니다. 한민준 씨가 잠든 사이, 혹은 잠시 의식을 잃은 사이, 당신은 그의 손가락을 이용해 잠금장치를 풀고, 독극물이 든 찻잔을 그의 손에 쥐여준 뒤, 다시 지문을 사용해 문을 잠갔겠죠. 그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비닐봉투였을 겁니다. 독극물의 흔적은 찻잔 안에 남아 있었고, 당신은 문을 다시 잠근 뒤 이 봉투를 버렸습니다. 완벽하게 밀실을 재현하기 위해서요.”
김지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저를 괴물처럼 대했어요. 매일 밤,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저를 짓밟았어요. 저는…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어요…”
그녀의 흐느낌은 서재 안을 가득 메웠고, 그 안에서 비로소 밀실의 진정한 공포가 드러났다. 완벽한 트릭은 피해자의 완벽한 습관과 살인자의 섬세한 심리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강선우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내다봤다.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지만, 인간의 어둡고 복잡한 심리는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인간의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퍼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