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미지의 균열
광활한 우주, 아르테미스호는 칠흑 같은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수만 광년을 홀로 헤쳐나온 강철의 고래는, 이제는 익숙해진 우주진과 잔해들 사이를 유유히 미끄러졌다. 함교를 채운 정적은 길고 고된 항해의 증거였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은 아득한 점멸에 불과했고, 인류의 존재는 한 줌의 먼지처럼 하찮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선장님,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기관 담당 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키보드와 홀로그램 패널 사이를 오가던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진우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지구 시각으로 200년이 넘는 항해였다. 냉동수면과 휴식 주기를 반복했지만, 우주선 내부를 가득 채운 고독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고맙네, 준. 요즘 잠이 영 부족해서 말이야.”
“무슨 말씀이세요. 제 눈엔 오늘도 평소와 똑같은 선장님인데요.”
준이 너스레를 떨며 진우의 옆자리 콘솔에 컵을 내려놓았다. 진우는 미소 지으며 따뜻한 컵을 쥐었다. 그 순간, 함교를 가득 메운 고요를 찢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날카롭고 낯선 소리였다.
“캡틴! 미확인 에너지원 감지!”
과학 담당 세린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져 나왔다. 그녀는 평소라면 흥미로운 현상 앞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세린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친 듯이 오갔다.
진우는 벌컥 커피를 들이키며 지휘석으로 향했다. “세린, 보고해! 무슨 일이지? 설마 소행성 군집이라도 발견한 건가?”
“아뇨, 선장님! 이건… 아무리 봐도 데이터가 이상해요!” 세린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파장 분석 결과는 비바리온 입자도, 암흑 물질도 아니에요. 기존의 어떤 에너지 유형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신호가… 계속해서 불규칙적으로 변동하고 있어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요!”
준은 곧바로 기관 제어판으로 달려가 외벽 센서 데이터를 확인했다. “함체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항법 장치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변 공간에 국소적인 중력 왜곡이라도 발생한 것처럼요. 전방 5000킬로미터 지점입니다!”
“국소적 중력 왜곡? 지금 우리 눈앞에 뭐가 있다는 건가?” 진우가 화면을 주시했다. 망원 센서가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영상에는 끝없이 펼쳐진 암흑뿐이었다.
“일단 접근하겠습니다. 속도는 최저로. 모든 함포는 대기 상태로 유지하고, 보호막은 최고 출력으로 올려!” 진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르테미스호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미지의 공간을 향해 나아갔다.
화면 속 암흑이 서서히 걷히고, 무언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뭉쳐진 암석 조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은 상식을 벗어났다.
“세상에… 이건 대체….” 세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검은 얼음 덩어리 같았다. 그러나 얼음과는 달리 빛을 흡수하고 있었고, 표면은 매끄러우면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뒤틀리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형태. 육면체도, 구체도 아닌, 존재하지 않는 차원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질적인 형상이었다. 그 거대한 구조물은 아무런 동력원도 없이 천천히 회전하며, 마치 우주를 집어삼킬 듯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분석 가능해?” 진우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불가능합니다, 선장님. 모든 스캔 파장이 표면에서 흡수되거나 왜곡되어 버려요. 마치… 블랙홀처럼요. 하지만 블랙홀처럼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는 현상도 없어요.” 세린의 목소리에는 경외심과 함께 명백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에너지 방출도 감지되는데, 그 패턴이 마치… 심장 박동 같아요.”
그때, 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선장님! 함선 전력 계통에 이상이 감지됩니다! 보조 동력 장치들이 깜빡이고 있어요! 원자로 자체는 안정적인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주에 떠 있던 검은 유물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흡수하던 빛을 일순간 토해내듯, 유물 전체가 맹렬한 보랏빛으로 타올랐다.
함교 전체가 흔들렸다. 진우는 지휘석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지?!”
“젠장! 모든 계측기가 먹통이에요! 선장님,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습니다!” 세린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진우의 시야가 급격히 비틀렸다. 눈앞의 함교가 사라지고,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풍경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고층 빌딩들이 끝없이 늘어선 도시였다. 그런데 그 도시가, 마치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뛴 듯 낡아 있었고, 부분부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붉은 노을… 너무나도 선명한 잔상이었다.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세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진우는 눈을 감은 채 어지러움을 느꼈다.
“방금… 뭔가 보였다….” 진우가 간신히 말했다.
“저도요! 흐릿했지만… 폐허가 된 도시였어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데 낯선… 미래 같기도 하고, 과거 같기도 한….” 세린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준은 자신의 콘솔을 보며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선장님! 크로노미터가…! 방금 정확히 1분 12초, *뒤로* 점프했습니다!”
아르테미스호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유물은 이제 보랏빛을 넘어 녹색, 파란색, 주황색 등 온갖 색깔로 불규칙하게 번쩍였다. 거대한 균열이 아르테미스호와 유물 사이의 공간에 형성되는 듯했다. 시야가 다시 한번 뒤틀리며, 진우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대의 유적,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글자, 그리고 차가운 강철 도시의 잔해….
“이건 시간 왜곡장이야! 이 유물이 시공간을 뒤틀고 있어!” 세린의 절규가 들렸다.
진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선회! 당장 유물에서 떨어져! 최대 가속! 준, 추진력을 최대치로 올려!”
하지만 아르테미스호는 이미 미지의 힘에 사로잡힌 듯, 거대한 유물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휘말리고 있었다. 모든 엔진이 굉음을 내며 한계까지 치달았지만,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이제 함교의 창을 넘어 내부를 가득 채우고, 모든 승무원의 시야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진우는 눈부신 빛 속에서 마지막으로 준과 세린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보았다. 그의 의식이 아득해지기 직전, 그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르테미스호는 심연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은 것은 미지의 유물이 홀로 빛나고 있는 광활한 우주의 정적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