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빗줄기가 흙먼지 섞인 밤공기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수도 ‘아스테라’의 심장부, 화려한 제국의 궁전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곳과는 정반편, 낡고 부서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가의 지하. 축축한 흙냄새와 역겨운 시궁창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진은 마른 침을 삼켰다.

횃불의 희미한 불빛이 동굴처럼 이어진 지하 통로를 더듬었다. 좁고 습한 길을 따라 그의 등 뒤를 따르는 것은 늙은 한 사부뿐이었다. 한 사부의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그 주름 하나하나에는 제국의 철혈 같은 압제에 짓눌린 민초들의 고통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정녕… 이것밖에 방법이 없습니까, 사부님.” 진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어둠이 그의 말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한 사부는 멈춰 서서 진을 돌아보았다. 횃불이 그의 야윈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진. 제국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야. 저들이 광휘의 이름을 빌려 행하는 짓거리를 보아라. 우리의 동포들이, 우리의 가족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짓밟혔는가. 지난번 ‘황혼의 파수꾼’ 부대가 전멸당했을 때, 그들 시신 위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진은 몸을 떨었다.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철혈 제국의 정예 부대인 ‘광휘의 사자들’이 반란군 거점을 급습했고,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폐허가 된 현장에서 진이 보았던 것은, 단순히 살해당한 시신들이 아니었다. 광휘의 사자들이 뿌리고 간 미지의 저주 때문인지, 시신들은 피부가 종이처럼 말라붙고 눈알은 터져 있었으며, 온몸의 살점이 알 수 없는 검은 촉수에 의해 흡수된 듯 쪼그라들어 있었다.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사람들의 귓가에는 알 수 없는 환청이 들렸다고 했다. 악몽조차 꾸기 힘든 참상이었다.

“저들은… 인간의 도를 넘어선 힘을 사용합니다. 우리도 그에 맞서야 합니다.” 한 사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의 낡은 두루마기 소매 아래로 희미하게 돋아난 핏줄이 그의 결의를 말해주고 있었다.

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무지한 평민이 아니었다. 제국이 봉인했다고 알려진 고대의 기록들을 몰래 탐독하며 성장했다. 그 기록 속에는,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에 대한 섬뜩한 경고가 명확히 적혀 있었다. ‘심연의 속삭임.’ 제국의 건국 이전부터 이 땅 아래 잠들어 있던, 태초의 혼돈을 품은 존재. 그 존재에게 손을 내미는 자는, 승리를 얻을지라도 그 대가로 영혼의 일부분을 저당 잡히게 될 것이라고.

얼마나 더 걸었을까. 습한 공기 속에 미묘하게 다른 냄새가 섞여들기 시작했다. 쇠비린내와 썩은 내, 그리고 알 수 없는 향초 냄새가 기묘하게 뒤섞인 역겨운 향이었다. 그리고 그 냄새는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웅얼거림과 함께 점점 짙어졌다.

마침내, 통로는 거대한 지하 공간으로 이어졌다. 횃불이 비춘 곳은 한때 고대 제국의 신전이었던 듯한 장소였다.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검은 돌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단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촛불이 흐릿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빛 아래 몇몇 반란군 동지들이 두려움과 결의가 뒤섞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단 위에는 기이한 형상의 제물들이 놓여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어렴풋이 닮았지만, 섬뜩하게 뒤틀린 나무 인형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내장, 그리고… 갓 뽑은 듯한 사람의 머리카락 다발. 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왔구나, 진.” 제단 앞에 서 있던 또 다른 늙은이가 그를 반겼다. 그는 주술사로 알려진 ‘명월’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초점 없는 눈빛 속에는 광기마저 엿보였다. 그는 제국에 가족을 잃고 복수를 위해 이 길을 선택한 자였다.

명월은 한 사부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만 하면… 저 사자들을 막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대가는… 감당할 수 있겠나?” 한 사부의 목소리에도 불안감이 스쳤다.

명월은 핏기 없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죽음보다 더한 대가는 없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제 영혼 따위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의 말이 진의 심장을 찔렀다. 과연 그럴까? 죽음보다 더한 대가란 없을까? 심연의 속삭임은 영혼을 탐한다고 했다. 영혼이 사라진 육신은,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명월은 제단 중앙에 놓인 낡은 단검을 집어 들었다. 단검의 날은 녹슬어 있었지만, 기이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고대의 언어인지, 아니면 그 어떤 언어도 아닌 이상한 소리들의 조합인지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지하 공간을 채웠다.

웅얼거림이 깊어질수록, 촛불의 불꽃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제단 위 제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공기 중의 습기가 더욱 짙어지며,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호흡하는 듯한 차가운 숨결이 진의 뺨을 스쳤다.

“오라… 잠들어 있던 자여… 너의 이름을 부르니… 혼돈 속에서 깨어나…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 명월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의 눈동자는 핏발이 서 있었고,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갑자기 지하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땅속에서 포효하는 듯한 진동이었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리고, 검은 돌기둥에 새겨진 문양들이 기분 나쁜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눈앞의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제단 중앙의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결치듯 흔들리는 아지랑이 너머로,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 균열 속은 무한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진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언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분명한 의미를 지닌 음성들이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것은 고통을 약속하고, 희망을 조롱하며, 절망의 심연으로 유혹하는 목소리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가 그를 덮쳤다.

명월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어둠의 균열이 더욱 커지며, 그 안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지만,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지하 공간을 압도했다.

“우리가… 대가를 치렀다…” 명월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육신은 말라붙어 가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알 수 없는 희열에 잠겨 있는 듯했다.

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심연의 속삭임. 그것이 고대 기록에서 경고했던 존재였다. 이제 그들은 제국의 폭정에 맞서 싸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저주일까?

균열 속에서 뻗어 나온 검은 그림자가, 제단 앞에 모여 서 있던 반란군 동지들의 몸을 휘감았다. 그들의 몸은 마치 인형처럼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고, 공포에 질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입술 사이로 어둠이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육신은 비틀리고, 살점은 수축하며, 눈빛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피부 위로 기이한 문양들이 돋아나고, 손끝에서는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힘이었다. 피와 영혼을 대가로 얻은, 심연의 힘.

진은 그 모든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제국의 괴물에 맞서기 위해, 그들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죄책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어둠 속에서, 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저 대가를 치를 순간이 올까?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유일까, 아니면 심연의 텅 빈 공허뿐일까?

밤은 깊어지고, 지하 깊은 곳에서는 섬뜩한 힘의 태동이 계속되고 있었다.